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처리센터로 성폭력 사건 접수되면 상급 기관 보고가 원칙
여가부 “지자체 독립성 측면상 지자체장에 매뉴얼 적용 어려워”
성추행·성폭력 문제 시 ‘징계’ 원칙이지만…오거돈처럼 사표만
[헤럴드경제=신주희 기자] 여성가족부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파문 이후 ‘공공기관의 장(長)이나 임원에 의한 성폭력·성희롱 대처 매뉴얼’을 제작했다. 그러나 안 전 지사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의 ‘성폭력 사건’에는 이를 적용하기 무리라는 지적이 여가부 내에서도 제기됐다.
여가부가 2년 전인 2018년 6월 발표한 ‘공공기관의 장 등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매뉴얼’에 따르면 공공기관 내 고충처리센터가 성폭력 사건을 접수하면 상급 기관으로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지자체에 내뉴얼을 적용할 때 성폭력·성희롱 고충 관련 신고를 상급 기관인 행정안전부로 보고하는 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이야기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20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매뉴얼을)지자체장의 성폭력·성희롱 사건에 적용한다면 서울시의 상급 기관인 행안부에 보고해야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내뉴얼에 미흡한 점이 있다는 사실에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기관의 장의 경우는 상급 기관에 전달된다고 하지만 행안부가 지자체장의 성희롱, 성폭력 고충 관련 신고를 일일이 다 보고받는 것도 여건상 무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개별 지자체의 독립성 이라는 관점에서도 애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성희롱·성폭력 가해를 한 공공기관장이나 임원의 사표 수리를 제재하거나 막을 방법이 없어 문제다. 매뉴얼에는 ‘고충처리센터를 통해 공공기관장의 성희롱·성폭력 고충이 접수됐을 경우 상급 기관장이 가해자의 사임계를 수리해서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사표 수리는 공무원 징계 6가지인 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에 해당하지 않아 징계를 하지 않는 조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 의혹 사건이 불거졌을 때 오 전 시장은 먼저 사퇴를 발표했다. 결국 공무원 신분에서 부정한 행위에 대해 징계 없이 넘어간 것이다. 여가부의 매뉴얼에 이를 적용했을 때 가해 기관장이 사표를 수임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와 관련, 김정숙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대부분의 관리 규정이나 지침이 각 기관에 있다. 여가부의 매뉴얼은 가장 기본이 되는 메뉴얼이고 이를 기관들의 특성에 맞춰서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해당 매뉴얼은 최소의 지침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가부 관계자도 “매뉴얼이기 때문에 강제 사항은 아니다. 공공기관이 참고할 뿐”이라면서도 “지자체장 또는 고위 공무원의 성폭력·성희롱 사건 처리 매뉴얼도 빠른 시일 내에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어 2018년 여가부가 마련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을 언급했다. 이 장관은 회의에서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위한 각종 법과 제도를 보완해 왔고 예방 교육과 인식개 선을 위한 노력도 해 왔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발생한 성희롱, 성폭력 사건을 지켜보면서 성희롱, 성폭력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이러한 상황에 마음이 무겁고 깊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