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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향’이 돌아왔다…“밀당하는 춘향과 몽룡…동시대의 이야기”
국립극장 창설 70주년 기념공연 ‘춘향’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이소연 김준수, 오디션 1인 김우정
썸 타고, 밀당하는 춘향과 몽룡…친구같은 몽룡과 방자
“풋풋한 소년소녀의 사랑…동시대의 이야기”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한국인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판소리 한 대목. ‘춘향’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 본 적이 없더라도 흥얼거릴 수 있고, 누구나의 기억 속에 저마다의 얼굴로 자리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배우와 소리꾼이 그 주인공이다. 무대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수도 없이 재연된 덕분이다.

“어릴 때 김희선 씨가 나온 ‘춘향전’을 봤어요. ‘초록은 동색이요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내려오는 관장마다 가관이오’라는 대사가 있었어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연습장에 적어 따라했던 기억이 있어요.”(이소연)

“드라마 ‘쾌걸춘향’(2005)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소리가 나온 건 아니었지만, 전혀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 춘향과 몽룡이 기억에 남아요.”(김준수) “조승우 씨가 나온 영화 ‘춘향전’이요. 판소리 사설을 대사에 넣은 것이 인상적이었어요.”(김우정)

무대 안팎으로 등장한 춘향엔 ‘비공식 불문율’도 있다. 영화계에선 춘향을 맡으면 ‘톱스타’가 된다 했고, 창극에선 ‘신인들의 등용문’이라고 했다. 2010년 국립창극단 오디션을 통해 ‘춘향’으로 발탁돼 지금은 창극단의 간판스타가 된 이소연(36)이 대표적이다. 또 한 명의 스타 탄생이 예고됐다. 10년 만에 다시 열린 오디션에서 춘향으로 발탁된 김우정(26)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몽룡 김준수(30)가 있다. ‘춘향’(5월 14~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이 ‘봄의 향기’를 타고 돌아온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세 사람을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났다.

창극 '춘향'에서 춘향에 더블 캐스팅된 이소연 김우정(왼쪽부터)과 몽룡 역의 김준수는 이 작품은 “전통을 살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동시대성을 담았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제공]

▶ ‘춘향’과의 인연…국립창극단 간판스타와 오디션 ‘최후의 1인’=‘춘향’과 세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국립창극단의 ‘입단 동기(2013)’에서 나란히 창극단을 대표하는 얼굴이 된 이소연 김준수는 현시대의 춘향과 몽룡이다. 이소연은 지난 10년 동안 명실상부 춘향이었다. 2010년 ‘춘향 2010’, 2014년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 이후 세 번째다.

“이번이 마지막 춘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올해 춘향으로 발탁된 (김)우정씨를 보면서 10년 전 생각이 나더라고요. 당시 춘향을 할 때 선생님들을 보면서 배운 것들이 많아요. 우정씨도 나를 보면서 공부할 텐데, 좋은 길잡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활짝 만개하고 져야죠. 그리고 길이 되어 줘야죠.(웃음)” (이소연)

김준수도 2014년에 이어 올해에도 몽룡으로 발탁됐다. “‘다른 춘향’에선 이몽룡의 모습이 워낙에 파격적이었는데, 이번엔 원래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이제야 제가 생각했던 이몽룡의 모습이에요.” (김준수)

김우정은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거쳐간 ‘춘향’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한 ‘최후의 1인’이다. 퓨전국악팀 조선블루스에서 활동하고 있고, 지난해 ‘너의 목소리가 보여’(엠넷)에 출연해 눈도장을 찍었다. “소리를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국립창극단은 꿈의 무대예요. 게다가 춘향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할 만큼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그만큼 기쁨과 부담이 있어요. 제가 이 곳에 발이라도 담글 수 있도록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우정)

김준수는 두 명의 춘향과 함께 하는 만큼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소연 누나는 풋풋하면서도 연륜 있는 내공이 공존하고, 우정이는 또 다른 풋풋함과 귀여움이 있어요.”

