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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故 박원순 업적 담은 백서 출간 ‘논란’
혈세 6700만원 투입 朴 치적 홍보
4·7 보궐선거 앞 ‘정치적 중립 의무’ 도마
성추행 피해자 재판 날 ‘출간 홍보’까지
같은 날 法은 ‘朴 전 시장 성추행 사실’ 명시
市, “시장 유고 전 준비한 사업일 뿐”
‘朴 시장 직속’ 개방직 혁신기획관 주도 ‘눈살’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정과 유골함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박 시장의 고향인 경남 창녕으로 이동하기 위해 운구차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보궐선거를 3개월 남긴 서울시가 고 박원순 전 시장의 치적을 담은 백서를 발간해 논란이다. 여권의 실책으로 시행될 보궐선거를 앞두고, 과오조차 충분히 조명하지 못한 정치인의 임기가 업적 중심으로 미화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 2011년~2020년 10년 간 추진해온 시의 혁신 정책을 한 권의 백서로 발간했다고 15일 밝혔다. 제목은 「서울혁신백서 ‘다행이다, 서울’」 이다.

언뜻 보면 서울시 정책을 모은 행정 자료집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해당 백서가 사실상 ‘박원순 백서’라는 데 있다. 백서 발간 시점이 4·7 보궐선거가 세 달도 안 남은 상황이라는 점 역시 문제를 키웠다. 시가 나서 야권 전 시장의 치적만을 찬양하는 책을 출간하고, 서울시 전자책 누리집에 무료로 배포해 선전한 점은 시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서울혁신백서 ‘다행이다, 서울’」 표지. [서울시 제공]

우선 백서가 다루는 서울시 행정 일지가 박 전 시장의 임기(2011년 10월 27일부터 2020년 7월 9일)와 90% 상당 일치한다. 서울시가 우수 정책으로 거론한 정책은 모두 박 전 시장 한 사람의 것이다. 백서가 다루는 지난 10년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제 34대 재임기간도 ‘8개월’ 포함돼 있지만 백서에서 오 전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무하다.

책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봐도 박 전 시장 일색의 백서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백서는 ‘원전 하나 줄이기’, ‘골목경제·전통시장 활성화’, ‘올빼미버스·다람쥐버스’ 등 박 시장의 정책 61개를 우수 사례로 조명했다. 이밖에 박 시장의 대표적 여성 친화 정책으로 꼽히는 ‘서울시 안심택배함·안심귀가스카우트’도 상세히 다뤘다.

또한 정치적 중립 의무를 떠나 불명예스럽게 실기한 정치인의 임기를 성공에만 집중해 조명하기에는 너무나 이르고 부적절한 시점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14일은 또한 법원에서 “이런 진술에 비춰보면, 피해자가 박 전 시장 성추행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 받은 건 사실”이라는 언급이 나온 날이기도 하다.

이날 오전 법원은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 된 서울시 직원 A씨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피해자가 진술한 피해 내용에) 박원순 전 시장 밑에서 근무한지 1년 반 이후부터 박 전 시장이 야한 문자, 속옷 차림 사진을 보냈고, ‘냄새 맡고 싶다' ‘사진을 보내달라’는 등 문자를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검찰 재수사와 수사내용 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가 박 전 시장의 불미스러운 유고 직후 백서 용역을 발주한 사실도 드러났다. 시가 밝힌 백서 발주 시점은 박 전 시장이 사망한 뒤 일주일 후인 2020년 7월 17일이다.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 우려와 시민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葬)을 강행해 비판 여론이 들끓던 바로 그때다. 출판 시기를 조정할 마지막 기회조차 시는 간과했다.

서울시 관계자에게 시의부적절한 시기에 문제소지가 있는 백서를 출간하고 홍보까지 하는 이유를 묻자 문제될 게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해당 주무부처 관계자는 “(박 전 시장 유고 전 예정했던) 일정대로 진행했을 뿐 보궐선거를 고려해 발간한 것이 아니다”라며 “지난 해 3월에 발간계획을 짜고 5~6월에 용역사를 선정한 뒤 7월에 발주해 유고 전부터 준비해 오던 일정을 추진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같은 서울시의 해명은 재보궐 선거 시점을 박 시장 사망 직후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궁색해진다. 대한민국의 공직선거법은 재보궐 선거를 4월에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 시장 사망 직후부터 2021년 4월에 보궐선거를 치른다는 기사 역시도 쏟아져나왔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을 무시한 채, 기존 일정대로 사업을 강행한 점이 면죄부가 되긴 어렵다.

서울시에게 시정 실패를 조명해야 할 시기가 아닌지, 그런 점은 백서로 발간하지 않는 것인지 다시 물었다. 이에 관계자는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서울시 자료 가운데 개선 과제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일일이 말하기 어렵다”며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해당 백서를 발간한 주무부처가 ‘박원순의 사람들’로 불리는 서울혁신기획관인 점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서울혁신기획관은 지난 2011년 12월 박 전 시장이 신설한 ‘시장 직속’ 기구다. 개방형 직위인 까닭에 박 전 시장이 외부에서 기용한 인력들이 주축이 됐다. 현 서울혁신기획관 역시 서울시NPO지원센터장 출신 시민단체 인사다. 오는 1월말 임기 만료를 앞둔 정선애 서울혁신기획관이 박 전 시장을 향한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야 말았다는 뒷말도 나온다.

한편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 사업에는 예산 6700만원이 들어갔다. 서울책방에서 종이책을 구매할 수 있고, 전자책은 무료로 시민들에게 공개해 사실상 무제한 배포된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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