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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전세난 “소설같은 현실”…‘영끌’아니라 ‘운끌’까지 해야되나[부동산360]
전셋집 보러 갔는데…줄 서고 가위바위보
‘이사날짜 미정’ 조건에도 계약희망자 줄이어
임대사업자 매물, 보증금 상한에 시세보다 저렴
전세 희망 여러팀 한번에 집보는 경우도 흔해져
더 어려워진 ‘세입자 고시’…면접 요구도
정부 “전세 수요자 어려움 무겁게 받아 들여”

#. 13일 오전 10시께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가양9단지. 이 단지 15층의 한 집 앞에는 마스크를 낀 10여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귀한 전셋집’을 구하려고 한달음에 달려온 이들이다. 이날 집을 둘러본 9개팀 중 5개 팀이 현장에서 전세계약 의향을 밝혔다. 공인중개사는 전셋집에 들어갈 행운의 1인을 선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내밀었다. 5개팀은 가위바위보를 통해 제비뽑기 순서를 정했고, 이윽고 계약 대상자가 결정됐다.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단지에 전세매물을 보러 온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의 전세매물이 씨가 마른 상황에서 남은 매물이라도 잡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치솟은 전셋값에 ‘영끌 대출(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은 기본이다. 매물을 선점하는 데 가위바위보와 제비뽑기까지 동원되면서 ‘운끌(평생 쓸 운을 끌어모은다)’도 중요해진 상황이다. 극심한 전세난이 만들어 낸 웃지 못할 풍경이다.

14일 공인중개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온라인 중심으로 확산된 ‘전셋집을 보러 간 날 9팀이 몰려 가위바위보를 했다’는 사연은 사실이었다.

전세매물로 나왔던 가양9단지, 전용 49㎡(15층) 매물은 2억6200만원에 당일 거래 완료됐다. 이 매물은 기존 세입자가 이사 나가는 날짜에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가 맞춰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지만, 계약 희망자들은 개의치 않고 집을 찾았다고 한다.

이 매물을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가뜩이나 전세매물이 귀해진 상황에 임대보증금 증액 상한이 정해진 임대사업자 등록 매물이어서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며 “일반 전세매물 시세가 3억3000만~500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싼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993년 지어진 이 단지는 1005가구 규모로, 이날 기준으로 남은 전세물건은 5건에 그친다. 소형 면적 위주의 이 단지에서 상대적으로 넓은 면적에 속하는 전용 49㎡ 매물은 1건뿐이어서 비슷한 상황은 또 펼쳐질 수 있다고 이 공인중개사는 전했다.

사연이 처음 올라올 당시만 하더라도 ‘소설’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으나, 실제 이런 과정을 거쳐 거래된 물건이 확인되면서 전세난의 현실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5일 기준으로 67주 연속 상승 중이다. 청약 대기나 학군 수요는 쌓여가는데 새 임대차법과 실거주 의무 강화로 매물 품귀 현상이 짙어졌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월별 변동률 [한국감정원]

최근 서울 강동구의 한 아파트 전세매물을 보러 간 박 모씨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는 “집주인이 1시간만 집을 보여준다고 해서 부동산 4곳을 통해 온 4개팀이 한 번에 집을 보러 들어간 적이 있다”며 “집을 보는 와중에 누가 먼저 계약금을 쏠까 봐 노심초사했다”고 말했다.

새 임대차법 도입으로 집주인이 세입자와 4년은 계약을 이어가야 하는 만큼 아예 처음부터 세입자를 깐깐하게 가려 받아 ‘임대 리스크’를 줄이겠다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직업, 자녀 수, 애완동물 유무 등을 따지고 세입자 면접을 요구하는 것과 비교하면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는 양호한 수준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중개업소도 전세매물 잡기에 분주한 상황이다. 집주인들에게 “전세매물 내놓을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를 돌리고 있지만 나오는 매물은 거의 없다는 게 공인중개사들의 설명이다.

매물이 나오더라도 온라인 상에 띄울 시간이 없다는 전언도 이어진다. 기존 대기자에게 소개할 매물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입금하는 사례도 있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을 내놓고 계약금이 들어오기까지 2시간도 안 걸린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정부도 전세난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새 임대차법 시행 후 2~3개월 안에 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당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신규로 전세를 구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전세가격 상승요인 등에 대해 관계부처 간 면밀히 점검·논의해 나가겠다”고 했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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