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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편증세 대신 ‘손쉬운’ 사내유보금 과세하는 정부…기업들 떨며 "경영권 침해"
사내유보금 약 1500조…정부 "기업 돈 가계로"
실제 대기업-중소기업, 기업-가계 간 소득 격차 심화
KDI "징벌적 세금보단 인센티브로 기업 변화 유도를"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내년부터 대기업에 부과되는 유보금 과세가 강화된다. 중소기업의 유보금에 부과되는 세금은 새로 신설된다. 손쉽게 부족한 세수를 매우기 위해 보편증세 대신 기업 금고를 건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8일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상위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지난 2017년 기준 1486조원으로 집계됐다. 2009년 700조원에서 매년 약 100조원씩 증가하고 있다.

사내유보금은 세금과 배당 등으로 유출한 금액을 뺀 기업의 장부상 누적 이익을 의미한다. 회계상으로는 이익잉여금을 말하지만 어떠한 기준을 두는지에 따라 사내유보금의 크기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사내유보금 증가 추세는 정부나 시민단체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투자, 임금증가 등에 사용하지 않아 대기업의 소득이 중소기업이나 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기업과 가계의 소득격차는 매년 심해지고 있다. 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총국민소득(GNI)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17%에서 2017년 25%로 증가했다. 반면 가계소득 비중은 같은 기간 69%에서 61%로 감소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10년 평균 매출액영업이익률은 6%인데 반해 중소기업은 4%에 그친다. 자산의 효율적 운용 정도를 나타내는 총자산순이익률도 대기업은 평균 3%인데 비해 중소기업은 2%에 불과하다.

마침 세금이 부족한 기획재정부는 사내유보금에 손을 댔다. 기업에 쌓아둘 수 있는 적정 유보금 규모를 정해주고 기준을 초과하면 세금을 매겼다.

기획재정부는 2018년 투자·상생협력촉진세를 만들었다. 대기업이 당기 소득의 70%까지 투자, 고용 확대, 상생협력에 쓰지 않으면 내야 할 세금이다. 기존에는 소득의 65%만 쓰면 됐지만 내년부턴 이 기준이 5%포인트 오른다.

내년부터 중소기업의 유보금에도 세금을 부과한다. 신설되는 '초과 유보소득 배당간주' 과세는 당기순이익의 50% 또는 전체 자본의 10%가 넘는 액수를 초과 유보소득으로 본다.

경제가 어렵고 불평등이 심하니 돈을 풀라는 명분은 그럴 듯하다. 하지만 진단부터 해결책까지 틀렸다는 비판이 재계와 학계서 나온다.

먼저 사내유보금은 적자를 내지 않는 이상 자연스레 증가할 수 밖에 없다. 과도하게 쌓아두는지 여부는 외부에서 알 수 없다. 코로나19와 같이 예측하지 못한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선 비상금이 필요하다. 또 향후 대형 M&A를 하려면 일정 기간 돈을 아껴둬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계 간 양극화를 줄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대안이 세금과 같은 징벌적 수단일 필요는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유보금에 세금을 부과한다고 투자, 고용이 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면서 오히려 인센티브로 대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유보금 과세를 신설 또는 강화하는 것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을 궁지로 몰아넣는 것"이라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면서 효율적인 투자를 하기 위해선 유보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영상 판단을 무시한 채 세금을 매기는 것은 경영권 침해"라고 덧붙였다.

kwater@heraldcorp.com

〈투자·상생협력촉진세란?〉

기업들이 일정 금액을 투자, 임금 증가, 상생협력으로 쓰지 않은 금액(미환류 소득)에 대해 법인세 20%를 추가 과세하는 제도다.

당기 소득의 70%까지 투자, 고용 확대, 상생협력에 쓰지 않으면 투자·상생협력촉진세 20%를 내야 한다. 기존에는 소득의 65%만 쓰면 됐지만 내년부턴 이 기준이 5%포인트 올라간다.

과세 대상은 대기업이다. 구체적으로는 자기자본이 500억원을 넘거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총액 10조원 이상) 소속 기업이다. 지난해 투자촉진세를 낸 기업은 969개다.

대기업의 유보금을 사내에 쌓아두지 않고 쓰게 해 경제활성화를 촉진시키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2015년 기업소득환류세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됐다. 2018년에는 이를 투자·상생협력 촉진세로 개편하면서 배당 대신 상생지원을 요건으로 포함시켰고, 세율을 10%에서 20%로 높였다.

일반적으로 조세특례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소득·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반면 투자·상생협력촉진세는 반대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추가로 법인세를 과세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투자를 하지 않았다고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유례없는 제도다. 다른 나라에는 없고 우리나라에만 있다. 실질적인 법인세 부담을 높이는 요소다.

재계는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증가하고 있으나 현금성자산의 비중이 크지 않아 사내유보금을 투자 및 가계소득으로 환류시킬 여력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기업이익의 사용처를 정하는 것은 개별 기업의 경영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며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관여일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초과 유보소득 배당간주란?〉

유보소득은 기업이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에서 주주 배당금을 빼고 사내에 남겨둔 금액을 말한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부터 오너 일가 지분율이 80%를 넘는 회사가 '초과 유보소득'을 갖고 있을 경우 이를 배당한 것으로 보고 미리 배당소득세 14%를 걷을 예정이다. 당기순이익의 50% 또는 전체 자본의 10%가 넘는 액수를 초과 유보소득으로 본다.

기재부가 의도한 유보소득 과세 대상은 탈세를 목적으로 법인을 세운 경우다. 이들은 돈을 법인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조세회피를 해왔다. 부동산을 쓸어 담고 있는 '가족 법인'이 대표적이다. 법인세 최고세율(10~25%)이 소득세(6~45%)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건설사와 같은 업종이나 건실한 중소기업이 과세 범위에 포함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건설업은 특성상 지분 투자 유치가 어렵기 때문에 가족 기업이 많다. 또 아파트를 짓는데 3~5년씩 걸리기 때문에 많은 돈을 보유하고 있다. 건설협회는 8000여개에 달하는 중소·중견 건설사가 유보소득 과세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정상적인 유보소득과 탈세 목적의 유보소득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은 불가능한데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지적도 있다.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과세 대상을 정하는 문제도 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과세 대상을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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