보편타당한 정서·기획력으로 무장 인기순항중

‘해외 투어’ 영미권 집착 지나 아시아로 광폭행보

해외작품 재창작 라이선스 되파는 ‘역수출’도 인기

창작-라이선스 구분 이분법적 분류가 발목 잡아

콘텐츠 범위·제작 다양성 확장...‘국수주의’ 벗어야

‘K뮤지컬’ 기준 재정립...내실있는 뮤지컬 생태계로

창작만이 K뮤지컬?...스스로를 묶은 ‘선’을 풀어라 [지속가능한 K를 찾아라 ④ K뮤지컬]
최근 몇 년 사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국내 뮤지컬의 라이선스 수출이 늘고 있다. 또한 판권 수출을 넘어 한 단계 더 나아간 전략은 재창작 작품들의 역수출이다. 뮤지컬 ‘몬테 크리스토’는 2009년 스위스에서 초연,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재창작한 버전에 대해 전 세계 공연권을 얻었다. 왼쪽부터 뮤지컬 ‘드라큘라’ ‘더픽션’ ‘루드윅’ ‘몬테 크리스토’ [오디컴퍼니·HJ컬쳐·과수원뮤지컬컴퍼니·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욘사마와 지우히메 신드롬을 불러온 1세대 K드라마 ‘겨울연가’. 2003년 일본 NHK에서 방영되며 뜨거웠던 인기는 공연계로 이어졌다. 드라마를 무대로 옮긴 동명의 뮤지컬이 2006년 일본에서 개막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윤석호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삿포로 초연에 이어 약 한 달간 이어진 도쿄 공연 첫 날엔 한류팬으로 알려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 씨가 뮤지컬을 관람해 화제가 됐다. 매회 2000석에 달하는 코마 극장은 객석 점유율 80%를 기록했다. 당시 프로듀서로 함께 했던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겨울연가’를 한국 창작 뮤지컬의 첫 해외 진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4년이 지난 현재 세계 무대에서 한국 뮤지컬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이 4000억 규모로 성장, 공연계의 60% 이상을 지탱하는 동안 시장 확장을 위한 노력도 끊이지 않았다. “뮤지컬의 해외 진출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필연적인 미래 먹거리”(이유리 이사장)이기 때문이다.

▶K뮤지컬 라이선스...일본 넘어 아시아 시장 주도=뮤지컬의 일반적인 해외 진출 사례는 해외 투어 공연과 라이선스 수출로 볼 수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교수는 “해외 투어공연은 K뮤지컬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나,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선 라이선스 수출이 바람직한 진출 형태”라고 말했다. 현재는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원 교수는 “‘명성황후’ 등이 제작된 1세대 뮤지컬 시대에는 영미권 진출에 집중했으나, 지금은 아시아·중화권으로의 영역 확장 시도가 이어지는 흥미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소형 뮤지컬을 중심의 아시아 지역 진출이 활발하다. 지난해 라이선스 수출에 성공한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일본 현지에서 관객과 만났고, ‘미아 파밀리아’, ‘더 픽션’, ‘루드윅:베토벤 더 피아노’ 등이 지난해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뮤지컬 ‘블루레인’(16일 개막)은 지난해 7월 일본 공연계의 셧다운이 풀린 이후 처음으로 올라간 작품이다. 최수명 씨워너원 대표는 “공연장 내 띄어앉기로 좌석을 60% 가량 오픈했지만 반응이 좋아 관객이 많이 찼고, 온라인에서도 6600~7700엔의 티켓 가격으로 유료 공연이 진행돼 한 회당 70~80명의 관객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미 2022년 공연도 예정돼 있다.

한국 뮤지컬의 매력은 탄탄한 스토리텔링과 메시지에 있다. 원 교수는 “브로드웨이에서 출발한 대부분의 뮤지컬은 달콤한 사랑 이야기, 긍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밝은 코미디가 많은데 한국 뮤지컬은 연극에 기반하다 보니 진지하고, 사회 비판적, 풍자적인 내용이 많다”며 “무겁고 묵직한 이야기가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 소재와 형식 면에서 신선함을 준다”고 봤다.

