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첫발 잘 뗀 택배 과로사 방지 합의, 비용 분담이 과제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을 논의해온 사회적 합의기구가 21일 가장 큰 쟁점이었던 분류작업(일명 ‘까대기’)의 책임을 택배회사가 지도록 명문화하는 데 최종 합의했다. 지금까지는 하루에 많게는 5~6시간씩 걸리는 분류작업이 배송담당 택배 기사에게 전가됐다. 배송 건당 돈을 받는 택배기사에게 분류작업은 힘만 들고 돈은 안 되는 공짜 노동이었다. 특히 이런 분류작업은 배송시간을 잠식해 과로의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진경호 위원장이 “택배가 도입된 지 28년 만에 택배노동자들이 공짜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고 벗어난 날”이라고 반긴 게 이번 합의의 성과를 말해준다. 합의가 성사되자 택배노조는 27일로 예고했던 총파업을 철회했다. 설 물류대란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차 합의문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택배 분류 작업을 떼어내 자동화하거나 전담인력을 배치해 일을 시켜야 하며, 택배기사에게 그대로 맡길 경우엔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 택배기사에게 주 60시간 이상,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 기본은 오후 9시 이후, 아무리 늦어도 오후 10시 이후에는 ‘심야 배송’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지난해 과로로 목숨을 잃은 택배기사가 16명이다. 이제라도 4만여 택배노동자가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하는 업무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다행이다.

문제는 이런 합의를 실행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택배사들이 분류인력 투입에 따른 추가 인건비와 자동화시설 투자비를 감당하려면, 또 택배기사에게 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소득을 보전해주려면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쿠팡 배송기사의 경우, 정규 직원으로 취업해 주 5일제, 주 52시간 근무를 지키며 일을 하지만 수입은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근무하는 일반 택배기사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발을 잘 뗀 과로사 대책 합의가 순항하려면 결국 택배 생태계 참여자들의 합리적 비용 분담이 풀어야 할 과제다. 2000년 3500원이던 택배 단가는 계속 떨어져 몇 년째 2000원대 초반에 머물고 있어 요금 현실화가 불가피하다. 소비자들도 일정 부분 고통을 분담할 필요가 있다. 다만 코로나 사태에 따른 ‘언택트 경제’의 가속화로 큰 수혜를 입은 택배사들이 모든 비용 증가분을 소비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홈쇼핑 같은 대형 화주들의 단가 후려치기(백마진) 등 불합리한 관행도 이참에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2차, 3차 합의를 이어가며 합리적 대안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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