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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코로나19가 헷갈리게 만든 ’사전투표의 고전 정치학‘
4·15 총선 사전투표율 26.69%로 역대 최고
통상 투표율 높을땐 진보, 반대땐 보수 유리
코로나19 특수상황 껴 그 공식 맞을지 주목
여야는 “우리가 유리” 아전인수 해석 내놓아
종로 34.6%…수도권서 최고투표율 시선집중
선거 D-2, 여야는 막판 사생건 표심잡기 나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주민센터에서 한 시민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비닐 장갑을 착용하고 투표하고 있다. 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보인 이번 총선 사전투표는 10~11일 이틀간 전국 3508개 투표소에서 진행됐다. [연합]

총선 사전투표 이틀째인 지난 11일 오후. 나는 동네의 한 사전투표장으로 향했다. 어라,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밖에 선 줄은 50미터 쯤은 되는 것 같았다. 이왕 온 것, 기다리더라도 투표하자 싶었다. 안내자 손에 들린 손소독제를 발랐고, 비닐장갑까지 얻었다. 투표함이 설치된 건물안 계단까지 합치면 줄은 100미터쯤 됐을 것이다. 건물 안에는 노란 줄이 1미터 간격으로 그려져 있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앞 사람과 일정 간격을 유지케 하려는 일종의 선(線)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투표함에 넣은뒤, 비닐장갑을 벗어 던지고 출구로 빠져나왔다. 투표까지는 대략 30분쯤 걸린 것 같다. 사실 사전투표는 처음 했다. 난 선거에서의 투표는 늘 당일 투표를 고집해왔다. “당일 생생한 현장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 투표해야 제 맛이지”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세상이 하도 코로나, 코로나 하기에 총선 당일(15일) 투표장에 사람이 많으면 부담이 되겠다 싶기도 하고, 투표는 꼭 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한산한 사전투표를 택한 것이었다. 나처럼 생각한 사람이 많았나보다. 사전투표장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을 보면 말이다.

다음날 지인을 만났는데, 그 역시 같은 날 사전투표를 했단다. 그런데 우리 동네와는 분위기가 달랐다고 한다. 그 역시 많은 사람들로 인해 투표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난히 나이 드신 어른들이 많더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선 젊은이들이 많아 보였는데, 지인 동네에선 어르신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는 것이다. 동네마다 상황이 다른 법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나와 그 지인과 같이 사전투표를 한 사람은 예상외로 엄청 많았나보다. 뉴스를 보니 지난 10~11일 이틀간 실시한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26.69%를 기록했단다. 무려 1174만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했다고 한다.역대 최고의 사전투표율은 2017년 대선 때(26.06%)인데, 이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통상 대선의 관심도는 총선보다 훨씬 크다는 점에서 올해 총선 사전투표율이 이토록 높았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 사전투표율은 2016년 제20대 총선의 사전투표율(12.19%)보다 14.50%포인트나 높았다. 그동안 많은 선거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분위기와 맞물려 코로나 감염 걱정으로 적잖은 이가 투표장행을 망설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역대 최고치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한 것이다. 사전투표율이 이처럼 높게 나타나자, 일각에선 이번 총선 전체 투표율이 60%이상의 사상최대 투표율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를 보이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이에 대해 “유권자들이 코로나19에 따라 선거일보다 덜 붐비는 사전투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사전투표의 편의성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이것만의 때문일까. 오로지 코로나19 걱정으로 상대적으로 한산한 날을 택해 유권자의 권리를 행사한 것일까.

