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정신병원 환자 전날 밤 외출해 흉기 준비

정부 지원 대상 병원은 병상 100개↑ 대형병원

의원급 병원, 비상벨 등 ‘안전의료 환경 조성’ 지원 대상서 제외

전날 외출해 준비한 흉기로 11차례 찔러…‘임세원법’ 사각지대 된 ‘의원급 병원’
경찰 로고. [헤럴드병원]

[헤럴드경제=박병국 기자] 2년 전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에게 살해된 후 국회에서 ‘임세원법’이 통과되고 정부의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 방안’ 대책까지 나왔지만 환자가 휘두른 칼에 의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50대 의사는 10군데 넘게 찔려 잔혹하게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환자는 범행 전날 밤 병원에서 외출해 흉기까지 준비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상주 인력들이 있어 자칫 큰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병원은 병상이 20여 개 되는의원급 정신병원이어서, ‘비상벨’ 지원이나 보안 인력에 대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경찰은 6일 오전 살인 혐의로 50대 남성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날 헤럴드경제의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북구 화명동의 한 의원급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A씨는 “퇴원하라”는 병원 측의 요구에 불만을 품고 지난 4일 오후 9시에 외출, 인근에서 흉기를 준비했다. 조울증 증세로 지난 6월 19일 입원한 A 씨는 ‘병원 내 흡연 문제’로 병원과 마찰을 빚어 왔다.

병원 측은 지난 7월 31일 이미 퇴원 처리를 마쳤지만 A씨는 지난 4일까지 퇴원하지 않았다. 지난 5일 오전 병원 직원이 “퇴원 안하실 거냐”라고 묻자, A씨는 준비해 온 흉기를 감추고 원장실로 들어간 뒤 범행을 저질렀다.

지난 5일 오전 9시25분께 신고가 들어왔고, 경찰이 도착한 시간은 5분 뒤인 9시 30분이었다. 직원들이 원장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흉기에 11군데가 찔린 후였다. A씨는 범행 후 준비해 온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자해 소동을 벌였다. 병원장은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저혈량성 쇼크사로 숨졌다.

2018년 말 임 교수가 희생된 지 2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다시 환자에 의해 의사가 사망하는 비극이 되풀이됐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 4월 의사를 폭행할 경우 최대 무기징역에 하게 하는 내용 등이 담긴 임세원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은 같은달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 방안’을 내놓았다.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방안’ 등 범죄 예방 조치는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춘 대규모 병원에 해당된다. 각 병원이 비상벨 설치와 안전요원 교육 등을 시키고 정부에서 이를 지원하는 식이다.

사건이 발생한 병원은 정부의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 대상 병원이 아니었다. 의원급 병원은 지원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가 대책을 마련할 당시, 의료계에서는 의원급 의원에 대한 지원도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역내 비상벨 설치 등의 업무를 맡은 부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의원급 정신병원에 비상벨이 설치되지 않은 것에 대해 “예산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00석이 넘는 병원에 대한 비상벨 설치와 안전 요원 교육 등도 완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의 친구이기도 했던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임세원법이 통과되고 정부가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은 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아직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 같은 경우 의원급 병원의 경우는 병원에서 경찰에 전화를 걸면, 통화가 되지 않아도 경찰이 바로 출동하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며 “병상 100개 이하인 의원급 병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