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평생 박제될까 두려워”…가해·피해 경계 없는 SNS 학폭[촉!]
코로나19로 인해 SNS 기반 학교폭력 증가
SNS상 부계정 통한 소통하다 따돌림 당하기도
상다미쌤 학교폭력 상담 건수 3539건→7759건
오프라인 폭력과 누구나 가해자 될 수 있어
“사이버와 현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 모호해져”
눈에 안 보이는 학폭…사이버상 여러범죄 가능성 알려야
학교 폭력 이미지[123rf]

[헤럴드경제=강승연·김지헌 기자] “네 ‘부계(아이디 부계정)’ 다 봤어. 그거 왜 올렸어? 평생 박제되게 해줄게.”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A양은 같은 학교 B양이 “평생 박제되게 해주겠다. 각오하라”며 시작된 괴롭힘에 잠을 설치다 사이버 학교폭력 상담소에 전화를 걸었다. 두 달 전 A양은 처음 사회연결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부계’를 만들었다. 부계는 ‘부계정’의 줄임말이다.

자기 이름으로 사용하는 계정을 본래 계정이란 뜻의 ‘본계’,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하기 위해 만든 또 다른 계정을 ‘부계’라고 부른다. A양 뿐 아니라 요즘 청소년들 상당수가 이렇게 계정을 두 개 이상 만들어 SNS 소통을 한다.

A양은 교우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학교에 불만이 있을 때 이 부계에 자신만의 비밀노트를 썼다.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네 말이 옳다”고 호응해줄수록 A양은 표현의 수위를 높였다. 때로는 친구 얼굴을 올리며 가벼운 비난글을 남겼고, 친구와 심하게 싸운 뒤에는 생김새를 두고 비아냥 거리는 글도 적었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원격 수업이 진행되던 어느 날, A양의 태블릿 PC를 잠시 빌렸던 친구 C양이 자동 로그인 되어있던 A양의 ‘부계’를 보게 됐다. C양은 다른 친구들에게 해당 계정의 존재를 알렸고, 이때부터 학교 친구들은 A양 계정에 악플 세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은 철저하게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 A양을 단체 카톡방에 초대해 쌍욕을 해 A양이 단톡방을 나가면 다시 초대해 “왜 나가냐”며 면박을 줬다. 한명씩 시간을 나눠 A양에게 욕을 하는 카톡을 보내기도 했다. A양은 “부끄러운 기록이 온라인상에 평생 남을 것 같아 죽고 싶다”고 했다.

열린의사회에서 학교폭력을 상담하는 업무(상다미쌤)를 하는 황윤지 상담사는 11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실제로 SNS상 계정을 여럿 만들어 활동하다 겪게 된 학교폭력을 상담하는 사례가 많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활동이 줄어들면서 온라인상 학생들의 교류가 늘어나 사이버 폭력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상다미쌤 서비스를 통해 접수되는 학교폭력 상담 건수는 지난 2019년 3539건 이었으나 2020년에는 전년보다 2.2배 이상 증가한 7759건을 기록했다.

2019년과 2020년 하반기 기준, 열린의사회의 모바일 학교폭력 상담서비스 '상다미쌤'의 상담 접수 건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병 이후 온라인 학교 교육이 강화되면서, 폭력 상담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자료=상다미쌤 제공]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SNS가 학교폭력 가해 환경을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며 “넓은 범위에서 신속하게 폭력이 벌어질 수 있는 곳이 SNS라 청소년들의 자신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드러내는 통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SNS를 통한 학교폭력은 기존의 학교폭력과 다른 양상이라는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성윤숙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학교폭력예방교육지원센터장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은 다르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학교폭력은 학교 내 아이들간의 서열이 있는 상태에서 힘이 센 학생이 힘이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구조였다. 폭행이 발생하면 학생의 피해 역시 눈으로 확인하고 조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SNS 등 온라인은 힘의 서열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보통 학생들도 가해자가 되기 쉬운 구조다. 온라인 폭력은 오프라인 폭력과 달리 신체에 흔적을 남기지 않다보니 부모나 교사가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렵다.

성 센터장은 “온라인상의 폭력은 오프라인과 달리 24시간동안 가능한데다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 사실이 훨씬 빠르게 확산될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며 “요즘은 SNS를 통해 개인정보 유출까지 이뤄져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SNS상 학교폭력에선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하다. 충청도 한 중학교에 다니는 D군은 같은 학교 남학생 몇몇과 단톡방을 만들어 같은 반 여학생들 얼굴을 평가하는 글을 올렸다. D군은 그렇게 글을 써도 외부에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동시에 “장난이니까 별 문제 없을 것”이라 여겨 외모 비하 글을 남겼다. 그런데 그 글이 유출되면서 같은 반 학생들에게 집단적으로 SNS에서 욕을 먹고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어떤 학생들은 D군을 비하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고 제목에 D군 이름 태그를 걸어 외부인도 쉽게 D군 이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성 센터장은 “온라인 학교폭력에선 가해자가 곧 피해자가 되는 경우 역시 흔하다”며 “피해사실을 증거로 남길 수 있도록 외부에서 알려주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선영 푸른나무재단 상담조정연구팀장은 “SNS에서 ‘부캐’를 만들어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 익숙한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많은 위협을 느끼고 있어 대책 마련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raw@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