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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숙 총리 재심청구 어려울 듯…법조계 “사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 비판
한만호 진술 외에 물증 근거 유죄 확정 판결
억울하면 재심 청구하면 되는데… 재조사 공론화 ‘부적절’ 비판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서영상 기자] 여권을 중심으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정치자금 공여자였던 고(故) 한만호 씨의 비망록 내용을 토대로 재심이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법조계에선 여권이 총선 승리를 내세워 확정판결을 뒤집으려 하는 시도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 장관까지 나서 여권의 재조사 요구에 지지 입장을 밝힌다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반응이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20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한 전 총리 사건의 진실이 10년 만에 밝혀지고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추 장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한만호의) 비망록을 보면 수사기관이 기획해 수십 차례 수감 중인 증인을 불러 협박·회유한 내용이 담겼다”며 “구체적 정밀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씨의 비망록 내용이 재심 청구 사유로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판결에 중대한 사실오인 등이 있는 경우 확정판결의 부당함을 바로잡는 재심 절차는 원래 판결의 증거물 등이 위조 또는 허위 됐다는 중요한 내용이 증명된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여권이) 근거로 내세운 한만호 씨의 비망록은 과거 법원에 제출돼 검토를 받은 바 있는 만큼 새로운 자료가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며 “재심 요건은 과거의 재판을 뒤집을 만큼의, 새롭고 명백한 증거를 그 요건으로 하는데 이 사건은 거기에 미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법원이 제시한 유죄 근거에는 한만호 씨 진술 외에도 통화 기록, 한신건영 자금 출납 내용, 한명숙 전 총리의 통화 기록 등이 있다.

대법관 전원이 참석해 결정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결론을 부정하고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법치주의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부장판사는 “해당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을 받은 만큼 법원의 최고 권위 있는 결정을 받은 사건인데 사법부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다른 변호사도 “한 전 총리가 억울하다면 재심 절차를 신청하면 될 것을 가지고 재조사 운운하는 것은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찰을 괴롭히고 ‘친노 대모 구하기’ 운동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추 장관까지 재조사 요구를 지지했다는 데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구체적 타당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법적 안정성”이라며 “법무부 장관조차 정식 절차인 ‘재심’도 아닌 ‘재조사’에 대한 지지 뜻을 내비치는 것은 매우 불편한 얘기”라고 말했다. 같은 날 국회에 출석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도 “재판도 오판 가능성이 있지만 그 경우 증거를 갖춰 재심을 청하도록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재수사 논의는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한씨의 비망록 내용이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이 비망록에는 한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가 법정에서 번복한 이유가 담겨 있다. 한씨는 추가 기소의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이었다고 적었다.

실제 한씨는 검찰 조사 단계에서는 금품 공여 사실을 시인했다가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의 강압 수사에 의해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한만호 씨로부터 불법 자금을 받은 비서에 대해서만 징역형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한 전 총리가 9억원을 수수한 사실이 모두 입증됐다고 판단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한만호 씨와 한 전 총리가 실제 친분을 유지해왔고, 장부에 비자금 조성 내용과 한 전 총리를 뜻하는 ‘한’ 표기가 돼 있던 사실, 자금이 오간 직후 두 당사자가 통화한 사실로 미뤄볼 때 비서관이 아닌 한 전 총리가 자금을 수수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한만호 씨가 건넨 자금 중 1억원짜리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 전세자금으로 쓰인 증거를 바탕으로 징역 2년형을 확정 지었다. 한 전 총리가 받은 9억원 중 3억원에 대해서는 대법관 만장일치로 유죄 판결이 났고, 6억원에 대해서는 일부 의견이 엇갈렸다.

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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