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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회의론을 마치며 [라스트 포레스트]
2020년 9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취재
차량 이동거리 1523km, 전문가 7명 등 만나
"기후변화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

[헤럴드경제]"농민들 삶은 비탈길이에요. 끝까지 몰려있다고. 비탈길."

경상북도 영주, 권헌중 사과연구소 연구관이 손가락으로 산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이 다니기 힘들어보이는 경사진 길에는 사과나무들이 앙상하고 처량하게 심겨 있었다. 날씨가 더워져 사과를 심기 힘들어지자, 비교적 온도가 낮은 산에 농민들이 나무를 심은 것이다. 산에 심긴 나무나 나무를 심은 농민 모두 생존에 있어 절박하다.

권 연구관은 "도시 사람들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불평했다. "미세먼지도 불만이 컸는데, 이제는 다들 그려려니 하는 것처럼, 기후변화도 사람들한테 그렇게 인식되는 거 아닐지..." 권 연구관이 혀끝을 찼다.

헤럴드경제 라스트 포레스트팀은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약 3개월 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기후변화 현상을 취재했다. 카메라와 마이크, 노트북을 들고 기후변화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전국 현장을 직접 누볐다.

'기후 변화'를 주제로 잡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구온난화는 완전히, 그리고 매우 비싼 거짓말이다"라고 말한 뒤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반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라스트 포레스트팀은 취재한 내용을 영상과 글, 인터렉티브 뉴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서 많은 사람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를 알리려 했다. 큰 제목은 '라스트 포레스트 :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회의론'으로 잡았다.

온실가스 배출로 태양복사열이 지구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그때문에 극지방 빙하가 녹는다는 우려는 1990년대부터 이미 전지구적으로 화제가 됐던 이슈였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한데 모여 회의를 하고 교토의정서(1997년), 파리협정(2015년)을 써낼 정도였다.

그런데도 기후변화 회의론은 기승을 부렸다. 실상은 '기후변화란 사실이 아니다'라는 기후변화 부정론이었다. 누리꾼들은 정부와 시민단체 주도의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외면했다. 기업은 '탄소배출권' 등 기후변화 관련 정책이 '기업죽이기'라며 비토했다.

라스트포레스트 기획은 기후변화의 흔적을 담으려 했다. 심각한 문제란 것을 깨닫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의 실상을 보고 변화에 동참하길 바랐다.

취재를 위해 이동한 거리는 총 1523km. 서울-부산을 약 2번 왕복할만한 거리다. 방문한 지방자치단체는 총 15 곳에 달한다.

과거엔 사과 주산지였지만, 명성을 서서히 잃어가는 경상북도 영주·안동·영덕·포항, 충청북도 충주와 제천, 대구광역시, 외래종 등검은 말벌의 피해로 사투를 벌이는 전라북도 전주·김제·임실, 경상남도 사천, 부산광역시, 그 외에도 왕우렁이 문제로 고통을 겪는 전라남도 고흥과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제주도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찾았다.

사과생산량 증대를 위해 일선에서 일하고 있는 권헌중 사과연구소 연구관, 등검은 말벌 권위자인 정철의 안동대 교수, 제주도 해수면 상승을 연구해온 박창열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을 포함한 7명의 전문가를 만나 얘기도 들었다.

16명의 농민을 만나 피해사례를 직접 소개받기도 했다.

취재를 나가기 전 전문가와 농민들에게 예상했던 답변은 '경고'와 '하소연'이었다. 특히 농민들에게는 "죽겠다", "힘들다"는 얘기가 나올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 농민들의 반응은 더 생생했다.

농민들은 주로 "예측을 할 수 없다"는 얘기를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례에 비춰 얘기했다.

사과농가는 당장 어제 온 폭우 때문에 사과가 썩었고, 오랜기간 지속된 장마 때문에 나무까지 썩어갈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양봉 농가는 벌통 앞이 무덤인 양 죽어있는 꿀벌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외래종은 적응하기 쉬운 생태계가, 이전에 한반도에 살던 종들은 적응하기 어려운 생태계가 되고 있다"고 했다.

