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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4%가 준비 안됐다는데 주52시간 강행…속수무책 중기 “그냥 벌금만 내야죠”
코로나19로 ‘잃어버린 1년’에 주 52시간제 준비 미흡
코로나 회복기 대응책 ‘유연근무제 확대’는 없던 일로
정부 “현장 안착” 강행에 중소기업들 “누굴 위한 정부냐”
정부가 유예기간 연장 없이 내년부터 주 52시간제를 전면 실시하기로 하면서 중소기업들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한 전자부품 업체의 생산라인. [헤럴드 DB]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 극복도 어려운 판국이다. 같은 코로나를 핑계로 정부와 정치권이 보완입법도 안 해놓고 당장 한 달 뒤 시행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주 52시간제 계도기간 종료시점을 한 달여 앞두고 정부가 ‘추가유예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중소기업계가 공황상태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도 주 52시간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12일부터 정부, 여당과 야당에 차례로 유예기간 1년 연장을 건의했던 중소기업계는 “(기업인들) 다 범법자 되라는 얘기냐”, “벌금 무는 수밖에 없는 것이냐”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한 식품 수출 중소기업 대표는 “바이어 주문이 몰리면 서울 사무소 직원들까지 공장에 나가 야근, 특근하며 선별·포장 작업을 해야한다”며 “언제 어떻게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직원 근무 시간에 맞춰 주문을 반려하라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올해와 내년은 코로나19라는 변수를 감안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한 전자 부품업체 대표는 “제조업에서 주 52시간을 지키려면 추가로 인력을 뽑아야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급감해 오히려 사람을 줄여야 할 판이다”며 “내년에 ‘코로나 회복기’에 접어들면서 주문이 몰리면 이걸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되물었다. 각종 연구기관들이 코로나 영향권에서 벗어난 이후 ‘보복성소비’를 예상하는 만큼, 유연근무제 확대 등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전혀 없이 근무시간만 줄이는 조치라는 것이다.

연구개발 인력이 주를 이루는 중소기업의 경우엔 대응이 더 곤혹스럽다. 원청업체와의 공급계약에 시일을 맞추려면 짧게는 수 주, 길게는 몇 개월씩 개발에 매달려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 52시간을 준수하며 계약시한을 지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다. 이같은 사정은 회사 직원들도 대체로 공감하는 편이다.

IT센서와 광대역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한 업체의 경우 발주물량 총량제와 함께 직원 채용을 늘리는 것으로 주 52시간에 대비하고 있다. 주 52시간 위반으로 제재를 받지 않기 위해 매출 감소와 경영 비용 부담 증가를 택한 것이다. 원청사로부터 시급한 제품개발 요청이 들어오더라도 인력운용 계획을 고려해 수주해야하는 상황이다. 만일 다급한 원청사가 이 때문에 다른 업체에 물량을 돌려도 방법이 없다.

이 업체 관계자는 "주 52시간제는 충분한 인력과 매출 규모를 갖춘 회사들에나 가능한 것"이라며 "우리 같은 중소업체들이 이를 준수하려면 우선 손실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애초에 정부의 판단 근거가 된 ‘주 52시간제 현장 안착’이란 결론도 중소기업 현장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9월 50인 이상 299인 이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수조사 한 결과, 81.1%의 기업이 주 52시간제를 ‘준수 중’이라 답했다.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내년에도 주 52시간제 시행에 대해 91.1%가 ‘준수 가능’이라 답했다.

그러나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 52시간제 준비가 안 돼 있다’는 중소기업이 39%였다. 특히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로하는 업체는 83.9%가 ‘준비를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책수요자의 84%가 준비를 못했다는데, 정부는 제도를 강행하는 부조리. 중소기업들은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되묻고 있다.

도현정·유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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