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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밝히는 ‘빛의 마술사’ Cho…그의 ‘작품 그리고 사람’ 이야기
건축조명 컨설턴트로 설치 예술가로 경계 넘나들며 빛의 본질 탐구…‘U2’의 보노와 박물관 협업…“결국 사람이 한계를 이기게 해주죠”
런던 세인트조지 교회에 설치된 조민상 디자이너의 샹들리에. [조민상 디자이너 제공]
조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런던의 스트랜드 이스트(Strand East Tower) 타워.[조민상 디자이너 제공]
최고의 록그룹으로 꼽히는 영국 록밴드 U2의 보컬 보노. 노벨평화상 후보에 세 차례나 오르고 지난해 말 청와대에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최근 아일랜드 더블린에 위스키 박물관을 짓고 있다. 1880년대 운영되던 제분소 터에 마구잡이로 증축한 공장을 다채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이 프로젝트는 보노의 투자로 영국 내에서도 화제다. 2022년 모습을 드러낼 이 박물관을 빛으로 채울 조명을 한국인 디자이너가 맡았다.

보노가 손을 내민 사람, 영국과 프랑스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조민상 디자이너를 유선으로 만났다. 그는 지금 가족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살고 있다. 그를 가리키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조명 디자이너이자 건축 조명 컨설턴트이고 조명 설치 예술가이기도 하다. 경계도 형태도 뚜렷하지 않은 빛처럼, 그의 일을 하나로 정의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다.

실제 보노와의 협업은 건축조명 영역이지만, 동시에 미국 대형 만화출판사인 DC코믹스가 런던에 문을 여는 테마레스토랑의 조명도 맡아 디자인 하고 있다.

▶밤새도록 빛나는 작은 새가 이끈 길= 처음부터 조명 디자이너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TBC 프로듀서(PD) 출신으로 국내 1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서울대 미대 선배이기도 한 아버지 조영철 씨를 따라 삼남매 중 손재주가 있던 그는 운명처럼 미술을 전공하게 됐다. ‘그리는 재주보다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깨달은 건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고 나서다. 디자인 영역을 조명으로 좁힌 것은 제대 후 1996년 처음 떠난 유럽여행에서였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의 부둣가를 걷다가 멀리 사면을 유리로 만든 컨테이너 같은 곳에서 밤새도록 불을 밝히는 작은 새를 봤다. 그걸 만든 이가 누군지도, 그게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아, 나는 이런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 작품이 독일의 조명 디자이너 ‘잉고 마우러(Ingo Maurer)’를 세계 디자인 업계에 알린 작품 ‘루첼리노(Luchellino)’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루첼리노는 이탈리아어로 루체(빛), 우첼로(새), 피콜리노(꼬마)의 합성어로 ‘빛이 나는 꼬마 새’란 뜻이다.

조 디자이너는 “에디슨 전구에 날개를 단 작은 새가 컨테이너 안 바닥에 쫙 깔려 있는데, 피로하고 지친 외로운 마음이 씻겨가는 듯 했다”며 “전환점이 된 순간”이라고 말했다.

