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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산책] 진실은 절반만 드러난다

“진실은 우물로부터 나오지만, 허리까지만 나오는 것이다.” 라캉의 말이다.

한스 홀바인의 그림 1533년 작 ‘대사들’은 우리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님을 말해준다. 그림 속 두 대사는 과시적 치장을 하고 얼어붙은 듯 뻣뻣하게 서 있다. 그 둘 사이에는 당시 회화에서 ‘허무’를 상징하던 지구의·악기 등의 사물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지극히 매혹적인 형태들로 진열된 외관의 영역 앞에서 공중을 나는 듯하기도 하고 기울어져 있는 듯하기도 한 이물질이 있다. 그림 한가운데 서서 뚫어져라 봐도 이물질의 정체는 알 수가 없다. 왼쪽으로 몇 걸음 움직이며 고개를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돌려보면 실체가 보인다. 해골이다. 이 그림은 주체로서의 우리가 말 그대로 그림 속으로 불려들어가 마치 그 안에 붙잡힌 것처럼 표상된다는 사실을 이례적이라 할 만큼 분명하게 보여준다. 라캉은 이 그림을 해설하면서 “그림은 내 눈 속에 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림 속에 있다”고 말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휴가 특혜 의혹’ 공방을 보면서 떠오른 그림이다. 왜 이 그림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무의식이 불러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어떤 사안을 접하면서 절반만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추 장관 ‘아들 의혹’도 그렇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제보는 논문으로 이야기하면 원문 인용이 아니고 ‘재인용’이다. 제보는 ‘n차’ 제보를 거치면서 왜곡될 수 있고 변형될 수 있다. 정치인에 의해 파편화된 정보가 끊임없이 제공되고,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그 파편을 믿고 부정과 긍정의 극단적인 공방이 벌어진다. 극단을 중화시켜줄 중간 회랑은 없다. 칼 슈미트의 ‘정치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다’를 실천이라도 하듯 오로지 진영 논리만 있을 뿐이다.

70년 전 이 땅의 비극이 겹쳐진다. 1945년 해방 이후 극심한 이념적 분열로 1950년 한국전쟁 전까지 10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았다. 요즘 긍정과 부정만 되풀이되는 사회 행태를 보면 머리카락이 곧추선다. 불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정치의 본질인지 묻고 싶다.

한 박자만 쉬자. 휴대전화의 카메라도 셔터를 터치한 뒤에 순간적인 멈춤이 있다. 그 잠시 멈춤, 정지, 연기(延期)가 새로운 틈을 예비한다. 어떤 자극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절반만 받아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유로 채워보자. ‘현실과 사유의 거리두기’ 말이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추 장관 아들 휴가 특혜 의혹’건에 대해 추 장관과 그의 아들, 보좌관을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했다. 국감이 남아 있고, 야당에서 검찰의 결정에 불복, 항고한다고 하니 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법리적 사실과 진실은 다른 문제다. 진실은 추 장관과 그의 아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검찰의 결론과는 별개로 추 장관이 민주당 대표 시절 보좌관을 자신의 아들 일에 사적으로 개입시킨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 이 부분은 명확한 해명과 사과가 필요하다.

군대 문제는 민감하다. 필자도 군 복무 시절 동료를 유행성 출혈열로 잃었다. 30년도 더 지난 오늘 생각해보면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하에서 국가를 위해 의무를 다하는 병사들은 최대한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추 장관 아들 일을 우리 군대문화에 긍정적 모멘텀을 만드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홀바인의 그림을 감상하듯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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