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1초에 15번…탭댄스는 언어, 어떤 음악과도 연주할 수 있다”…권오환 안무감독
하루 12시간씩, 6개월간 안무 연습
배우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든 완벽한 탭댄스
앙상블 배우로 출발해 안무감독으로…
“공연이 올라가는 지금도 안무 생각뿐”

스윙 리듬을 실은 발 끝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탭 소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여주인공 오소연(페기 소여 역)은 1초에 무려 15번 탭 소리를 낸다. “탭댄스를 처음 할 땐 소리 하나라도 빠지지 않으려고 요령 없이 세게 때렸더니 발바닥이 퉁퉁 붓기도 했어요.”(오소연) 비단 여주인공 만의 후일담이 아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무대 위 스물일곱 명의 앙상블. 어디에도 ‘구멍’은 없다. 경쾌한 움직임, 완벽한 발소리엔 배우들의 ‘피, 땀, 눈물’이 스몄다. 이들을 진두지휘한 건 권오환(40) 안무감독(대한민국탭댄스협회장·스탭스컴퍼니 대표)이다. 한창 공연을 진행 중인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권 감독을 만났다.

“한 작품이 관객을 감동시키는 요소는 다양해요. 그 중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오롯이 배우의 땀으로 만든 감동이에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에 12시간씩 마스크를 착용한 채 안무 연습이 이어졌다. 탭댄스를 처음 배우는 ‘초짜’부터 실력이 출중한 ‘베테랑’까지 모든 배우들의 ‘상향 평준화’를 위한 사전 연습기간은 6개월에 달했다. 올해에는 코로나19로 단체 연습을 할 수 없어 30~40명의 배우들과 개별적으로 연습을 진행했다.

대한민국 탭댄스 선구자인 권오환 안무감독은 2004년 앙상블 배우로 ‘브로드웨이 42번가’와 인연을 맺은 이후 2016년부터 안무감독으로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대해 "배우들의 땀으로 만든 감동이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샘컴퍼니 제공]

“배우들에게 항상 이야기해요. 오프닝에서 그 감동을 전달하지 못하면 막을 내릴 때까지 힘을 받을 수 없다고요. 안무는 틀려도 괜찮아요. 실수해도 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춤을 추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요. 무대에 서는 그 순간은 앙상블도 주연도 모두가 배우예요. 배우의 마인드로 어떤 한 순간도 흘려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해요.” 땀과 노력의 결실은 무대가 맺었다. 뮤지컬에 등장하는 22개의 안무 중 절반에 해당하는 탭댄스. 공연 1회당 3000번 이상의 탭 소리에 관객들의 심장 박동은 숨 가쁘게 오르내린다.

권 감독과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그는 당시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앙상블 배우로 참여하며 첫 연을 맺었다. 당시 지금의 제작사인 샘컴퍼니의 김미혜 대표가 페기 소여를, 남편인 배우 황정민이 빌리 로러 역을 맡았다. 이미 2000년부터 탭댄스의 매력에 빠졌던 권 감독은 작품 내에서도 ‘군계일학’이었다. “모든 넘버의 센터에 서게 됐어요. 당시 안무감독을 맡았던 레지나 알그렌은 연습 이후 김미혜 대표님과 황정민 형의 트레이닝을 맡기기도 했고요.”

독보적인 실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던 권 감독은 2016년 ‘브로드웨이42번가’의 협력안무로 합류했고, 2017년부터 작품의 안무 곳곳을 손보며 지금의 틀을 만들었다. 권 감독이 바라보는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볼거리로 완전무장한 화려한 쇼뮤지컬만이 아니다.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가진 의미가 굉장히 많아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대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많은 캐릭터의 서사를 담았어요.”

권오환 안무감독은 “탭댄스는 언어”라며 “어떤 음악과도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샘컴퍼니 제공]

권 감독은 극 중 등장하는 ‘머니’는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탭을 했고”, “‘거울신은 보기 좋은 쇼가 아니라 당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과 돈, 술, 마약에 찌든 사회를 풍자하고 비꼰 것”이라고 설명했다. 2막에서 가장 긴 연속군무를 선보이는 ‘발렛 투’ 신에선 “도시 중의 도시는 뉴욕, 행운의 거리”라는 가사에 맞춰 시골 처녀들이 팔을 뻗으며 뉴욕을 찬양하는 춤 동작을 선보인다. 무엇 하나도 의미 없이 짜여진 안무는 없다.

24년간 지속한 뮤지컬의 고전인 데다, 90년 전 과거에 맞춰진 배경을 가진 만큼 이 작품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2018년 공연예술계에 불어온 미투는 작품에서 외설적이고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뉘앙스가 담긴 연기나 노래 가사를 수정하게 된 계기였다. “당시 가사 한 줄을 고치는 데에 일주일이 넘게 걸릴 만큼 굉장히 많은 의견들이 오갔어요.” 시대적 배경이 주제로 드러난 작품이다 보니,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가진 기본적인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가사가 달라지면 뜻을 내포한 안무도 바뀔 수밖에 없어요. ‘42번가’가 가진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많이 바꿨어요.”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알면 알수록 깊은 작품이에요. 한 번에 완벽하게 고칠 수는 없고, 계속된 수정으로 완벽에 가까워지도록 하고 있어요.”

배우로 시작한 첫 걸음은 탭댄서라는 새 길을 개척했다. 스물한 살에 시작해 어느덧 20년. 그의 발끝에는 대한민국 탭댄서의 이정표가 세워지고 있다. “10년만 해보자며 시작했는데 그 10년 동안 너무나 사랑하게 됐어요.” 전문가가 말하는 탭댄스는 단지 춤이 아니다. “탭은 춤이라기 보다 언어예요. 추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는 것이고요. 탭댄스는 이 세상의 어떤 음악과도 연주할 수 있어요.”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벗어나면 그의 이름 옆엔 ‘탭댄스 선구자’라는 수사가 붙는다. 20년을 맞은 올해에는 보다 다양한 개인 공연도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상황을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지금은 다시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몰두한다. “무대 아래에서 발이 가만 있지 않을 때도 있어요. 공연이 올라가는 요즘도 계속 안무만 생각해요. 작품의 의미를 보다 잘 담을 수 있는 안무요.”

고승희 기자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