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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징역 10년→무죄…엇갈리는 진술 신빙성 판단 [변환기 맞은 성범죄 재판①]
대법원 ‘성인지 감수성’ 강조 이후 피해자 진술 중요 증거로
“사실관계 따질때 감수성 강조 옳지 않아” 실무계 우려
“과도기적 시점…사회적 성인지 감수성 일치하는 날 올 것” 반응도

[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 징역 10년에서 무죄. 10대 초반의 남학생 두 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어느 여성 학원 강사에 대한 판결은 극과 극을 오갔다. 1,2심 판단이 엇갈린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중형을 선고했던 이 사건은 항소심 단계에서 피해자가 범행 당시 다른 곳에 있었다는 병원 진료기록이 결정적 증거가 되면서 무죄로 결론이 바뀌었다.

최근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면서 피해자의 진술이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고 있다. 피해자다운 행동양식을 요구하고, 거기에 맞지 않다고 해서 함부로 진술을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지만 실제 재판에서 진술에 의존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은밀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사건은 다른 증거가 없어 피해자 진술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의견과 법원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너무 폭넓게 인정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오고 있다.

술자리에 동석했던 여성을 화장실로 뒤쫓아가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뮤지컬 배우 강은일씨 사건도 비슷한 사례다. 강씨는 1심에서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피해 여성이 당시 성범죄 정황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 결론도 강씨가 먼저 화장실로 향했고, 피해 여성이 오히려 뒤따라 간 것으로 볼 수 있는 그림자가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이 확보되면서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2018년 4월 대법원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성범죄 사건을 다루는 실무자들은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취지를 이해하면서도, 실제 변호에 어려움이 생긴다고 호소하고 있다. 성범죄 변호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피해자 진술이 워낙 절대적인 만큼 가해자들을 대리할 때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시간이 지난 사건들의 경우 피해자진술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들도 찾기 쉽지 않아 더 불리하다. 피해자의 기억이 흐려질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재판부를 설득시키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형사사건을 많이 하는 한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은 당사자간 성관계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고 동의 또는 고의의 영역에서 강제성이 있느냐를 따질 때 고려 대상인데, 성관계 여부를 따질때도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여성변호사회 감사를 맡고 있는 김숙희 변호사는 “최근 상황은 성범죄 사건 판단에 전환기를 맞이하는 과도기적 시점”이라며 “당사자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성인지 감수성의 차이 탓에 억울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일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피해자의 진술을 봉우리에 놓고 주변정황을 통해 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확인해 가는 과정이 성범죄 사건 재판”이라며 “특히 성범죄 사건은 양 당사자 사이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진행되는 만큼 판결 이후에도 자기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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