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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무악’ 꾼들, 낯선 ‘칠채’의 맛에 푹 빠지다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 2년만의 재연
한국 고유의 장단 ‘칠채’를 요리한 무대
“기이하고 해괴…처음엔 장단도 못 세”
변주·불규칙한 장단 가까스로 정복
박제된 전통 아닌 살아 숨쉬는 리듬 재현
“한 장단 안에 2분박, 3분박이 동시에 들어있는” 칠채는 소리와 무용엔 쓰이지 않는 장단이다. ‘가무악칠채’는 소리, 무용,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칠채 장단에 맞춰 무대를 꾸민다. [국립극장 제공]
허성은 음악감독,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출연한 국립무용단 이재화, 새롭게 합류한 정가 박민희(왼쪽부터) 이상섭 기자

“123 12 123 12 123 123(원투쓰리 원투 원투쓰리 원투 원투쓰리 원투쓰리)”. ‘징을 일곱 번 친다’고 해서 ‘칠채’라고 불린 이 장단은 “기이하고 해괴망측하다”. 웃다리 농악의 대표적인 장단. 길놀이에 많이 쓰였다는 한국의 소리인데, 어떻게든 세어보려 하면 불규칙하고 낯선 장단 앞에 길을 잃기 마련.

“처음엔 다들 장단을 못 셌어요. 무용에서 쓰는 장단이 아니다 보니 구조를 몰랐던 거죠.”(안무가 이재화)

장단을 습득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가무악칠채’의 시작이자, 공연의 안무를 맡은 무용수 이재화(국립무용단)는 “전통음악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장단인 줄 알았다”고 했다.

이게 웬걸. 연주자도, 소리꾼도 모두 고개를 저었다. ‘칠채’라는 장단에 춤을 추고, 소리를 하고, 연주를 하는 것은 모두에게 도전이었다.

“서울 사람들한테 전라도 말을 할 줄 아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거예요. 음악적으로 완전히 다른 장르거든요.”(정가 박민희)

“한 장단 안에 2분박, 3분박이 동시에 들어있어”(이재화) 소리와 무용엔 쓰이지 않는 장단 하나를 두고 요리를 시작했다. 가(소리), 무(무용), 악(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칠채’를 모아 무대에 올리고자 했던 것이 ‘가무악칠채’의 출발. 끊임없이 부딪히고, 변주하는 장단에 맞춰 무용수는 춤을 추고, 소리꾼은 소리를 하고, 악사들은 연주를 한다. 아쟁, 태평소, 장구, 북과 같은 일반적인 국악기에 서양 악기인 기타와 드럼, 베이스가 난입했다. 휘몰아치는 장구의 칠채 장단에 강렬한 기타 사운드가 얹어지니 록 음악을 방불케 한다.

“가장 한국적인 장단”(이재화)이라는데, 박제된 ‘전통’이 아닌 살아숨쉬는 현재의 리듬이 귓전에서, 몸안에서 팔딱거린다.

2년 전 첫 무대를 가진 국립무용단의 ‘가무악칠채’(11월 20~22일, 달오름극장)가 다시 돌아온다. 공연 준비에 한창인 이재화 안무가, 허성은 음악감독, 이번에 새로 합류한 정가 박민희를 최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 기다린 재연이지만, 이번 공연은 ‘초연’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많은 것이 달라졌다. ‘가무악칠채’는 국립무용단의 차세대 안무가 발굴 프로젝트 ‘넥스트 스텝1’에서 30분 분량으로 시작했던 공연의 ‘확장판’. 가장 큰 차별점은 ‘정가’의 등장이다. 너무도 빠른 ‘칠채’ 장단에 “한 글자를 길게 늘어뜨려 부르는” 정가를 더했다. N극과 S극의 만남. 꽉 채워진 공연을 ‘비우기’ 위한 선택이었다.

새롭게 합류한 박민희는 “처음엔 이 장단을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칠채 한 장단이 10초 정도의 빠르기라면, 정가는 40~50초 정도의 빠르기예요. 칠채를 보여주는 여러 방법론 중 가장 느린 호흡으로 가져가는 역할이에요.” 박민희는 소리꾼 김준수와 함께 칠채의 구조를 노래로 설명한다. “영어 텍스트로 부르는 것이 낯설기도 하면서 제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 고민이 많았어요. 기존 작업이 완성도 높게 나왔기 때문에 제가 잘 끼어들 수 있을지, 그러면서 동시에 달라야 한다는 고민이었어요.”

공연을 올리는 세 사람의 목표는 하나였다. 이들 모두 ‘칠채’만을 보고 달려왔다. 이 독특한 장단을 체화해 ‘칠채’를 위한, ‘칠채’에 의한 공연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칠채 한 장단을 한 시간 동안 듣는 것은 쉽지 않아요. 사람들은 4박에 익숙한데 칠채는 딱 떨어지지 않거든요. 5박 같은데 곱씹으면 아니고, 마지막에 살짝 틀어 듣는 사람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장단이에요. 규칙적이지 않아 매력적이죠.” (허성은)

“맞아떨어지지 않는” 칠채라는 장단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 고유의 장단이라고 이재화는 자부한다. 하지만 이 장단은 ‘불편한 음악’이다.

“굿 장단에도 홀수박을 많이 썼어요. 왜 옛사람들은 홀수박을 많이 썼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신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비트가 아닌 다른 비트에 반응한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 홀수박을 어렵게 해서 더 사이키델릭하게 만든 거죠. 우리는 항상 4박에 노출돼 있는데, 다른 비트를 들으면 본능적으로 이상하다고 느껴요. 그게 칠채인 거예요.”(허성은)

“이 불편함을 듣기 편하게 만들어보자는 시도도 있었어요. 사실 칠채를 듣다가 4박의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웃음)” (이재화)

‘칠채’가 뭐길래, 이 작은 소재 하나를 구워먹고 삶아먹는 가무악 ‘꾼’들의 눈은 빛나고 얼굴은 상기됐다. ‘칠채’는 꾼들에게 ‘완전 정복’됐다. 박민희는 “이 복잡한 칠채라는 장단을 완벽하게 체화하는 무대를 보면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사실 목적지도 그 곳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칠채를 유지하는 것”. 이 고유의 가치를 유지해 결승점을 향해 달렸다.

“사물놀이를 할 때 칠채 장단이 고조되면 사람들은 반 미치는 것처럼 보여요. 저희도 그 마지막 장면을 위해 55분을 하는 거예요. 미칠 정도의 속도와 힘듦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연주자, 소리꾼, 무용수 모두가 춤을 몰아칠 때의 모습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이재화)

전통의 울타리 안팎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켜온 젊은 ‘꾼’들은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전통’에 새 옷을 입혔다. “틀을 깼다거나, 현대적으로 바꿨다고, 그래서 특별한 공연이라고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어떤 것을 해도 한국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해오던 것을 한 거니 그 안에서의 예술적 완성도를 봐주세요.”(이재화, 박민희)

체력을 완전히 소진하는 무용수, 기이한 장단에 융화된 소리,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낯선 조화… 무대 위 ‘꾼’들의 피땀 섞인 고통의 시간은 관객에겐 ‘희열’을 안겨줄 거라는 장담이 나온다. 한 시간의 공연을 마치면 관객의 심장박동은 어느덧 칠채 장단에 맞춰 뛰게 될지도 모를 일. ‘원투쓰리 원투 원투쓰리 원투 원투쓰리 원투쓰리…’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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