제주도 촬영 당시는 두꺼운 옷을 꺼낼 11월인데도 기온이 20도 넘게까지 올라갔다. 해수면이 상승하는 탓에 저지대 주민들은 "집앞에 차를 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남 고흥의 왕우렁이는 도로와 논 밭, 집 앞까지 이곳저곳에 뭉쳐있었다. 사람보다 우렁이가 더 많게 느껴질 정도였다.

현장 취재를 마친 뒤엔 그와 관련된 데이터를 찾는 시간을 가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연락해 최근의 국내 농작물 생산량과 또 열대과일 생산량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다. 한반도는 더워지고 있음이 농작물 생산량 그래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사과, 배, 포도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들은 연도별로 서서히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었다. 반면 올리브와 키위, 바나나가 제주도와 본토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각 지자체에서 올라오는 자료들을 지난 5년전부터 집계하기 시작했다"며 "한반도 생태계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등검은 말벌집, [사진=안경찬 PD]
용머리 해안 탐방로. [사진=안경찬 PD]

학계에서는 "기후변화가 이제 더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과학자 97%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 때문에 발생했다는 가설에 동의한다.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쓴 논문 11만9494편의 초록을 호주, 미국, 영국 등 6개 연구팀이 분석해 얻은 정확한 수치다.

재앙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찾아온다. 기후변화 재앙도 마찬가지다. 가장 약한 종부터, 또 해수면이 가장 낮은 지역부터 피해를 안기고 있다. 아직은 그 고통이 낮은 지역의 몫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란 모래시계는 그렇게 아래서부터 점점 차오르고 있음은 분명하다. 지금 막지 못하면 재앙의 고통은 인류공동체 전체에 미칠 것이다.

zzz@heraldcorp.com

기자·진행 이정아, 김성우, 박이담 / PD 신보경, 안경찬, 윤병찬 / 디자인·CG 허연주, 변정하 / 제작책임 이정아 / 운영책임 홍승완

라스트 포레스트 :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한 회의론

- 기사 -

① 하얀 사과·꿀벌 떼죽음…한국, 기후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② '기후 폭탄'의 시작…하얀 사과가 온다

③ 중국산, 등검은 말벌의 습격…꿀벌 떼죽음

④ 기후위기 ‘최전선’ 제주도가 사라진다…해수면 23cm 상승

⑤ “하라는 일은 안하고 짝짓기만”…‘좀비’ 왕우렁이의 습격

⑥ 기후재앙 ‘하얀사과’…변해가는 한반도 과일지도

-유튜브 영상-

① 하얀 사과가 나타났다고? 과학자들이 아무리 말해도 당신이 현실부정하는 팩트

(https://www.youtube.com/watch?v=kOEf8htj_ro&t=104s)

② 꿀벌 의문의 죽음이 계속되는 이유

(https://www.youtube.com/watch?v=4wGM2m90_N8&t=1s)

③ 20cm 올랐습니다, 제주도 가라앉고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GPLS0fYgMUU&t=1s)

④ 죽지 않는 좀비 왕우렁이의 습격이 시작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1d6bJwa5W40)

⑤ "뱀이 겨울잠을 안 자요, 교과서 고쳐야 해요"

(https://www.youtube.com/watch?v=x4pQP9OYgDk&t=2s)

- 인터렉티브 뉴스 -

http://biz.heraldcorp.com/dicon/lastforest/index.html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라스트 포레스트(Last Forest)팀

본 기획은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영상팀 기자, PD, 디자이너의 긴밀한 협업으로 만든 퀄리티 저널리즘 시리즈입니다. 본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기획=이정아·김성우 기자, 신보경 PD

취재·진행=김성우·박이담 기자

영상 구성·편집=안경찬·신보경 PD

영상 촬영=안경찬·신보경·윤병찬 PD

디자인=허연주·변정하 디자이너

제작책임=이정아 팀장

운영책임=홍승완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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