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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학대에 살인죄 적용…왜 이리 어렵나요”[촉!]
누리꾼들 “아동 죽인 부모…살인죄 적용 당연”
실제 사례에선 상해치사·아동학대치사죄 적용 많아
살인죄 적용 위해 필요한 ‘미필적 고의’ 적용 어려워
가정 내 폭행 은폐돼 고의성 입증하기 어려워
“부모는 당연히 자녀 사랑한다”…법관들, 관대 판단
전문가들 “아동학대살해죄를 신설해 가중처벌 하자”

생후 2주 된 아들을 폭행해 살해한 혐의로 구속 송치된 부부가 지난 18일 오후 전북 전주덕진경찰서 유치장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아동학대에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이 왜 이리 어렵나요. 사람이 죽으면 당연히 살인죄를 적용해야지, 경찰의 ‘살인죄 검토’가 웬 말입니까. 경찰이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요.”

지난 8일 경기 용인시에서 (한국 나이로)열 살 된 여자아이가 자신의 이모·이모부에 의해 ‘물고문’을 연상하게 하는 학대로 사망한 데 이어, 이튿날인 9일에는 전북 익산시에서 생후 2주 된 아기가 학대를 당해 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다음날인 지난 10일에는 경북 구미시의 한 빌라에서 세 살 된 여자아이가 혼자 난방도 안 되는 방에서 숨져 있는 모습이 발견됐습니다. 그 아이의 시신은 부패가 심하게 진행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설 연휴를 앞둔 3일간 끔찍한 아동학대·살인이 연이어 벌어진 것인데요. 모두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일들이었죠. ‘물고문’, ‘생후 2주 사망’,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부패’ 등 듣기만 해도 끔찍한 표현들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주요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기사가 나올 때마다 많은 누리꾼들은 “당연히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분노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순간 이미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방치’에 머무르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폭행’까지 당했으니, 이는 하나의 생명이 아예 끊어질 뻔한 위기에 처한 것이나 마찬가지란 이야기죠.

그런데 생각보다 ‘살인죄’라는 죄명으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용인시에서 사망한 열 살 아이 사건도 처음에 적용된 혐의는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였습니다. 그러다 살인죄로 죄명을 바꾼 것이었죠.

살인죄가 되려면 ‘고의로 했다’, 즉 ‘살인이 날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목적으로 죽였다’라는 것이 입증돼야 합니다. 물론 이대로 순순히 입증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미필적 고의’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요. 이는 가해 행위를 하면서 ‘이러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을 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를 죽이면 국내 법원은 살인죄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죠.

누군가가 죽긴 죽었는데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2014년 이전에는 상해치사죄로 처리했고, 2014년 9월부터는 아동학대치사죄 혐의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살인죄냐 치사죄냐에 따라 가해자가 감수할 형량은 크게 달라집니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지만, 상해치사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그칩니다. 2014년 9월부터 시행된 아동학대처벌법 덕분에 가능해진 아동학대치사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는데요. 이는 살인죄(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와 비교해도 가볍지 않아 보이는 형량입니다.

그러나 양형기준을 더 꼼꼼히 살펴보면 아동학대치사죄(기본 4~7년)가 살인죄(10~16년)보다 여전히 징역 형량이 가볍게 제시돼 있는 상황입니다.

어쨌든 현재까지는 살인죄로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강하게 책임을 묻는 방식인 것이죠.

그런데 이 미필적 고의가 제대로 인정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합니다. 2017년 나온 논문인 ‘한국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 지향에 대한 연구’(이세원 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4년 이전에 벌어진 아동학대 사망사건 33건을 분석하고 있는데요. 이 33건 중 시체유기와 사체은닉으로 이어졌던 2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형법상 치사죄가 인정됐다고 합니다. 2014년 이전에는 살인죄 인정이 전무했던 셈이죠.

이런 와중에 ‘울산 계모 사건’에서 기념비적 판결이 등장합니다. 2013년 10월 계모 박모 씨가 “소풍 가고 싶다”는 만 7세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해 재판을 받은 사건인데요. 당시 2심인 부산고법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돼 박씨에 대해 징역 18년이 선고됐습니다. 이 판결이 등장하면서 아동 사망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들여다보는 시각이 형성됐고, 아동학대처벌법도 2014년 제정·시행될 수 있었습니다.

아동학대 관련 이미지. [123rf]

그런데 이 법 제정 이후 상황은 더 나아졌을까요. 지난해 발간된 ‘아동학대 사망사건에서 살인죄 적용에 관한 연구’(김태황 부산 금정경찰서 경사)’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인 2014년 10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된 총 20건의 판결을 분석했는데요. 연구 결과 총 20건 중 11건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가능함에도 실제로는 아동학대치사죄가 적용됐다고 합니다.

물론 형법상 치사죄가 아닌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죄라는 점에서 이전보다 형량이 강화됐다고는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은 드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왜 이렇게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기 어려운 것일까요. 우선 가정 안에서 살인이 벌어진다는 점이 이유로 제시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아동학대는 가정 내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고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특히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신생아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영유아의 경우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살피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은폐되기가 너무 쉽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리 사회가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해 가지는 ‘전통적인 편견’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모면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데, 설마 자식을 죽이려고 했겠어”라고 생각하잖아요. 이런 ‘무조건적인 자식에 대한 사랑’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을 이제는 의심하고 반성해 봐야 할 시점이란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 역시 근대화 이전부터 내려온 뿌리깊은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죠.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제는 아동학대와 관련된 판결을 내릴 때 전향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법관이 판결을 내릴 때에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한다’는 전통적인 편견에 입각해 살인한 부모에 대해 관대하게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경향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성인에게는 단순해 보이는 골절도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생명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문제로 인지될 수 있다”며 “어른의 관점이 아니라 아이의 관점에서 폭행을 바라보고, 그것이 단순 폭력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따른 살인 행위에 가까울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미필적 고의를 따져 묻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 명백한 ‘살인’이고, 그 아이 몸 군데군데 심각한 멍과 상처가 있다는 것이 부모가 ‘고의’로 아이를 죽였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왜 법률가들이 미필적 고의라는 논변을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는 살인죄보다 더 높은 형이 가능한 ‘아동학대살해죄’를 신설하자는 주장도 나옵니다. 아동학대처벌법에 살해죄를 추가해 일반적인 살인죄보다 더 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죠. 형법상 부모를 살인하면 ‘존속살해’라고 해서, 가해자는 일반 살인죄보다 더 가중처벌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자녀인 아동을 학대하고 죽이면 더 무겁게 처벌하자는 것이죠.

승 위원은 “부모를 살해(존속살해죄)하면 일반 살인죄보다 강하게 처벌하듯 아동학대처벌법에도 일종의 비속살해죄를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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