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혜림 기자] #. 직장인 A(48) 씨는 최근 생일을 앞둔 고등학교 1학년 조카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조카가 50만원이 훌쩍 넘는 구찌 지갑을 사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A씨는 “이 정도는 다들 갖고 다닌다고 해서 유튜브를 검색해봤더니, 10대 청소년들이 명품 하울(SNS에서 구매한 물건을 품평하는 것)을 하고 있더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10대 청소년들의 ‘명품 사랑’이 갈수록 뜨겁다. 온·오프라인 명품 브랜드가 주목해야 할 주요 고객층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일부 10대들은 구찌, 샤넬, 디올 등 성인도 쉽게 사기 힘든 수백만원 상당의 명품을 구입해 유튜브에 ‘하울’까지 하고 있다. 유튜브 등 미디어에 노출되는 또래들의 명품 소비가 10대들의 ‘모방 소비’를 야기한단 지적이 나온다.
몇년 전부터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엔 10대들의 명품 인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명품 브랜드 화장품은 기본이고, 옷, 지갑은 물론 수백만원에 달하는 구찌, 발렌시아가, 톰브라운 등 직장인들도 많은 고민이 필요한 가방 구매 언박싱(구매 상품을 개봉하는 것)이 잇따르고 있다.
자신을 15살이라 소개한 한 10대는 유튜브에서 “첫 시험에서 시험을 잘 봤는데 엄마가 프라다 지갑을 사줬다”고 공개했고, 또 다른 10대는 첫 다이아몬드, 첫 샤넬 가방 등을 하울하기도 했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해 온라인 명품 커머스 플랫폼 ‘머스트잇’에서 거래액 기준 1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9년 4%에서 2020년 9%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부모님 아이디로 결제한 건수까지 고려한다면 실제 구매액은 이보다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10대들의 명품 소비가 유튜브 등 SNS를 중심으로 한 또래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한다. SNS 등을 통해 주변 친구들이 명품을 하나 둘 구입하는 걸 접하며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덩달아 구입하게 된단 것이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300만건 이상 조회된 ‘룩개팅’(옷차림만 보는 소개팅) 영상에서 10대들은 상대방이 얼마나 고가의 의상과 아이템을 잘 믹스매치 했느냐에 주목한다. 가수 지드래곤(지디)이 착용했다는 600만원 상당의 나이키 운동화, 200만~300만원짜리 발렌시아가 후드티, 200만원 상당의 생로랑 가방 등 고가의 명품이 대거 등장한다.
지난해 아르바이트 전문포털 ‘알바천국’이 10대와 20대 총 426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도 이와 무관치 않다. 10대 33.6%가 추석 이후 새로운 명품을 구매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20대(26.1%)보다도 7.5%포인트 높은 수치다.
10대들이 명품을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서(18.3%)였다. 그 뒤를▷주위에 나만 없는 것 같아서(17.4%) 등 또래 집단을 의식한 구매 요인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명품 금액의 상한선도 162만3000원으로 나타났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돈이 있다면 명품 구매에 청소년, 성인이 따로 있느냐”, “각자 처지에 맞는 소비를 하는 것 뿐”이란 댓글이 달리는가 하면, “저런 명품을 턱턱 구매할 10대가 얼마나 되겠느냐, 위화감만 조성된다”, “부모 재력을 자랑하는 것 같아 박탈감만 느껴진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