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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이너스가 나도 유지라도 하는 것…지금은 버텨내기 중”…김지원 EMK 부대표
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 겸 EMK엔터 대표
‘웃는 남자’부터 ‘몬테 크리스토’까지 힘겹게 견딘 2020년
“200~300명 생계 짊어진 산업, 책임감으로 견디기”
 
뮤지컬계 최초 온라인 유료 공연, 웹뮤지컬 시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우리의 방향성”
엄홍현 대표와 함께 EMK뮤지컬컴퍼니를 공동창업한 김지원 부대표는 코로나19를 보낸 지난 한 해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뮤지컬 업계에 또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 웹뮤지컬 제작과 공연 영상 유료화는 팬데믹으로 고사 위기에 직면한 공연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세상이 무너진 이 순간, 너의 음악이 되리라.”(뮤지컬 ‘팬텀’ 카피)

2021년 라인업 공개를 앞두고 EMK뮤지컬컴퍼니에도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일주일 단위로 상황이 급변하는” 코로나 시국을 보내며 공연계는 그 어느 해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모든 것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이 힘들더라고요.” 공연업계에 발을 들인지 18년. 김지원 EMK뮤지컬컴퍼니 부대표(EMK엔터테인먼트 겸 EMK인터내셔널 대표)에게도 유례없는 해였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어요. 대중의 입장에선 당장 먹고 살기도 어렵고 힘든데, 공연계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하고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공연을 보러오라’고 적극적으로 권할 수도, ‘우리도 힘들다’고 토로할 수도 없었다. 그저 “우리가 처한 입장에서, 거슬리지 않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고 김 부대표는 이야기했다.

다가오는 3월, 네 번째 시즌의 개막을 앞둔 뮤지컬 ‘팬텀’의 메인 카피도 이렇게 태어났다. “니체가 ‘견딜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예술 뿐’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음악과 무대, 예술의 힘이 모든 것이 피폐한 이 시기를 치유할 수 있다고 전하고 싶었어요.”

이미 한 달 넘게 공연이 중단됐지만,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는 분주했다. 김 부대표의 다이어리도 빈틈없이 빼곡 했다.

“공연을 해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에요. 마이너스가 나더라도 유지라도 하기 위해 공연을 올리고 있어요. 산업이 돌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환경이라도 만들기 위해서에요.” EMK에서 제작하는 한 작품에는 무려 200~300명의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버텨내기’ 중이에요.”

'몬테 크리스토' 신성록 이지혜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곤두박질 공연계…업계 리더로 마주한 현실

지난 한 해 공연계 매출은 해마다 곤두박질쳤다. 2020년 전체 매출은 약 1717억8800만원(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집계). 지난해 2405억원(1월 1일~12월 31일) 보다 30% 가량 줄었다. 제작비가 더 많이 투입되는 대형 뮤지컬일수록 손해가 크다. 공연이 중단되는 횟수가 잦고, 거리두기 좌석제로 객석 점유율이 50% 미만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쉽사리 멈출 수는 없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무대를 이어갔다. 코로나19 이후 EMK 직원, 출연 배우, 스태프들은 10~50% 이상 월급도 자진 반납하며 고충을 나눴다. 전신인 다인컬쳐에서 시작, 2009년 EMK를 창업하며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어느덧 리더그룹으로 자리한 EMK가 가지는 무게였다. 김 부대표는 EMK의 공동 창업자다. 공연업계와는 무관한 일을 해오다 엄홍현 EMK 대표의 제안으로 이 곳에 뛰어들었다. 사명에는 두 사람의 성(엄, 김)이 이니셜로 들어갔다. 그 시간의 길이가 어느덧 강산을 두 번 바꿀 만큼 지났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뛰어다니던 초년병 시절을 거쳐 마주한 지금, EMK의 위치도 달라졌다.

“쉽게 포기하거나, 우리만 생각해 내리는 결정들이 업계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더 큰 책임감을 가지고 결정해야 하는 때에 접어들더라고요. 문화 예술 전반에서 가장 산업적이고 상업적인 분야는 뮤지컬이고, 그 안에서도 EMK가 어느덧 앞에 나와 있는데 어렵다고 셧다운을 결정하면 일파만파 영향을 미쳐요. ”

지난해 추석 연휴 동안 유료 온라인 상영회를 진행한 뮤지컬 '모차르트!'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공영 영상 유료화, 혁신적 시도 ‘웹뮤지컬’로 새 돌파구 개척

주저앉기 보다 적극적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 엄혹한 시기에 EMK의 시도는 업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뮤지컬 업계 최초로 온라인 영상의 유료화를 시작했고, 웹뮤지컬을 제작하며 새 활로를 확인하고 있다. 김 부대표가 주축이 된 사업이다.

