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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사과’의 정치학

본래 유권자들은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합리화하려는 특성이 있다. 자신의 정치행위 결과가 옳다는 신념을 가진 경우가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많은 중도층 유권자나 합리적 보수들은 자신의 정치 행위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친박(친박근혜)과 친이(친이명박) 계열의 의원들이 다수 포진한 국민의힘을 지지하기도 어렵다. 탄핵의 기억을 합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 성향은 정치권이 먼저 손을 내밀기 전에는 바뀌기 힘들다. ‘정치권이 손을 내민다’는 말은, 자신의 정치적 행위를 합리화하는 유권자들에게 본래의 정치성향으로 회귀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명분을 제공함을 뜻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사과는 바로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은 두 전직 대통령이 현재 영어의 몸이 됐다는 점과 상황이 이 지경에 되기까지, 당시 여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했다. 김 위원장의 사과 전까지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상당한 반발이 있었다. 사과에 반대했던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역구 상황과 정치적 기반을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내년 4월 보궐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2022년 3월 대선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고, 이를 위해 합리적 보수와 중도층을 다시금 지지층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 이외에도 김 위원장의 사과는 일종의 대비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여권과의 대비 말이다. 그동안 여권은 수차례 ‘사과’를 했었다. 그런데 대부분은 자신들과 무관한, 아니 자신들이 공격하고 싶은 과거 보수 정권의 행적에 관한 사과였다. 정작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사과는 거의 없었다. 부동산 관련 국민의 불만이 치솟아도, 사과와 반성 대신 ‘현상의 자의적 해석’만을 주장하고 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서도 ‘송구하다’는 말이 전부다. 예전부터 전문가들이 말해왔던 병상 부족사태가 눈앞에 닥치고, 의료진의 부족 사태가 코앞으로 다가온 판국에, ‘코스피 3000’ 돌파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다는 데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국민적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조속한 백신 접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여권에서 나오는 말은 내년 3월 이전에 시작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현재 영국과 미국은 이미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캐나다와 싱가포르도 곧 개시한다. 그런데 여권은 구체적인 로드맵 제시도 없이, 막연하게 내년 3월 이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한 가지 분명히 할 점은 여권이 그렇게 자랑했던 K-방역은, 방역 수칙을 잘 지킨 국민들과 헌신적인 의료진 덕분에 성공적이었지만, 백신 도입 문제는 전적으로 정부 몫이라는 점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구 대비 미국은 154%, 일본은 120%, 영국의 경우 295% 그리고 캐나다는 410%에 해당하는 양의 백신을 계약했다. 우리가 확보한 양은 이보다 훨씬 못 미칠 뿐 아니라, 도입 시기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백신 관련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 위원장 사과의 대비효과가 두드러질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사과가 당장의 여론조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년 선거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선거란 자신이 선호하는 정당을 찍기보다는 싫어하는 정당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행위이어서, 이번 사과는 보수에 대한 거부감을 상당 부분 완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에서도 사과는 필요한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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