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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입취재 제보자’·‘신상유포 자경단’…‘n번방’ 면책 어디까지
“언론인도 취재 흔적 없으면 처벌받아야”
“스스로 내사 주장하는 경찰도 엄격 적용”
‘주홍글씨’ 등 자경단은 “원칙상 명예훼손”
텔레그램 대화방 ‘박사방’에서 성 착취물을 유포한 조주빈의 공범 A 씨가 지난 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부따’라는 대화명을 사용한 A 씨는 박사방 참여자들을 모집·관리하고, 박사방 등을 통해 얻은 범죄수익금을 조주빈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윤호·박상현 기자] 미성년자 등의 성 착취 영상물 유포 사건인 ‘n번방’이나 유사 대화방에 잠입하는 언론과 “제보를 위해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일반인이 최근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이 과연 어느 정도 면책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3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관련 전문가들은 “언론인의 경우 취재 지시, 보고 등 구체적인 흔적이 있어야 하며, 일반인은 보다 엄격한 요건에 따라 위법성 조각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도 “사람의 마음을 진술만으로 어떻게 판단하겠나. 언론인이든 비언론인이든 (스스로 내사에 착수한)경찰이든, 본인이 고의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면책을 따지기보다는 빨리 자진 신고하는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제보자를 자처하는 일반인, 엄격한 위법 조각 사유 필요=일반인이 n번방 또는 유사 대화방에 가입한 경우는 원칙적으로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행위로 봐야할 것이며, ‘순수한 제보’의 목적임이 입증돼도 엄격한 요건 하에 위법성 조각 사유 또는 양형 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는 “n번방의 불법성에 관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1차적으로 수사기관에 신고를 하거나 언론에 제보 등을 하는 방식을 통해 ‘불법여부’에 관한 취재 혹은 수사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시민의 권리임이 분명하다”며 “수사기관 등에 고발 조치가 가능함에도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불법적인 n번방에 어려운 회원 가입 단계를 거쳐 들어가는 행위는 면책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도 “‘그냥 나는 너무 분노스러워서 들어가 봤다’ 등의 말을 피해자가 원하겠나. 위법성이 단순하게 조각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며 “추적단 ‘불꽃’처럼 기사 공모전에 텔레그램 성 착취 실태를 취재한 기사를 출품하는 등, 잠입 정당성 자체가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수준이 돼야한다”고 했다. 이어 “특히 자기 면책 사유는 자기 입증 책임이 피의자에게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며 “범죄 성립 자체는 검사한테 입증 책임이 있지만, 면책 사유는 자기가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인은 ‘취재 흔적’이 중요…경찰도 마찬가지=언론인의 경우 이 사건 발생 이후에 관련 취재 지시나 내부 데스크로부터 지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자발적 취재라면 그에 대한 보고나 회의결 과라도 있어야 한다. 이은의 변호사는 “단지 기자라는 신분이나 소속된 언론사 등 단체에 의해 소명되는 게 아니라, ‘취재를 하는 중’이었다는 것이 명확하게 소명돼야 한다”며 “잠입 취재를 행하고 기사를 쓰지 못한 경우, 그런 내역들이 증빙돼야 위법성 조각 사유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도 “회원이 아닌 사람이 n번방 입장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 해당 방의 문제점을 탐사 보도하기 위해 기자가 신분을 속이고 회원으로 가입해 입장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는 있다”면서도 “공익적 목적으로 잠입 취재를 하는 경우라도 소극적으로 n번방 내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대해 취재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성 착취물을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받아 회사 이외의 제3자에게 유포하는 행위 등은 곧바로 범죄 행위가 된다”고 했다.

이은미 국선전담 변호사는 “취재를 위한 구체적인 행위가 무엇인지 따져 침해되는 사익보다 공익이 큰 것이 분명해야 하며, 취재 수단은 불가피했는지 침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는지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위법성 조각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내사를 위해 잠입한 경우에도 수사내역이나 첩보내역이 명확히 있어야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n번방 또는 유사방에 대한 관할이 뚜렷하다고 볼 수 없다”며 “이에 따라 자발적으로 잠입한 경찰이라도 범의를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증빙 내역이 있거나 자진 신고를 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홍글씨’ 등 온라인 자경단 “원칙상 명예훼손”=텔레그램방 ‘주홍글씨’ 등 온라인상에서 ‘n번방’ 관련자들의 이름, 얼굴, 거주 지역 등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이른바 ‘자경단’들의 행위는 “원칙상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허윤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은 “신상공개 등은 법원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건데, 개인이 임의로 하게 되면 현행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소지가 있다”며 “신상이 공개가 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범죄 예방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개인이 아닌 법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은의 변호사 역시 “범죄 행위가 이미 끝난 상황에서 이를 단죄하는 것을 국가 사법권의 발동으로만 하라는 것이 법”이라며 “(신상공개)행위를 하는 분들의 분노나 정의감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도 “이미 해당 범죄 사실에 대해 범정부 차원에서 의지를 보여주고 있고 수사기관은 더 할 나위 없는 상황”이라며 “어떤 경우에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피의자 신상 공개를 할 수 있는지 규정된 법을 무시하고 국민적 공분만 감안해 공개하면 법치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 역시 “자경단의 행위가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해당하는 지 뜯어보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피해자에게도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물며 ‘주홍글씨’ 가입자가 1만명을 넘는 것을 감안하면 피해자가 아닌 ‘제3자’인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youkn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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