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TV도 안보는데…”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KBS가 뭇매를 맞고 있다.TV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월 2500원의 수신료를 꼬박 꼬박 내고 있다는 사실 조차 그동안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수신료는 전기세에 포함돼 부과 되기 때문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매달 수신료를 자신이 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TV를 필수 매체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최근 10년 새 반토막 났다. 방송통신위원회 ‘2020년도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필수 매체로 TV를 꼽는 비율은 30%도 안 됐다. 전국 4042가구에 거주하는 만 13세 이상 남녀 6029명 대상 분석 결과다.
반면 스마트폰은 2012년 24.3%에서 2020년 67.2%로 급증했다. TV보다 스마트폰을 필수로 생각하는 비율이 2배 이상이다.
스마트폰을 필수 매체로 인식하는 비율은 연령대 별로 10대 96.2%, 20대 91.6%로 90%를 훌쩍 넘겼다. 30대와 40대도 86.2%, 78.2%를 기록했고 50대도 60.3%에 달했다. 사실상 60대 미만으로는 TV보다 스마트폰을 압도적으로 필수 매체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이용률도 66.3%로 전년보다 14.3%포인트 증가해 3명 중 2명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시청자가 이용하는 방송 매체가 스마트폰과 OTT 등 뉴미디어로 쏠리면서 갈수록 TV가 외면받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에도 KBS가 월 수신료를 2500원에서 3840원으로 인상하기로 하면서 국민들의 반발 여론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수신료 해지법이 공유되는 등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다. 나아가 전기세에 통합돼 징수되는 수신료를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 맘 카페 등에는 TV를 안보는데 KBS 수신료를 꼭 내야하는지 문의하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TV가 있지만 KBS를 보지 않는 것 자체는 수신료 환불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수신료는 TV가 있는 가구라면 KBS 시청 여부와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내고 있다. KBS는 최근 사보를 통해 “1989년 11월 방송법이 시행되면서 ‘시청료’라는 명칭이 지금의 ‘텔레비전방송수신료’로 바뀌었다”며, “수신료는 시청의 대가가 아니라, 공공부담금이라는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수신료는 전기세에 통합돼 징수되고 있다. 한국전력(한전)이 각 가구 전기료에 2500원을 강제로 부과한다. 한전은 징수를 대리해 주는 조건으로 약 6.6%의 위탁수수료를 받아간다.
다만, TV 자체가 없어 방송을 보지 못한다면 수신료 환불을 요청할 수 있다. KBS 수신료를 환불받기 위해서는 개인이 TV가 없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접 알려야 한다. KBS 수신료 징수를 대행하는 한전에 전화해 TV 말소 사실을 통보하면 된다. 아파트 세대의 경우 관리사무가 TV 말소 사실을 확인 후 한전에 통보하는 방식이다.
전기세와 수신료가 통합돼 징수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고 그동안 TV가 없는데도 수신료를 내고 있었다고 토로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한 맘 카페 회원은 “이번에 수신료가 전기세에 포함된 사실을 알았다”며 “TV도 없는 내가 왜 내고 있었는지 이제라도 알아 다행”이라고 글을 올렸다. 또다른 회원 역시 “TV가 없는데도 그동안 수신료를 내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TV 대신 모바일 등을 통해 OTT를 이용하는 시청자들도 크게 늘어 수신료를 환불받는 경우도 많다. 2500원의 수신료 부담을 거부해 환불 받은 가구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KBS는 2020년 한 해 동안에만 3만6273가구에 수신료를 돌려줬다.
더 나아가 현재 전기세와 통합돼 있는 수신료를 분리해 징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병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 회의에서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고 국민의 신뢰받는 KBS가 되는 것이 첫걸음이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KBS 수신료 인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KBS가 논란을 키운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KBS 수신료 인상안 추진 과정에서 KBS 직원으로 추정되는 글쓴이가 익명의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입사자 절반이 억대 연봉이다. 부러우면 입사하라’는 글이 급속도로 퍼졌다. KBS측은 연봉 1억원 이상의 고액연봉자가 46%(2226명)라고 해명했으나 되레 이 해명이 반발을 키웠다.
이어 KBS는 사보를 통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가 17배 늘었으니 수신료를 올려야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더욱 공분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