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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평균 3명이 한강 다리에서 수화기를 든다… 극단선택·범죄로 이어진 ‘코로나 생활고’
한강 교량에 설치된 SOS 사랑의 전화 하루 평균 3건
생명의 전화 사이버 상담 전년 대비 약 53% 증가
통계청, 자살 충동 가장 큰 원인 ‘경제적 어려움’
코로나 생활고로 인한 ‘생계형 범죄’도 나타나

[123RF]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1. 지난 10월의 어느 날 자정. 20대 남성 A씨는 서울 용산구 동작대교 위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3년여간 혼자 살아온 A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라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일을 구하기 어려워 월세조차 내지 못하게 됐다. 일터가 먼 곳으로 잡히면 걸어서 이동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던 A씨는 최근 집에 도움을 청했지만, 부모의 언어폭력과 무관심에 또 한 번 좌절했다. A씨는 “일을 못 구하는 기간이 길어져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동작대교를 찾았다”고 수화기에 털어놨다.

#2. 지난 11월 40대 남성 B씨도 새벽 1시에 마포구 양화대교를 찾아 ‘SOS 생명의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건강 문제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용직으로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며 기숙사에서 지내던 B씨는 해당 현장 일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일을 구할 수 없어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식사조차 챙기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던 B씨는 “다가오는 겨울과 앞으로의 생활이 막막해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다”고 수화기에 토로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누군가는 한강 교량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삶에 대한 미련 한가닥. 그 한가닥을 붙들기 위해, 한강에 오른 누군가는 전화기를 든다. SOS 생명의 전화다. ‘SOS 생명의 전화’는 한국생명의전화(생명의전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가 함께 운영하는 한강 교량에 설치된 자살예방을 위한 긴급상담 전화기다. 2017년 기준, 서울시 관할 19개 한강교량에 총 74대의 전화기가 설치돼 있다.

생명의전화 관계자는 “SOS 생명의 전화 운영을 시작한 2011년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총계를 합하면 하루 평균 3건의 전화가 온다”며 “가장 긴장되는 순간 중 하나다. 수화기 너머 상담 신청인의 현재 상태를 우선적으로 파악하고, 발걸음을 돌릴 수 있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방향으로 통화를 진행한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생활고를 호소하는 이들은 크게 늘었다. 어떤이는 생활고에서 비롯된 우울증에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범죄를 저지른다.

8일 생명의전화에 따르면 올해 1~8월 생명의 전화로 접수된 전체 사이버 상담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약 53%가 증가했다. 특히 위기·자살 상담의 경우 약 16%가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원인으로 풀이된다. 상담 신청자 중 상당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이유로 ‘생활고’를 들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한 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5.2%로, 2년 전보다 0.1%포인트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자살 충동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적 어려움’이 38.2%로 남녀 모두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와 관련 육성필 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 특별대책위원장은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 상담 사례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경제적인 압박을 호소하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며 “돈 들어갈 곳은 많고, 해결책은 안 보이고, 끝이 안 보이는 데에서 오는 막막함과 우울감 등을 많이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생활고는 우울증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뿐만 아닌 범죄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 6일 오후 9시께 양산에서는 8살 아들의 머리를 베개로 눌러 살해한 혐의를 받은 C(39) 씨가 붙잡혔다. C씨는 조사 과정에서 이혼 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우울증이 심해져 범행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지난 10월에는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올해 초 달걀 한 판을 훔친 혐의로 기소된 D(47) 씨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D씨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살길이 막막해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재산범죄의 발생건수는 16만491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 코로나19 유행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올해 2분기 재산범죄 발생건수는 2018년과 2019년 같은 분기와 대비해 가장 많이 나타났다.

육 위원장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힘든 부분이지만, 그동안 1~2차 유행 때도 극복해 온 경험이 있으니 이번에도 한고비만 넘기면 극복할 수 있다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pooh@heraldcorp.com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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