조민상 디자이너 작품 ‘리본(The Ribbon)’.[조민상 디자이너 제공]
▶빛의 본질을 욕망하다보니 무너진 경계= 조명은 배울 곳이 정해져있지 않았다. 영국 왕립예술학교(RCA)를 마치고 런던 ‘애브로저스 디자인’에서 그는 조명과 메카니컬 디자이너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런던의 다채로운 소규모 제조업체와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했고 이 경험이 조명을 만드는 뿌리가 됐다. 이들과 테이트모던 박물관에 어린이들을 위한 게임기를 제작하고, 키네틱 프로젝트로 춤추는 마네킹 등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목마름이 느껴졌다. 그는 “빛의 본질을 모른 채 가구디자인을 하듯 조명에 접근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면서 “좀 더 빛의 본질을 파고 싶다는 욕망에 런던의 대형 라이팅 컨설팅사인 호아레 레아 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 덕에 그는 디자이너이면서 건축조명 컨설턴트가 됐다. 두 영역을 넘나드는 이는 찾기 어렵다. 건축 조명은 엔지니어의 영역이고, 디자인은 예술에 가깝기 때문이다. 조 디자이너는 “하는 일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아예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빛이 주는 유희를 만끽하고 싶다”고만 했다.
2019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조명 설치 작업을 하고 있는 조민상 디자이너.[조민상 디자이너 제공]
▶한국에서 런던, 밀라노, 라스베가스, 말레이시아까지= 그의 포트폴리오는 그야 말로 다채롭다. 국내에선 2011년 조명을 기계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 발레와 접목해 ‘플라잉 레슨’ 공연을 했고, 2012년엔 런던 북동부 스트란드 이스트 타워의 불을 밝혔다. 가구 기업 이케아(IKEA)가 런던에서 가장 가난하기로 소문난 이 지역에 10년간 투자하는 프로젝트의 시발점으로 세운 이 탑에는 600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들어가 건축물의 숨겨진 구조를 밝혔다. 그는 이 탑으로 2013년 영국의 ‘라이팅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런던 블룸스버리에 있는 세인트 조지 교회의 조명을 디자인 했다. 2년여의 준비로 900년이 넘은 유서 깊은 교회에 빛을 밝혔다.

디자이너로서 런던 디자인 페스티발과 파리의 메종 오브제,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도 참가하고 한국 회사와의 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의 조명 컨설턴트로 일하기도 했고, LG전자의 하이엔드 가전 브랜드 시그니처가 해외에 선보일 때마다 제품을 밝힐 조명을 디자인 하는 이도 그다. LG전자와 함께 라스베가스의 KBIS, 베를린의 IFA등 메이저 가전 전시에 참여한다.

2017년에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외곽에 있는 겐팅 하일랜드 카지노에 그가 디자인한 조명 리본이 설치되기도 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의 유연한 특징을 살려 3D프린터로 뽑아낸 리본은 말 그대로 천장 위에 리본을 묶은 듯, 빛이 자유롭게 유선형태를 띄는 것이 특징이다.
조 디자이너가 LG OLED를 활용해 디자인한 런던 해롯 백화점의 디스플레이.[조민상 디자이너 제공]
▶결국 한계와 두려움을 채우는 것, ‘사람’=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많은 이들이 보다 부르기 쉬운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그는 ‘조민상’ 이름 석자를 쓰고 있다.
 
조 디자이너는 “민 이라고도 부르고, 조 라고도 불린다”면서 “한국인이라는 장벽보다, 신뢰가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보노와 손잡은 더블린 프로젝트는 앞서 일한 웨일즈 출신 조명 설치가와의 연이 닿아 진행됐다. 그는 “아일랜드인은 의리도 있고 다혈질이고 아는 사람하고만 일을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던데, 그의 친구들과 연이 닿은 셈”이라며 “함께 다리 조명도 하고 건축 조명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뜻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도 이해하고 헤쳐나갔던 것들이 힘이 된 듯 하다”고 했다.

부족한 것도 사람으로 채운다. 조 디자이너는 “너무 좋아하는데, 움직이는것은 언젠가는 서지않는가? 때문에 커머셜 프로젝트에 키네틱 디자인을 해 넣기에는 항상 위험요소가 따른다”면서 “최근 DC 코믹스와 함께하는 테마 레스토랑의 프로젝트 매니저가 60대 할아버지인데 키네틱 엔지니어 출신이어서 함께 재미있는 일을 해 보자고 의기 투합 했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루미날레에 공식 초청받아 시립박물관 정원과 건물을 독점으로 사용하면서 새가 날아가는 키네틱 조명 ‘플라잉 레슨’을 전세계에 소개한 바 있다.

조 디자이너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과 일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더 생긴다”면서 “사람이 결국 한계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며 긴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성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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