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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븐] 20대 여성들 “디지털교도소 통한 사적 응징 말고 ‘합법적 정의구현’ 원한다”
20대 여성 다수 “디지털교도소, 무슨 자격으로 처벌하나”
“국가·사법 당국 그동안 뭐했나”…디지털교도소 옹호론도
대법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 여전히 ‘솜방망이’
“제2, 제3의 디지털교도소 개설 시도 가능성 높아”

피해자들의 내상이 깊은데 비해 가해자들은 자유로웠다. 디지털성범죄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법체계 하에서 가해자들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형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면서도 누가 가해자일지도 모르고, 퍼지기는 쉽지만 지우기는 어렵다는 게 디지털성범죄의 특징.

디지털교도소가 법이 못한 처벌을 내리는 역할을 하겠다 자처했다. 가해자들의 얼굴과 직업·연락처 등을 30년간 ‘박제’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말이다.

헤럴드경제 헤븐이 만나본 8인의 20대 여성들은 디지털교도소의 사적처벌이 위법적이고 정당성이 결여됐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디지털성범죄 처벌에 대한 문제의식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대 여성 다수 “디지털교도소는 무슨 자격으로 처벌하나”

20대 여성들은 디지털교도소가 내세우는 명분에 일부 동의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사적처벌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라는 개인이 누군가를 처벌할 자격이 있는지를 반문했다.

대학생 오모(25·여·인천 서구) 씨는 “적정 수준의 처벌 없이 넘어가는 사회에 환멸과 분노가 치미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이를 이유로 처벌할 권한을 개인에게 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남모(24·여·서울 도봉구) 씨도 “정당성이 없는 개인이 누군가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고 처벌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대학생 서모(25·경기 용인) 씨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범죄자들이) 사회에 녹아들어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된다’는 디지털교도소 운영 이유를 밝혔으나 실상은 ‘인민 재판’”이라며 “방탄서버를 이용해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게 괘씸했다. 대체 본인이 무슨 자격으로 법위에 군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적처벌’이 가져올 파장도 지적했다. 서 씨는 “특정인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해당 사람을 불특정 다수가 공격하라는 의도성이 분명히 있는데 법적 제제 하나 없이 사이트 운영이 가능하다는 자체가 놀라웠다”고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이모(25·여·서울 성북구) 씨는 “운영자가 홍길동이냐”며 “디지털교도소가 정당화될 수 있을 때는 오직 국가, 사법부가 무너져서 재판 자체를 못하고 범죄 자체를 막지 못했을 때 뿐”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위해 국가·사법 당국 무슨 조치 취했나”…디지털교도소 옹호론도

일부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를 비난하기에 앞서 낮은 형벌과 익명성’에 성범죄자들을 숨겨줬던 사회 분위기를 지적했다.

박모(24·여·서울 영등포구) 씨는 “가해자들이 익명성과 낮은 형벌에 숨어 떵떵거리고 잘 살게 대한민국이 만들어줬다”며 “정의 구현 및 일반 시민의 안전한 일상을 대한민국 사법에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디지털교도소는) 정의 구현에 대한 염원이 사적으로 실현된 사이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는 해외 기반 플랫폼 이용해서 추적이 어렵다고 기소가 중지되거나 수사가 지지부진되기가 일상인데, 수사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디지털 교도소 운영자는 불과 20일 만에 잡히는 것을 보니 허탈하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가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기에 앞서 성범죄 피해자를 지키는 데 노력했냐는 의문도 이어졌다.

대학생 조모(25·여·서울 성동구) 씨는 “국가는 온갖 이유를 들어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고, 범죄자들은 처벌받지 않는 꿀팁을 공유하는 나라에서, 디지털교도소는 범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형벌체계였다”며 “N번방은 범죄자들이 익명성이란 보호막 속에서 얼마나 잔혹해지는지 드러냈다. 디지털 교도소를 폐쇄하는 국가는 피해자의 인격권을 위해서는 어떠한 보호조치를 해왔냐”며 반문했다.

