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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돈 갚는 게 비정상인 '뉴노멀' 시대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요즘 누가 빌린 돈을 갚으려 하나요. 이제 부채는 비용을 조금 내는 대신 자본처럼 굴릴 수 있는 개념이 돼버렸습니다."

최근 만난 국내 대형 사모펀드(PEF)의 한 대표 파트너는 "넘치는 유동성이 자본시장의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잡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우려에도 기업들의 몸값은 내려갈 줄 모르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자 자조 섞인 답변을 내놓은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경제동향' 7월호에 따르면, 지난 5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던 2009년 1월(62.8%) 이후 최저치인 63.6%를 기록했다. 제조업 재고율은 외환위기를 겪던 1998년 8월(133.2%) 이후 21년 9개월 만에 최고치인 128.6%까지 치솟았고,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1999년 1월(96.5) 이후 21년 4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처럼 경기가 위축되고 있음에도 기업들의 몸값은 떨어질 줄 모른다. 비단 2008년 금융위기, 나아가 1999~2000년 '닷컴 버블' 당시의 밸류에이션까지 치솟은 주식시장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인수합병(M&A)에 자문하는 전문가들은 "항공 등 산업에서 구조조정 기업들이 쏟아질 듯하지만, 정작 외부 투자를 받기 위해 조급해 하는 기업들은 많지 않다"고 한다. 분명 위기를 겪고있을 고객기업에 투자자들을 연결해주려 해도, '아직 손 벌릴 때는 아니다'며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구조조정' 딱지를 달고있는 기업들의 고개 마저도 뻣뻣하다. 두산그룹이 대표적이다. 두산그룹은 두산솔루스 매각을 위해 지난 4월 PEF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와 개별 협상을 했지만, 가격 눈높이 차이로 협상을 접고 공개매각으로 전환했다. '이 가격엔 팔 수 없다'는 계산이었을 터다. 하지만 이후에도 마땅한 원매자를 찾지 못했다. 협상 여력이 낮아진만큼, 가격은 스카이레이크가 제시한 것보다 낮아질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심지어 최종 협상 테이블에는 스카이레이크가 다시 올라왔다. 그럼에도 오히려 최초 제시한 가격에 '웃돈'이 얹힐 분위기다.

경기 위축으로 기업들의 자존심까지 위축되지 않는 것이 일면 고무적일 수도 있겠다. 금리 인하나 정부 지원금 등 정책이 효과적이었다는 증거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뤄진 위기'도 위기다. 대출 이자가 낮아지고 갚아야 할 만기일도 연기됐지만, 늘어난 부채는 추후 금리 정상화 국면에서 막대한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외부에는 '우린 아직 괜찮다'며 높은 몸값을 내세우더라도, 내부적으로는 체질을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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