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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광화문덕이다] 9화 내가 나를 잃어버릴때

  • 올해 우리의 첫 민어회의 추억...'종각역 토속정'
  • 기사입력 2020-07-3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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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오늘 어디서 뵐까요?"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후배가 오늘은 대선배님을 모시고 온다고 하여 고민이 크다.

"선배님은 저녁 자리로 어떤 곳을 선호하셔?"

"오래된 음식점을 좋아하세요"

마침 떠오르는 곳이 있다. 종각역 '토속정'.

종각역 4번 출구로 나와 을지로입구 쪽으로 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평가옥 가기 전 왼쪽에 작은 골목하나가 보이는데 여기에 '토속정'이란 식당이 있다. 민어회와 홍어삼합 전문인데, 주로 점심시간에는 주변 직장인들이 갈치조림을 먹으러 자주 온다.

내 경우에는 특별한 날에 주로 이곳을 찾았다. 물론 점심으로. 저녁에 오기에는 사실 가격 부담이 커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안그래도 얇아진 주머니로 인해 가족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기도 해서다.

두말하면 잔소리. 점심 민어탕도 굉장히 훌륭하다. 특별한 날에 선배님들을 뵐 때면 미리 인원수와 민어탕을 먹겠다고 예약해둔다. 점심 식사 가격으로 결코 만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만족도는 매우 크다. 푹 끓인 민어가 국물에 녹아들어 그야말로 맛이 일품이다. 해장은 기본이고 몸보신하는 느낌이 온몸으로 확실히 느껴진다.

'그래 오늘은 이곳으로 가보자'

〈나는 광화문덕이다〉

"그대의 치밀하고 치사한 계략은 하늘의 이치를 알았고, 기묘한 꾀는 땅의 이치마저 꿰뚫었구려.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할 줄 알거든 이제 그만 좀 작작해라". 사람에 속고 사람에 상처받으며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오늘 하루도 고군분투한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며 느낀 소중한 마음들을 이제 연재를 통해 기록하려 한다. 하늘은 삶을 귀한 덕으로 여긴다. 나는 광화문에 산다. 광화문덕이다. [편집자주]

주변 분들과 약속을 잡으면 요새 직업병같은 것이 생겼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다.

'오래된 정감있는 장소를 좋아하는 선배님과 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저녁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기분좋은 설렘이다.

"늦어서 미안"

선배님이 오셨다. 요새 회사일로 정신없으신 듯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가 침체돼 있는 상황이다보니 임원인 선배님도 고민이 많으시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동생~! 잘 지냈어?"

어느 순간부터 선배와 난 호형호제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은 후배로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야~! 이런 곳은 또 어떻게 알고~ 좋아좋아"

특유의 호탕한 화법이 오랜만에 만나 어색할 법한 자리의 텐션을 한껏 올려주신다.

"사장님 여기 민어회에 소주 하나 맥주 하나 부탁드려요"

이곳 대표음식인 민어회를 주문했다. 삼합을 같이 먹어도 좋다고는 하지만 주머니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이날은 선배님이 사신다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굳이 많은 음식을 시킬 필요가 없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으로 푸짐한 밑반찬이 있어서 이기도 해서다.

민어회를 주문하니 빠르게 기본 밑반찬이 우리 테이블에 깔리기 시작했다. 갓김치에 미나리무침, 홍어무침, 부침개에 낙지탕탕, 왕꼬막과 민어부레까지. 밑반찬으로 테이블이 꽉 찼다.

"우선 기름장에 민어부레를 드셔보세요. 부드러울 때 드셔요"

사장님 같이 보이는 분이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여쭤보니 직원분이셨는데, 포스는 사장님이셔서 나는 "사장님사장님"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밑반찬과 함께 우리 앞에 놓인 '진로이즈백'. 금주를 선언하고 나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켜낸 지도 한달여가 지났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는 자리이니 기꺼운 마음으로 호기롭게 뚜껑을 땄다.

'퐁'

한 홉에 깔끔하게 털어넣을 수 있는 양으로 소주와 맥주의 비율을 신중하게 조율한 뒤 손목 스냅을 이용해 회오리로 마무리. 정성 가득 담아 선배님께 한잔을 올리고 후배에게도 한잔, 그리고 잔을 들어 나도 한잔을 받으니 오고가는 정이 느껴지는 저녁이다. 한바탕 웃으며 잔 속 가득담긴 우리의 정을 입안으로 털어넣는다. 마치 입안을 정결케 하고 맛있는 횟감을 맞이할 준비를 하듯이.

