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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 범어사본’ 국보 된다…장용영 도면 측량과학 탁월 보물로
범어사본, 기존 국보 삼국유사 보다 빨리 인쇄출간
한국에만 있는 원나라 법전 ‘지정조격’은 보물 예고
정조 친위부대 장용영 도면, 정교한 치수묘사,채색도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29일 이미 국보로 지정된 삼국유사 보다 빨리 인쇄된 범어사본 ‘삼국유사 권4~5’를 국보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元)나라 법전인 ‘지정조격 권1~12, 23~34’, ‘장용영 본영 도형 일괄’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국보로 지정예고된 삼국유사 범어사본 4~5권의 표지

삼국유사 4~5권은 부산 범어사 소장본으로 총 1책이며, 전체 5권 중 권4~5만 남아 있다. 범어사 초대 주지를 역임한 오성월(吳惺月, 1865~1943)의 옛 소장본으로 1907년경 범어사에 기증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유사는 고려 일연(一然) 스님이 1281년(고려 충렬왕 7년) 편찬한 책으로, 고조선부터 삼국시대의 역사‧문화에 관한 설화 등을 종합했다는 점에서 한국 고대사 연구의 보고(寶庫)로 알려져 있다.

처음 간행한 시기나 간행 여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아 ▷일연스님이 입적(入寂)하기 전 간행했다는 설 ▷1323년(고려 충숙왕 10년)경의 무극(無極)이 간행했다는 설 ▷1394년(태조 3년) 경 경주부사 김거두(金居斗)가 삼국사기를 중간(重刊)하면서 함께 간행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고려시대 판본은 알려지지 않았고 현존하는 가장 이른 판본은 1394년 경 판각된 조선 초기 판본이다.

현재 동일판본으로 지정된 국보 2건(국보 제306호, 국보 제306-2호)과 비교했을 때 범어사 소장본은 비록 완질(完帙)은 아니지만 1394년 처음 판각된 후 인출(印出) 시기가 가장 빠른 자료로서 서지학적 의미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기존 지정본에서 빠진 제28∼30장을 보완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자, 1512년(중종 7년) 간행본의 오탈자를 확인할 수 있어 현재까지 알려진 삼국유사 판본에 대한 교감(校勘)과 원판(原板) 복원을 위한 자료로서 역사‧학술적인 중요성이 크다.

아울러 범어사 소장본은 서체, 규격, 행간(行間) 등에 있어 후대에 간행된 1512년 간행된 판본과 밀접한 양상을 보여 조선시대부터 판본학적으로도 중요하게 인식되었으며, 단군신화(檀君神話)를 비롯해 향찰(鄕札, 신라식 음운 표기방식)로 쓴 향가(鄕歌) 14수가 수록되어 있어 우리나라 고대 언어 연구에도 많은 참고가 된다.

보물로 지정예고된 지정요격은 원나라 것인데, 한국에만 있다. 경국대전을 만드는데 참고가 된 법전이다.

‘지정조격 권1~12, 23~34’는 비록 완질은 아니지만 국내외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현존하는 유일의 원나라 법전으로, 경주 양동마을의 경주손씨(慶州孫氏) 문중에 600년 넘게 전래되어 온 문적이다.

경주손씨 집안에 ‘지정조격’이 전래된 배경에 대해, 학계에서는 손사성(孫士晟, 1396~1435), 손소(孫昭, 1433~1484) 등 조선 초기에 활동한 선조들이 승문원(承文院, 조선 시대 외교문서를 담당한 관청)에서 외교문서를 담당하면서 외국의 법률, 풍습 등을 습득하고자 ‘지정조격’을 접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정조격은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원나라 순제 6년)에 간행된 원나라 최후의 법전으로, 서명의 뜻은 지정 연간(至正 年間, 1341~1367)에 법률 조목의 일종인 ‘조격(條格)’을 모았다는 의미이다.

지정조격은 고려 말에 전래되어 우리나라 법제사와 문화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려 말까지 형사법(刑事法) 등의 기본법제로 채택되었고 조선에서는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의 기본법전) 반포 이전까지 중국의 법률과 외교, 문화 제도를 연구하는데 주요 참고서로 활용되었다.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 보물 지정 예고

‘장용영 본영도형 일괄(壯勇營 本營圖形 一括)’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친위부대였던 장용영(壯勇營)이 주둔한 청사의 본영(本營)을 1799년(정조 23년, 기유본), 1801년(순조 1년, 신유본)에 그린 건축화로서, 채색화 1점과 일종의 평면도안인 간가도(間架圖) 2점으로 구성되었다. 장용영은 도성 안에 본영(本營)을, 수원화성에 외영(外營)을 두고 운영되었기 때문에 이 자료는 도성 안(지금의 서울 종로 4가 이현궁 터 추정)에 설치된 장용영 본영의 현황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도형은 장용영의 전반적인 현황과 관청의 증개축 변화를 기록하여 왕에게 보고하기 위해 만든 자료이기 때문에 정확한 축적에 기초한 평면도와 정교한 필치로 건축물을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과학적인 측량이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에 축적과 지형지세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실제와 거의 유사한 대지의 형태를 표현했다. 정간 구획의 대형 평면도와 이와 합치하는 채색건물도가 함께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례이자 유일한 도형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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