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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석영 “천만 산업노동자들의 얘기, 한국소설의 빈자리 채우고파”

황석영 작가가 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서 열린 신작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만노동자라고 하는데 노동자를 다룬 한국문학이 거의 없어요. 그걸 채워놓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가 황석영(77)이 장편소설 철도원 가족 3대를 통해 한반도 100년의 역사를 꿰뚫는 소설, ‘철도원 삼대’(창비)로 돌아왔다. 소설로는 경장편 '낯선 세상'이후 9년만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전후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의 삶을 근현대사를 통과하며 생생하게 담아냈다.

황 작가는 2일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전 소설 ‘수인’을 출판하고 나니까 간이나 쓸개가 내장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막막해졌다”, 며 많은 세계적인 작가들이 노년의 시간을 잘 마무리 못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면 힘들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작가는 죽을 때까지 써야 하는 사회적 책무가 있다”며,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길로 가고 새로운 작품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고지 2천400매에 달하는 소설은 후반기 문학으로 지칭한 무속굿, 판소리, 설화, 민담 등을 채용한 리얼리즘의 확장이란 문학적 특성을 잇는다.

소설은 공장이 밀집된 영등포지역을 중심으로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삼대와 현재 고공농성중인 이백만의 증손자이자 공장 해고 노동자 이진오의 이야기가 시공을 오가며 교차돼 전개된다. 이진오는 공장이 폐쇄되고 회사가 매각되면서 동료들과 함께 해고되자 발전소 공장 굴뚝에 올라 복직 투쟁을 벌인다.

황 작가는 “농성하고 있는 굴뚝이라는 데가 지상도 아니고 천상도 아닌 곳, 시간이 멈춰 있는 곳인 만큼 자유롭게 시공을 넘어 회상하고 상상하는 민담 형식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현실이 IMF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비정규직화하고 세계화로 자본이 빠져나가 노동조건은 열악해진 거 같다. 지금은 과거에 비해 상황은 나아졌지만 사회가 같이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철탑 고공농성 해제와 관련해선, “주위에 그런 사례는 여전하다”며 “과거 노동자들의 삶에 영향을 준 정치사회적 현실이 현재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비슷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소설에는 조금씩 세상은 나아질 거라는 믿음과 희망의 메시지들이 꾸준히 이어지는데, 작가는 이런 사실을 스스로 실감한다며, 과거 20,30대 겪었던 것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소설의 구상은 30년 전 방북 때 만난 영등포 철도원 출신의 70대 노인의 얘기에서 시작됐다. 영등포 출신인 황 작가는 그 노인과 당시 대동강변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고향의 추억을 공유했다고 한다. 매일 7시간에서 10시간씩 소설을 쓰면서, 한번은 영등포를 찾아갔더니 동네 뒷골목은 옛날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감회가 깊었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이번 ‘철도원 삼대’에 작가는 또 다른 문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염상섭의 ‘삼대’가 개화기부터 근대까지 브루주아 3대를 통해 근대문학의 시작을 알렸다면, ‘철도원 삼대’는 산업노동자 3대를 통해 3.1운동 이후 한국전쟁까지 다룸으로써 염상섭의 ‘삼대’를 이었다는 자평이다.

황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철학동화를 쓰려고 한다며, 살고 있는 곳이 원불교 발생한 지역이라 소태산의 어린성자가 사물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을 쓸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로 20세기 문명, 자본주의체제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고 했다.

한반도 정전체제와 관련해선, “일단 한반도를 둘러싼 화두는 다 나왔다. 북미대화만 해도 큰 진전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대화와 협상을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철도원 삼대’는 초판 1만부가 판매되고 중쇄에 들어갔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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