디지털성범죄 및 텔레그램 성범죄 추적 활동했던 20대 관계자 A 씨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했던 활동은 엄연한 불법으로 지지할 수는 없다”면서도 “사실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사회의 잘못이 크다.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해도 피해자 영상 사라지지 않고 주홍글씨로 남아있는데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디지털교도소가 내린 것”이고 말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30대 A씨가 6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연합]

전문가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명예훼손’ 혐의…처벌 가능성은 ↓”

법조계에서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이 위법하다는 데에 한 목소리를 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산하 양형연구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김영미 변호사는 “범죄자들의 신상은 신상공개위원회 개최 등 적법한 절차를 밟은 뒤 수사기관이나 언론을 통해 공개가 된다”며 “개인적으로 무분별하게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을 넘어선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신상공개엔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교도소 외에 범죄자나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도 있었다”며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친부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는 상당한 검증을 거쳐 공익 목적으로 신상을 공개한다. 디지털교도소는 그런 검증을 거쳤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5개월간의 수사 끝에 지난달 23일 베트남에서 경찰에 체포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에 대한 실제 처벌 수위는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법률사무소 월인의 채다은 변호사는 “아예 무죄 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선처 받을 만한 요건은 있다”고 말했다.

체포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혐의가 성립되려면 비방할 목적이 입증돼야 하는데 공공의 이익이 인정되면 비방의 목적이 지워지며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채 변호사의 설명이다.

솜방망이 처벌 안 바뀌면 제2, 제3의 디지털교도소 또 생긴다

지난 9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공개한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안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상습적으로 제작하면 최고 29년 3월형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주요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기대감을 충족하기엔 아직 역부족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국민 법 감정과 실제 사법 체계에 또 다시 괴리가 발생할 수 있고 이는 다시 제2, 제3의 디지털교도소의 등장을 부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검거되자마자 곧바로 이 뒤를 잇는 2기 운영자가 등장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이트를 두번이나 폐쇄했지만 다시 부활하기도 했다.

서 씨는 “1기 운영자가 잡혔지만 2기 운영자가 나타난 것도 이해가 간다”며 “대법원 양형기준이 바뀐다고는 했지만 사적처벌을 멈추게 할만큼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9월 추적단불꽃(대학생 취재단)과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이 대법원 양형위에 전달한 ‘디지털성범죄 양형 기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509명 중 대부분(99.2%· 7451명)이 ‘특별한 사유에 따라 형량이 가중돼야 한다’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반면 ‘특별한 사유에 따라 형량이 감경돼야 한다’는 항목에서는 “아니다”라는 응답(97.5%·7351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추적단불꽃(대학생 취재단)과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이 대법원 양형위에 전달한 ‘디지털성범죄 양형 기준’ 설문조사. [추적단불꽃]

대체로 새로운 양형 기준이 이 같은 여론을 반영했다고 하지만,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항목에 대해선 여전히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디지털 성범죄물이 ‘영리 목적이 아닐 시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는데 동의하지 않는 의견은 99.8%에 달했지만, 이번 기준안에도 ‘영리목적’이 없을 경우 양형이 더 낮게 책정됐다.

영리 목적의 배포는 기본 2년 6월형이지만 영리 목적의 배포가 아닐 때는 1년형에 그친다. 감경 인자까지 더해지면 최소 4월형 선고도 가능하다.

대법원은 오는 11월 한번 더 논의를 거쳐 오는 12월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안을 최종 확정한다.

리셋 측은 “디지털 성범죄물 반포 유형 중 성 착취물 자체를 재화로 삼아 물물교환하는 경우도 있었다. 성착취물로 마약 거래나 도박 등으로 이어지기는 방식도 있는데 이를 ‘영리 목적’이라고 해석할지는 판사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 역시 “디지털성범죄물 ‘유포’ 부분의 형량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촬영과 유포는 피해자의 피해 정도와 심각성도 다른데 양형 기준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추적단불꽃]

양형기준이 상향됐어도 판사 개개인의 ‘성인지 감수성’이 달라지지 않으면 디지털성범죄 판결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서씨는 “아무리 양형기준이 올라간다 해도 법관들 한명 한명이 피해자 중심주의나 성인지 감수성을 견지하고 있지 않는다면 ‘디지털교도소’를 탄생시킨 판결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모양새다.

‘디지털성범죄의 솜방망이처벌의 주 책임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복수 응답)’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96.5%(7243명, 복수응답 가능)의 시민들이 ‘판사’를 꼽았다. 그 뒤를 ‘검찰 및 경찰 수사기관(84.5%, 6348명)’와 ‘양형위원회(4970개, 66.2%)’이 뒤를 이었다.

해당 설문에서 ‘디지털성범죄의 양형이 낫다, 솜방망이 처벌이다’고한 응답자는 전체 99.8%에 이르렀다.

주소현·신주희 기자/Heav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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