"이야!!! 맛있네~ 맛있어!"

특유의 선배님의 구수한 추임새가 분위기를 북돋운다.

민어부레 한점을 입에 넣고 열심히 씹는다. 입안 가득 꽉 찬 부드러움, 어금니가 열일한다. 쉴세없이 오물오물 분쇄작용을 해댄다. 민어부레는 정말 열심히 씹어야 삼킬 수 있었다. 부레란 그런 것인가 보다.

부레를 먹고 나니 등장한 '민어회'. 두툼하게 잘려 나온 민어회가 보기만 해도 푸짐해 보였다. 민어회를 한 점 집어 기름장에 찍어 먹으니 사장님 같은 포스의 직원분이 오신다.

"민어회는 이렇게 드시는 거에요. ^^"

상추를 펴고 그 안에 민어회, 자른 고추와 마늘을 올리고 쌈장 소량 찍어 정성스레 싸주셨다. 특히 두툼한 민어회의 식감이 굉장히 부드럽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듯했다. 궁합이 참 좋았다.

선배님도 만족스러우셨는지, 절로 감탄사가 나오시는 듯 했다.

"우리의 올해 첫 민어회구나"

민어회는 여름철에 가장 맛좋은 음식으로 싱싱함이 생명이다. 육질이 비교적 단단해 식감도 좋을 뿐 아니라, 여름철 보양식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민어회가 유명한 것은 어획량이 많지 않은 고급생선이기도 해서다. 쉽게 맛볼 수 없다보니 민어탕이든 민어회든 그 누구에게 제안하든 다들 좋아하는 메뉴다.

"그동안 잘 지냈어?

선배님과 요새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 거기에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도 한껏 풀어냈다. 사실 선배님이 지루해하실까 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준비해 가기도 했다. 소주 잔이 부딪힐 때마다 분위기는 차츰차츰 무르익어 갔다.

"그분은 요새 어떻게 지내셔?"

그리고 한 분이 거론됐다. 평소 소신파여서 많은 이들의 지지와 응원을 한껏 받았던 분. 나는 요즘 들은 그분의 근황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세상 떠도는 이야기가 늘 그렇듯 좋은 이야기보다는 다소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많아 직설적 화법보다는 비유를 들기로 했다.

"형님 이렇게 설명 드리면 어떨까요? 사실 형님이 저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잖아요. 그리고 저 역시도 형님을 따르는 이유가 있구요. 우리모두는 저마다 가진 장점이 다 다르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다른 사람 처럼 느껴진다면 어떨까요? 원래 저란 사람의 장점은 직언인데,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다보니 직언하는 제가 사라졌다면요"

"음...."

"형님 예전에 제가 읽었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요.

영화감독이 자신이 맡은 영화의 주인공의 이미지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녀요. 그러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수염이 멋스럽게 자란 한 남성을 발견하게 됐죠. 그와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그를 캐스팅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영화 촬영날이 됐는데, 면도를 한 멀끔한 남성이 현장에 있는 거에요. 영화감독이 원했던 모습은 수염을 한 남성이었는데, 그는 이제 사라진 거죠. 결국 영화감독은 수염을 한 남성을 다시 찾으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된거죠."

사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도 조심스럽고 , 나 역시도 허물이 많다면 많다보니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그렇다보니 요새는 비유와 은유를 통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곤 한다.

"음... 그래... 이해했어..."

오늘 찾은 이곳 '토속정'이란 곳 역시 '민어회'와 '삼합'으로 유명한 곳이다. 세월이 흘러도 이곳의 메뉴는 변하지 않았다. 점심에는 주변 직장인들이 '갈치조림'과 '민어탕'을 먹으러 오고, 저녁에는 '민어회'와 '병어회', '방어회', '삼합'을 먹으러 온다.

세상의 트렌드는 늘 변하고, 그런 트렌드를 쫓는 식당도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트렌드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듯이, 이곳은 늘 이 자리에서 나를 반길 것 같아 마음이 간다.

글 = 광화문덕

정리 = 홍승완 기자

일러스트 = 이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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