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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의 유혹, 읽을 만한 소설
'여름맛'나는 다채로운 젊은 소설 속속 출간
상실, 고통, 욕망이 빚는 이야기속으로 '풍덩'
'소설 보다 여름', 개성있는 세 작가, 인터뷰까지
허희정 소설집, 불안의 기록, SF적 재미도
백수린, 여성의 욕망 3부작, 새롭게 변주
“프랑스와 미국, 캄보디아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을 다시 매만지고 있자니 어쩐지 아주 오래전에 쓴 소설들을 묶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이상한 시절을 통과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작가의 말’에서)

여름은 소설의 시간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이야기, 서사를 만들어가는 때, 낯선 공간과 시간에 슬쩍 발을 담가보는 모종의 사건을 꿈꾸는 시기랄까. 언제부턴가 이즈음엔 여름맛이 나는 소설들도 한층 다채롭게 선보여 여름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젊은 작가들의 세상을 읽는 새로운 독법·감각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소설 보다:여름 2020’(문학과지성사)은 2020년 봄,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을 묶은 단행본으로, 강화길의 ‘가원’, 서이제의 ‘0%를 향하여’, 임솔아의 ‘희고 둥근 부분’ 세 작품을 실었다. 이 시리즈의 특징인 작가 인터뷰는 작가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두레박 역할을 한다.

강화길의 ‘가원(佳園)’은 아름다운 정원이란 택호다. 그러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애증의 가족관계가 그려진다. 밥벌이 못하고 무능하지만, 재미와 일탈의 기쁨을 선사해준 할아버지와 악역을 자처하며 가계를 책임져온 할머니의 ‘공포의 공부몰이’ 사이에서 손녀 연정은 마침내 홀로 설 수 있게 됐지만 ‘지긋지긋한’ 가족과 거리를 두려한다. 경미한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연정은 재개발을 앞둔 폐허가 된 가원을 찾아간다. 벗어나려 하지만 그 과거도 그 자신의 한 부분임을 알게된다.

임솔아의 ‘희고 둥근 부분’은 미주신경성실신장애로 뇌에 이상이 없지만 수시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실신상태에 빠지는 학교 강사인 진영, 손목에 자해를 가하면서 과거의 버스사고 외상에서 벗어나려 하는 학생 민채, 농약을 먹은 친구와 마지막으로 화투를 친 이모의 죄책감 등을 겹쳐보여주면서 작가는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기의 거리를 가늠한다. 소설은 세 개의 이야기가 경계없이 스며들과 빠져나가는 방식을 취하는데, 진영이 의식은 멀쩡한 실신의 상태에서 이런 전환이 일어난다는 점을 눈여겨 볼 만하다.

허희정의 첫 소설집 ‘실패한 여름휴가’(문학과지성사)는 모래를 쥐었다 펴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 겨우 몇 알만 붙어있듯, 애초에 안다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의 형체 혹은 이미지가 무너지고 사라져 알 수 없게 돼버린 혼돈과 불안의 상태를 보여준다. 작가는 잡을 수 없고, 나아갈 수 도 없는, 설명할 수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혼돈의 상태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행위에 집중하는데, 다른 길은 없으며 오직 이를 통해서만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표제작 ‘실패한 여름휴가’는 차가운 물이 넘치는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가 쇠락한 해변마을을 찾게 된 어긋난 상황과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날카로운 단면을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너와 나는 멀어지고 찢어지는데, “있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휴가는 휴가가 아닌” 것이 된다.

‘우중비행’이란 작품은 최근 SF적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작품이다. 배경은 지구 대재난으로 인류가 여러 행성으로 탈출한 몇 세기가 흐른 뒤다. 인류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름 적응중으로, 오랜 우주생활로 산소를 호흡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G는 행성연합연구소의 일원으로 지구탐사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고, 마지막 탐사과정에서 연합과 통신이 두절되고 탐사선의 일부가 파괴돼 지구에 고립된다. 탐사대는 첫번째 지구탐사때 우연히 버려진 온실을 발견하고, 파트너인 Q는 식물을 심고 가꾸는데 누구보다 열정을 보인다. 그는 심지어 생체실험, 즉 가꾼 식물을 섭취하고 생존하는 길에도 열정을 보이는데, 그런 Q가 끝내 사라진 것이다.

백수린의 세번째 소설집 ‘여름의 빌라’(문학동네)는 현대문학상(‘아직 집에 가지 않을래요’), 문지문학상(‘여름의 빌라’), 젊은작가상(‘고요한 사건’‘시간의 궤적’) 수상작을 한 권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와 ’시간의 궤적’은 낯선 타국의 환경에서 만난 이들이 갖게 되는 이해와 호감이 결국 문화와 환경 때문에 상처를 낳고 멀어진, 그 감정의 어긋난 결을 되짚어보는 이야기다. 상실의 시간을 마주함으로써 이해에 다다르고자 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폭설’‘흑설탕 캔디’는 여성과 여성의 욕망을 이채롭게 변주한 삼부작. 더 이상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되는 특별한 서사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백수린은 ‘작가의 말’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기 위해 우리가 기댈 수 잆는 것은 이해와 사랑 말고는 달리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여전히 믿고 있고, 이 소설들 역시 그런 믿음 속에서 썼다”며, 안온한 혐오의 세계에 안주하고픈 유혹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사랑 쪽으로 나아가는 분투를 계속하자고 권한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소설 보다 여름 2020/강화길 외 지음/문학과지성사

실패한 여름휴가/허희정 지음/문학과지성사

여름의 빌라/백수린 지음/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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