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때려서 고쳐야 한다”…‘미신고 시설’ 장애인 사망 공익 손배소 제기[촉!]
예배 거부 이유로 머리 걷어찬 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 수급비 등 가로채려 미신고 시설 운영
“국가·지자체 방치와 책임 추궁해 비극 막겠다”

2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장애차별금지추진연대와 장애인권과발바닥행동,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애인권클리닉 등이 미신고시설 장애인 사망사건을 계기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장애차별금지추진연대 제공]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와 장애인인권단체는 맞아서 숨진 지적·지체 장애인을 대신해 장애인거주시설 관리자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이 시설 관리자는 국가에 신고한 장애인거주시설과 별도로 미신고 시설을 운영하며 장애인 수급비와 장애인활동지원사 지원비 등을 착복한 정황도 일부 포착됐다.

22일 서울대공익법률센터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지난해 3월 미신고 장애인시설에서 거주하다 숨진 A씨의 유족을 대리해 시설장 김모 씨와 평택시, 국가가 3억여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소장에 따르면 장애인 A씨는 경기 평택시 소재 미신고 장애인시설에서 거주하던 중 잦은 폭행과 예배 참여 강요 등 지속적인 인권 침해 속에서 숨졌다.

지난해 3월 8일 오전 장애인활동지원사 정모 씨는 예배당으로 옮기려했는데 A씨가 이를 거부하자 그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같은 날 오후 정씨는 미안한 마음에 캔커피를 줬으나 A씨가 이를 쳐내자 또다시 그의 뒤통수를 발로 걷어찼다. A씨는 거품을 물고 호흡곤란을 일으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았으나 약 열흘 뒤 외상성 뇌출혈 등으로 끝내 사망했다.

이 같은 사건과 관련해 해당 시설에서는 평소 장애인들을 때리거나 때리는 것을 교사·방조해왔으나 상해치사 혐의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정씨 외에는 아무도 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설장 김씨와 사실혼 관계인 오모 씨는 평소 고용한 활동지원사들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라, 때려서 버릇을 고쳐야 한다”, “장애인들을 좋게 대해주면 말을 듣지 않으니 말을 안 들을 때는 입술에 피가 나게 때려줘라” 등 발언을 하며 폭행을 지시하거나 직접 때리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는 진술이 경찰 조사에서 나왔다.

이들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장애인시설과 활동지원사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장애인복지법 등에 따르면 장애인거주시설에는 장애인활동지원사가 파견될 수 없다. 그래서 시설장 김씨 등은 같은 주소지에서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서류상으로 신고시설에서 퇴소시켜 이들에게 국가에서 활동지원사를 파견하도록 꾸몄다는 것이 공익법률센터와 장애인단체의 주장이다.

지난 2002년부터 미신고 장애인거주시설을 운영해오던 김씨는 2008년 경기 평택시에 장애인거주시설을 개소, 3년 후부터 장애인거주시설로 신고했다. 지난 2020년 사건이 벌어진 때에 해당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은 총 18명이었으나 신고시설에 등록된 장애인은 4명뿐이었다. 사망한 A씨 역시 이 과정에서 유족들 몰래 신고시설에서 퇴소한 것으로 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김씨 등은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기초생활보장급여, 장애인연금 등은 물론 활동지원사의 급여도 착복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오씨는 장애인들을 전혀 돌보지 않으면서 활동지원사의 급여를 수령했고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중 장애인등록이 돼있지 않은 이를 활동지원사로 등록시켰으며, A씨를 숨지게한 정씨 등의 급여도 대신 지급받아 일부를 가로챘다는 지적이다.

장애차별금지추진연대는 이 사건을 정부의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의 한계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사회복지시설 중 신고하지 않은 시설들에게 완화된 신고요건을 적용한 바 있다. 시설장 김씨는 미신고시설을 운영해오다 이 기간에 시설을 지자체에 신고했으나 이후 신고시설 옆에 미신고시설을 확장했다는 의혹이 있다.

또한 단체들은 평택시와 보건복지부의 책임을 묻고 있다. 장애인복지법과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관할 지자체는 장애인거주시설에 1년에 2회 이상 점검을 해야 한다. 평택시는 지난 2019년 시설방문조사에서 모든 항목을 F등급으로 평가하는 등 시설의 문제점과 불법 운영을 알 수 있었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불법 시설을 방치해왔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김씨가) 시설장의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설치된 불법시설에서 학대와 인권침해를 당하며 살아오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고 지원해줘야 할 활동지원사의 손에 폭행 당해 목숨을 잃게 됐다”며 “그 동안 방치되어 온 미신고 장애인시설에 대한 문제점을 알리고, 이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추궁하여 다시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는 것을 막겠다”고 소송 취지를 밝혔다.

address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