우리 뮤지컬의 일본, 중국 진출이 활발해지며 한국은 “오랫동안 뮤지컬 3대 시장의 역할을 해온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의 주도 국가로 성장”(이유리 이사장)했다. K팝, 드라마, 영화의 성공으로 뮤지컬 역시 이미 해외 시장에서 매력적인 K콘텐츠로 인식되고 있다.

뮤지컬 시장에서 글로벌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혜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우리가 들고 나가고 싶은 것이 아닌 글로벌 관객이 원하는 것, 보고 싶은 것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보편타당한 정서를 가진 스토리와 탄탄한 기획력”(지혜원 교수)이 바탕해야 한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맘마미아’의 성공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또한 원종원 교수는 “이야기가 검증된 한류 콘텐츠의 재가공을 통해 경쟁력 있는 공연 콘텐츠를 제작하는 영리한 발상과 익숙한 소재를 새롭게 표현하는 원소스 멀티유스 형태의 접근이 함께 하면 한류가 무대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봤다.

▶한 발 더 나아간 전략...재창작 작품의 역수출=판권 수출을 넘어 한 단계 더 나아간 전략은 재창작 작품들의 역수출이다. 해외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는 레플리카 방식이 아닌 대본과 음악만 라이선스를 구입해 재창작하는 작품(논레플리카)이 다시 수출되는 사례다.

현재 공연 중인 EMK엔터테인먼트의 ‘몬테 크리스토’가 대표적이다. 2009년 스위스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한국 관객의 정서에 맞게 재창작해 무대에 올려 성공을 거뒀다. 이후 독창성을 인정받아 한국 버전에 대해 전 세계 공연권을 얻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일본 원작을 80% 이상 수정, 재창작해 무대에 올려 2016년 헝가리, 2018년 일본 토호 주식회사에 역수출했다.

해외 뮤지컬을 재창작해 라이선스를 되파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해외 진출이다. 이유리 이사장은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다양하게 존재해야 하는데, 이러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콘텐츠 모델을 개발한 사례”라고 말했다.

선례가 없다 보니 과제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재창작 작품을 분류할 기준이 국내 뮤지컬 업계에는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혜원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K팝은 해외 작곡가, 외국인 멤버가 참여하거나 외국인 멤버로만 구성돼도 우리 음악으로 규정하는 반면 K뮤지컬은 외국인 제작진이나 창작진의 참여에 엄격하다”며 “20년 전 뮤지컬 시장이 형성될 때 만들어진 기준으로 창작과 라이선스를 구분해 각종 지원과 정책이 적용되고, 세율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분이 생긴 것은 “다른 분야와 달리 뮤지컬은 라이선스로부터 출발한 문화산업”(이유리 이사장)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창작과 라이선스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이 이뤄지고, 내부에서 상충하는 풍토가 있었다”고 말한다.

시장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과거의 기준은 업계의 발전을 저해한다. 김지원 EMK인터내셔널 대표는 “우리만의 독특한 기준으로 창작과 라이선스를 구분하는 것은 세련되지 않은 방식”이라며 “경계가 허물어지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기준과 분류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미 국내외 시장에서 ‘모차르트!’, ‘몬테 크리스토’, ‘마리 앙투와네트’ 등 다수의 작품들이 이뤄낸 성취가 나오고 있는 만큼 “각각의 작품마다 층위를 다르게 접근하면서 새로운 기준을 정립”(지혜원 교수) 해야 한다.

이 이사장은 “이분법에서 벗어나 한국 국적을 가진 프로듀서가 개발하고, 한국의 뮤지컬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전체 작품들을 K뮤지컬로 바라봐야 한다”며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콘텐츠의 범위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확장하는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한 발 앞서 간 시장의 여건에 따라 지원 사업 체계를 재정비하고, 뮤지컬 산업이 시장을 확장할 수 있도록 새로운 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 교수 역시 “창작과 라이선스를 구분하는 국수주의적 발상은 정부와 자본이 쉼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글로벌 사회에서 제한적일 수 있다”라며 “내실을 기하고 문화와 사회를 넘나드는 교류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