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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은 前비서 기사에 악플 단 안희정 측근 1심서 벌금 200만원
法 “맥락상 2차 가해의 전형”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
“당초 약식명령 가볍다고 판단”
지난 7월 19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한 시민이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있다. 이 책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정책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안 전 지사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알리고 대법원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554일의 기록을 담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법원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정무비서와 수행비서를 지낸 김지은(37) 씨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측근에게 검찰이 구형한 형벌인 벌금 100만원이 가볍다고 판단,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3단독(판사 진재경)은 7일 오전 열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모욕 등 혐의를 받는 안 전 지사의 전 수행비서 어모(37) 씨의 선고공판에서 어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어씨는 2018년 3월 김씨 관련 기사에 김씨의 이혼사실을 적시하거나 욕설의 초성을 담은 댓글을 단 혐의를 받는다.

이날 재판에 어씨는 출석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불출석할 경우 재판부는 주문만 읽고 재판을 마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해당 재판에서 재판부는 어씨의 선고 이유까지 설명했다.

재판부는 “명예훼손 부분에 관해서 피고인은 본인이 적시한 부분이 사실이 아니란 주장을 하고 있고, 이혼했다는 표현은 가치 중립적인 표현으로 사회적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는 공적인 인물로 허용되는 정당한 비판이라 주장하고 있다”며 “명예훼손과 모욕은 둘 다 사람의 사회적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로 명예훼손은 사실 적시를 요구하고 모욕은 사실적시 없이 평가적인 표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점에 있어 모욕과 명예훼손은 다른데 명예훼손은 기소된 그 표현 사실에 비춰야 하고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는 증거로써 객관적인 입증이 가능한지 여부로 판단한다”며 “이혼했는지 여부는 과거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벌어진 사실관계이고 그것은 증거로 그 진위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평가가 아닌 사실적시에 해당하므로 이 부분에 대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이혼 사실을 적은 것은 가치중립적인 사실을 표현한 것’이란 어씨 측 주장에 대해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그 표현이 어떠한 표현인지는 표현 자체로 판단할 수 없고 맥락 속에서 사회 통념상 받아들여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봐야 하고 통념상 그 표현이 적절했는지 평가를 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판을 저하시킨다면 가치 중립적 표현이라 해도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댓글이 쓰인 맥락을 보면 가치 중립적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성 관념이 미약해 유부남과도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식의 의미를 내포했다고 볼 수 있다”며 “사회 통념상 그런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해 피고인이 사건에 적시한 ‘게다가 이혼도 함’이란 표현도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보아진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생방송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피해 사실을 말한 만큼 김씨가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는 어씨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자의 지위와 미투 운동에 관한 공론장에 들어온 사람의 지위를 함께 가진다”며 “미투 운동이나 성폭력 사실에 대해선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 극복해야 하지만, 피해자의 이혼 전력은 공적 관심사가 아닌 오로지 사적 영역에 불과할 뿐 피고인이 글을 올린 건 공공이익으로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재판부는 어씨의 모욕 혐의 역시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욕설이 아니라 주장한 부분은 초성 세 개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글이 쓰여진 맥락으로 보면 피해자에 대한 비방, 비난이 이어지는 중에 그러한 표현이 쓰였기 때문에 통념상 욕설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기 충분하다”며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 당시 피해자는 이미 근거 없는 여러 말로 인해 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상황이었고 이는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한 것”이라며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행위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종합하면 당초의 약식명령은 가볍다고 판단한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월 2일 열린 어씨의 결심공판에서 어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구형했다.

이날 법정에는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등 여성단체 관계자 등도 재판을 함께 방청했다. 재판부의 선고 이후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 밖에서 취재진들과 만난 이 소장은 “지금 2차 피해가 다른 사건에서도 많은데 오늘(7일) 재판에서 명예훼손과 모욕을 맥락상 인정한 부분은 되게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가해지는 2차 피해에 대해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판결이라 생각한다”며 “소위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얘기하는, 맥락과 상황을 얘기하고 거기에서 피해자의 입장 등을 고려한 판결이란 점에서 앞으로 2차 피해에 대해 새로운 장을 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이 소장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휴대전화 포렌식 수사 집행정지 준항고 신청과 관련해선 “그 부분은 지금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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