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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환기 맞은 성범죄 재판②] “성인지 감수성, 유죄 추정 아니야…판결 사유 더 구체화해야”
성폭력 사건 전문가 이은의 변호사 인터뷰
“성인지 감수성 대법 판결 이후 법정에서 피해자 존재 더욱 인식돼”
“무죄추정 흔드는 게 아닌 보완하는 가치관…실체진실 발견 도구”
이은의 변호사. 박해묵기자,mook@heraldcorp.com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대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판결문에 처음 사용하고 강조한 이후 사회에 분명한 영향을 줬어요. 하지만 구체적 판단 이유를 알 수 없다거나,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유죄로 추정 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있는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법원이 더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밝혀주면 더욱 신뢰받는 가치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은의 변호사는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2년여 간 법정에서 많은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법원은 2018년 4월 한 행정사건에서 성폭력 관련 사건을 심리할 때 가급적 피해자가 처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2차 피해 가능성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 간 불균형 상황을 인식해 그 안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을 의미하는데, 그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미투(#MeToo) 운동의 목소리가 법원 판결에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후 법원은 성폭력이 직접 문제가 되는 형사사건과 민사 사건에서도 이 판결을 인용하며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다수의 피해자를 대리해온 이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강조된 이후 피해자라는 존재가 인식되기 시작했다”며 “지난 2년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고, 피부로 와닿는다”고 말했다. 피고인의 변호인이 피해자에게 과도한 증인신문을 할 때 법원이 제지한다거나, 재판에서 피해자 및 피해자 변호사의 자리와 출석 등 방청 상황을 더 세심하게 고려한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의 증언 부분에서도 “개별성이 존중되기 시작했다”며 “피해자의 전반적 맥락을 살피기 위해 과거보다 법원이 더 열고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법원의 성폭력 사건 심리 방식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음에도, 일각에선 헌법 원칙과 정반대의 ‘유죄추정’ 원칙으로 쓰이지 않느냐고 비판한다. 피해자 진술 외에 물증을 찾기 힘든 성폭력 관련 사건에서, 법원이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 판결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법원이 말하는 성인지 감수성은 열세에 있는 피해자 입장에서도 공평하게 생각하라는 평등 감수성, 입장 감수성”이라며 “피해자 입장이 이랬을 수 있다는 것이지, 무죄추정원칙을 해하거나 흔드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성인지 감수성은 실체적 진실을 더 잘 보기 위한 도구로 쓰여야 하는 것”이라며 “무죄추정원칙은 말 그대로 헌법상 원칙이고 성인지 감수성은 가치관의 영역인데, 궁극적으로 이런 원칙을 지지하는 가치관”이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마치 유죄추정원칙처럼 비춰지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법원이 보다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판결문에 밝혀야 한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흔히들 피해자 진술만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직접증거로써의 진술만 있는 것이지 진술만 증거인 사건은 별로 없다”며 “객관적 증거와 논리, 정황증거 등에 따라 각 사건마다 어떻게 실체 진실을 판단하고서 결론을 냈는지 지금보다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야 사법 영역에서 성인지 감수성 의미가 퇴색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법원만이 아니라 재판 전 수사 기관에서도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 사건 처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이미 사건 처리 과정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지만 그건 재판으로 간 사건에만 해당이 되는 것”이라며 “성인지 감수성이 더욱 빛나는 가치관이 되려면 법원만이 아니라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에 대한 요구와 모니터링을 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dand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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