“2015년부터 관심을 가지고 영상화를 시도했어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죠. 특히 브로드웨이에선 더했어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면서도 눈에 띄는 공연 영상이 없기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도 마찬가지였다. “무대 공연의 본질을 훼손한다거나 침해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무대는 라이브 무대만의 것을 가져가야 존재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컸던 거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맛집 프로그램에서 맛있는 맛집 영상을 본다고 음식을 안 먹어봐도 된다고 하지 않잖아요. 나도 먹어보고 싶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영상을 별 볼 일 없게 만들면 가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해답은 여기에 있었다. ‘정말 좋은 영상’을 만드는 것. “사람들을 끌어올 만큼 매력적인 영상을 만드는 것이 영상화의 본질이자 사업방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영상이 공연을 훼손한다는 생각은 별 볼 일 없는 음식 영상을 만들면 그 식당은 망한다는 것과 같다는 관점으로 봤어요.” 억대 제작비를 들이는 별도 사업인 만큼 시장성과 상업성을 확인해야 했고, 질 좋은 영상을 만들 시간이 필요했다. 지미집, 무인 달리, 풀HD 카메라를 동원해 다양한 각도로 촬영한 영상을 준비했다. 화면 너머에선 배우들의 땀방울이 흐르고, 애절한 눈빛을 마주했다. 등 돌린 배우의 표정이 생생히 전달됐다. “객석에는 없는 좌석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에요.” 차근차근 해오던 일은 팬데믹과 함께 봇물처럼 터졌다.

2015년 ‘마리 앙투아네트’를 시작으로 지난 한 해 ‘모차르트’, ‘엑스칼리버’를 유료로 공개했고, 올 2~3월엔 굴지의 영화사와 손잡고 촬영한 ‘몬테크리스토’ 공개를 계획하고 있다. “무엇보다 유료화를 시도한 점에서 의미를 많이 두고 있어요. 관객들도 공연 영상을 유료로 본다는 인식이 생겼어요.” K팝 가수들의 온라인 콘서트가 공개되는 네이버 브이라이브의 가격 기준에 맞춰 설정한 3만원대의 관람료는 공연 업계에도 ‘표준’을 제시했다. “지금은 너무 많은 영상이 피로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팬데믹이 끝나고 거품이 빠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죠.” 목표는 더 원대하다. 기존의 뮤지컬 팬은 물론 영상 콘텐츠로의 관객 확장을 기대하고,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소개 자료로도 준비 중이다. “전 세계 공영 영상은 NT라이브, 메츠 오페라, EMK가 대표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라이브러리를 쌓아가고 싶어요.”

웹뮤지컬(EMK엔터테인먼트 제작)을 시도한 것도 공연계에선 첫 시도다. “EMK 콘텐츠라는 기준을 버리고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역발상으로 태어났다. 아이디어도, 제작 방식도 혁신적이었다. B급 감성이 묻어난 첫 작품 ‘킬러 파티’는 10명의 배우가 한 번도 만나지 않고, 각자의 공간에서 촬영을 마쳐 9개의 에피소드로 공개됐다. 김 부대표는 웹뮤지컬 제작을 위해 사비까지 털어 넣었다. 아직은 시장성을 검증하는 단계. 그는 “언젠가는 역주행을 하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며 웃었다. 3월 중엔 VOD로도 공개할 예정이다.

김지원 부대표는 ““올해는 상처를 치유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이젠 EMK의 100년을 그려본다”고 말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2021년은 ‘상처 치유의 해’…EMK의 100년을 꿈 꾼다’

지난 한 해 코로나19 속에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 김 부대표는 “올해는 상처를 치유하는 한 해가 되지 않겠냐”고 했다. “빠르게 걷기 보다, 다친 곳들을 보살피며 2022년과 2023년을 준비하고 더 상처나지 않게 돌보는 한 해이자, 다시 시작하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여전히 굳게 닫힌 대형 공연장을 바라보며 김 부대표도 다시 희망의 메시지를 쓴다. 기본은 콘텐츠다. ‘유럽 뮤지컬’을 정착시킨 EMK의 방향성은 확고하다. “하나의 장르에 코어한 작품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에요.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작품, 감동을 주는 작품이 기본이에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10만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는 만큼 스토리건, 음악이건, 미학적인 부분이건 무엇 하나 감동하고 만족감 높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엄마에게 추천하고, 우리 가족에게 티켓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EMK의 방향성이에요.” 탄탄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더 큰 미래를 그린다. 불도저같은 추진력의 엄 대표와 차분한 카리스마의 김 부대표의 시너지로 쌓아올린 EMK의 과거와 현재를 발판 삼아 펼쳐보는 완전히 새로운 청사진이다.

“지난해 10주년을 맞으며 전성기라고 생각했어요. 브로드웨이처럼 우리가 100년 된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죠. 지금은 마음속에 EMK의 100년을 그려요. 그런 준비를 해나가야겠죠.”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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