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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데이터] 23년 여정 ‘자기관리 모범생’ 이동국…위대한 228골 ‘한국축구의 별’로 남다
MVP 4차례… 300공격포인트 돌파
전북서 8차례 우승컵…K리그 역사로
전북 이동국이 1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2020 K리그1 리그 우승컵을 든 채 동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

2020년 11월1일. 한국축구는 앞으로 영원히 잊히지 않을 스타를 역사 속으로 떠나보냈다.

프로축구 최강팀 전북에서 뛰며 8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린 ‘라이언 킹’이동국(41)이 영광과 아픔이 점철됐던 23년의 축구여정을 마감하고 팬들의 박수 속에 유니폼을 벗었다. 98년 프로에 데뷔한 이후 이동국은 K리그에서만 548경기를 뛰며 228골 77도움을 기록했다. 골키퍼가 아닌 필드플레이어로 41세까지 뛰며 통산 548경기를 뛰었다는 것은 어지간한 자기관리와 기량이 아니고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통산 300공격포인트를 넘어선 이동국은 MVP도 4차례 수상했다. ▶관련기사 24면

이동국이 그라운드에서 뛴 한경기 한경기, 한골 한골은 곧 K리그의 역사로 남았고, 전북의 우승 자양분이 되었으며, 한국축구의 자존심이 됐다.

기록으로만 봐도 이동국의 성적은 당분간, 아니 어쩌면 영원히 깨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동국이 최고의 팀에서 주전공격수로 10년 이상 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기량은 물론이고, 스무 살 어린 후배 선수들에게도 뒤지지 않기위한 철저한 체력관리와 자기관리를 해냈기 때문이다.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포항에서 데뷔한 이동국은 성남을 거쳐 2009년 전북으로 이적하며 최강희 감독과 함께 자신의 최고 커리어를 만들어갔다. 이동국에게 전북은 최고의 둥지였고, 최강희 감독에게 이동국은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이동국은 전북에서만 361경기를 뛰면서 164골 48도움을 기록했다. 오늘날 전북이 K리그의 독보적인 강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기업인 현대차의 전폭적인 지원과 최강희 감독-이동국 조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K리그에서는 더 이룰 것이 없는 이동국이었지만 그에게도 아픈 상처는 있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19세의 나이로 깜짝 교체출전해 축구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동국은 이후 안정환·고종수와 함께 K리그 인기폭발의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그의 월드컵은 아쉬움이 가득하다. 절정의 시기였던 2002년에는 히딩크 감독의 낙점을 받지 못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통한의 부상을 당하며 승선에 실패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득점찬스를 놓치며 비난의 화살을 맞기도 했다. 2007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에 진출했지만 정상적인 몸이 아니었던 이동국은 쓸쓸히 조기 귀국하고 말았다.

이런 아픔은 평생 이동국에게 아쉬움으로 남겠지만, 우리가 그를 최고의 선수로 기억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전북은 이동국의 등번호 20번을 영구 결번했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이동국을 전북만이 아닌 한국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하나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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