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도 사후 가정 방문 2→6회 늘리는 대책 내놔
“매뉴얼 지키는데 그치지 말고, 책임과 전문성 갖춰야”
입양한 양부모의 학대로 세상을 뜬 16개월 영아 정인이의 사망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공분으로 뒤늦은 대책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 7일 오후 정인이 양부모의 학대치사 사건에 대한 공판이 진행될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입구에 시민들이 놓아둔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학대에서 입양으로 번지고 있다. 입양·아동보호 전문가들은 입양 기관·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자칫 입양에 대한 의식이 나빠지지 않을까 우려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8일 국내입양인연대, 뿌리의힘 등 입양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 정인이의 입양 절차를 담당했던 홀트아동복지회 특별감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같은 시간 국회에서도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 문제점을 진단하는 긴급 간담회가 열렸다. 보건복지부도 입양 후 사후 가정 방문을 2회에서 6회로 늘리는 방향으로 ‘2021 입양 실무 매뉴얼’을 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입양 전문가들은 입양 가정에서 벌어지는 학대를 다르게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일 국회 간담회에 참석했던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정인이 사건의 경우 입양이 이뤄지지 않았으면 학대도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홀트 특별감사 회견을 했던 김도원 뿌리의힘 대표도 “입양 시스템과 학대 예방 시스템 모두 구멍이 났다”며 “‘문제는 입양이 아니라 학대’라는 것은 입양기관 등에서 하는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건 중 입양 가정 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2019 아동학대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건 4986건의 행위자 중 양부모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0.2%(58명), 26명(0.1%)에 불과하다. 아동학대 행위자 중 대부분은 친부(41.2%)와 친모(31.1%)였다. 그러나 입양 가정 자체의 수가 적은 것에 맹점이 있었다. 복지부에서 밝힌 국내 입양 아동 수는 ▷2017년 465명 ▷2018년 389명 ▷2019년 387명 등이었다. 2009년부터 11년간 누적 국내 입양아동 수는 9231명에 불과했다. 연평균 1000명에도 못 미친다.
제대로 된 입양 부모 적격성 검사와 사후 관리가 필요하나 이는 모두 민간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도 문제다. 현행 입양 절차는 민간 입양 기관에서 예비 입양 부모 심층 면접과 가정 조사 교육 등 결연 절차를 마친 뒤 가정법원에서 가사조사관이 동일한 절차를 거친다.
홀트 측은 “정인이가 입양되기까지 1년 7개월 동안 양부모와 여러 차례 상담과 총 7회 만남을 가졌다”며 매뉴얼을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입양 후에도 “3회의 가정 방문과 17회의 전화 상담을 진행했다”며 입양특례법과 입양 실무 매뉴얼 등을 준수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입양 기관이 ‘매뉴얼’만 따를 것이 아니라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노 교수는 “매뉴얼은 말 그대로 아주 기본적인 지침이라 홀트 역시 지침은 다 따랐다”며 “단순히 횟수만 늘릴 게 아니라 위기 상황이 감지되는 입양 가정과 더 대화하고 도움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전문성”이라고 설명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입양이 공공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제 바로잡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입양 기관·절차에서 문제점을 진단하는 것과 별개로 입양 가정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제언도 따른다. 정 교수는 “모든 형태의 가정에서 학대가 일어나는데 이번 사건으로 입양 가정의 학대가 부각돼 아쉽다”며 “원래부터 입양이 잘 안됐는데 편견이 생길까 걱정스럽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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