창극 '춘향'에서 춘향에 더블 캐스팅된 이소연 김우정(왼쪽부터)과 몽룡 역의 김준수는 이 작품은 “전통을 살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동시대성을 담았다”고 말했다. [국립극장 제공]

▶ 2020년의 춘향…“풋풋한 소년소녀의 사랑, 동시대의 이야기”=2020년에 선보이는 ‘춘향’은 조금은 특별하다. 1962년 국립창극단 창단 기념작이었던 ‘춘향전’이 국립극장 창설 70주년 작품이라는 의미를 입고 무대에 다시 오른다.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춘향전’이 고전으로 이어온다는 것은 이 극만이 가진 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춘향전은 배우마다 연기와 소리가 다르고, 이야기에 덮이는 음악을 듣는 색다른 재미가 있어요.” (이소연)

춘향의 생명력은 대중과 친숙한 소재인 데다, 해석이 다양하다는 데에 있다. 춘향전의 이본만 해도 100여종. 이번 ‘춘향’은 “전통을 살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동시대성을 담았다”고 배우들은 입을 모았다.

“2010년 춘향은 아주 전통적인 춘향전이었어요. 고전 그대로를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숙제였죠. 2014년엔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춘향이었어요.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진 춘향을 파격적으로 깨는 느낌이었죠. 이번엔 지금의 젊은 세대가 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소연)

사실 춘향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했다. 장르마다 달라지는 다양한 얼굴의 춘향은 당대 한국 사회의 욕망과 가치관을 비췄다. 2020년의 춘향도 고전 안에서 뛰쳐나왔다. 중년 같은 성숙한 사랑을 불렀던 ‘사랑가’, 한 맺힌 애절함이 담겼던 ‘이별가’는 서툴고 풋풋한 사랑과 이별의 옷을 입었다.

“열여섯, 열일곱 소년 소녀의 설레는 사랑 이야기를 강조했어요. 중고등학생들은 낙엽만 떨어져도 깔깔거리잖아요. 손가락만 닿아도 풋풋하고 설레는 사랑을 그리고 있어요.” (이소연) “그래서 열여섯 춘향이 사랑을 할 때, 이별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중점을 두고 표현하고 있어요.” (김우정) “20대도 아니고 10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나름대로 풋풋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머리도 짧게 잘라보면서, 그런 기분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웃음) ”(김준수)

춘향과 몽룡의 캐릭터도 달라졌다. 춘향은 솔직하고 당찬 소녀로, 몽룡은 순수한 소년으로 다시 태어났다. 춘향은 더이상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아니고, 떠나간 임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소녀도 아니다. ‘썸’ 타는 시기도 존재한다.“몽룡이 ‘진짜 사랑’인지 ‘밀당’(밀고 당기기)하고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요.”(김준수, 김우정) “이별을 할 때도 속상한 마음을 감추는 대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냐며 솔직히 이야기해요.”(이소연, 김우정)

몽룡과 방자는 수직 관계가 아닌 “오랜 벗과 같은 관계”(김준수)로 다시 설정했다. 장원급제 이전과 이후 보이는 캐릭터의 변화로 몽룡의 성장을 보는 것도 이번 춘향의 재미다.

“1막에선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는 순진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2막에선 과거 급제 후 성숙한 모습이 나와요. 대사와 말투에도 변화가 있고요. 어사가 되기 전후의 모습에 차별점을 두고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색다른 시도도 있다. 창극 최초로 안무와 연기, 소리를 한 번에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했다. ‘춘향가’의 꽃으로 불리는 ‘사랑가’다. 세 배우는 ‘사랑가’를 이번 ‘춘향’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춘향과 몽룡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안무가 가미됐어요. 관객들에게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보일 것 같아요.” (김준수) “고전 창극은 소리를 위주로 하다 보니 움직임이 크지 않았어요. 온전하게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였죠. 소리를 하면서 역동적인 움직임과 함께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주는 장면이 이번 춘향의 백미예요.” (이소연) “대신 저희는 엄청나게 숨이 차죠.(웃음)”(김준수)

2020년의 ‘춘향’은 전통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깼다. 어려운 한문 어투와 사극조를 현대적으로 바꿨고,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은 과감하게 삭제했다. 호흡이 빨라진 것도 큰 변화다. 창극 ‘춘향’이 과거에 갇히지 않고, 지금의 세대와 함께 하려는 노력이다.

“우리 창극이 머물러 있는 창극이 아니라는 걸 작품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춘향’처럼 조금 더 시선을 열어주고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야 창극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준수)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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