21대 총선 서울 종로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가 12일 종로구 구기동에서 유세 차량에 올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

아무튼 이처럼 높은 사전투표율을 보이자, 여야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정은 밝다. 사전투표가 많이 이뤄진다면 전체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고, 그러면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이런 자신감은 그동안의 통계와 관련이 크다.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진보진영에 유리하다는 게 통설이다. 실제로 16대 총선 이후 투표율이 55% 이상일땐 진보 성향 정당이 승리했고, 그 반대일땐 보수 성향 정당이 이겼다. 그 공식이 이번에도 유효할 것이라는 분석을 민주당은 내놓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정부와 집권당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라는 유권자의 표심이 사전투표 열기의 배경으로 본다”며 “미래통합당의 막판 막말 등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일찌감치 민주당을 택해 주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지도부는 겸손한 자세도 강조하고 있다. 막판 여권 인사의 ‘180석’ 낙관 발언이 나오면서 오히려 부메랑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인식하고, 이런 들뜬 분위기를 경계한 것이다. 이해찬 대표가 지난 12일 충남지역 지원 유세에서 “사전투표율이 27% 정도 됐는데 우리쪽도, 저쪽도 다 많이 참여한 것 같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투표에 많이 참여하게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미래통합당 해석은 정반대다. 사전투표 열기가 이토록 높은 것은 현정권 심판론이 사전투표에서 불붙고 있다는 방증이란 것이다. 통합당은 코로나19로 밀집된 투표장에 가기를 꺼리는 고령층과 샤이 보수가 사전투표에서부터 적극 참여한 것이 역대 최고치의 사전투표율을 보인 이유라고 자체 분석했다. 김종인 통합당 선대위원장은 총선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과거의 경우로 봐선 야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타났었기 때문에 비교적 고무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여야가 이처럼 사전투표를 놓고 자기쪽에 유리한 해석을 하고 있는 이유는 사전투표가 가진 ‘족집게’ 성격과 관련이 크다. 통상 사전투표 결과는 총선 전체 결과의 바로미터다. 20대 총선에서 수도권과 6대 광역시 175개 지역구 중 164개 지역구에서의 사전투표 결과는 최종 승패의 내용과 같았다. 사전투표의 결과가 해당 지역구 승패를 결정지은 것이 무려 93.7%라는 뜻이다. 여야 등 정치권에서 사전투표를 두고 서로 유리한 해석을 내놓으며 기선잡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런 사전투표 열기를 본투표장으로 연결시키겠다는 전략이 숨어 있는 것이다.

미래통합당 황교안(왼쪽),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무악동에서 열린 거리유세에서 논의하고 있다. [연합]

정치 전문가들의 판단은 유보적이다. 통상 55% 투표율 이상이면 진보가 유리하고 그 이하면 보수가 유리하다는 ‘투표의 고전정치학’이 이번에도 들어맞을지에 대해선 확신을 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번에는 코로나19로 인한 특수상황이 겹치다보니 사전투표율이 높아졌다는 것 하나만으로 특정 정당에 대한 유불리를 쉽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전투표에 많이 나서는 20대만 보더라도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적다”며 “과거와 달리 투표율과 정당 승리 간 상관관계가 희미해지고 있고, 사전투표에 나선 유권자들은 일찌감치 지지 정당을 정해둔 유권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전투표에서 ‘총선 격전지’에서 유난히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는 점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중앙선관위 집계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높은 사전투표율을 기록한 곳은 바로 ‘종로’다. 다 알다시피 종로는 이낙연 후보(전 국무총리)와 황교안 후보(통합당 대표)가 격돌하는 지역이다. 각각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대권주자로도 거론되는 인물이다. 종로는 현재 지역일꾼론을 내세우는 이 후보와 정권심판론을 외치는 황 후보의 대결구도로 뜨겁다. 종로 선거전은 향후 문재인정부의 국정드라이브와 보수진영의 향후 행보를 결정짓는 상징성이 매우 큰 곳이다. 이런 종로가 수도권 최고의 사전투표율을 보인 것은 ‘코로나19’로만 해석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종로만은 아니다. 서울의 핫한 격전지로 떠오른 동작을(민주당 이수진 후보 vs 통합당 나경원 후보), 광진을(민주당 고민정 후보 vs 통합당 오세훈 후보)도 사전투표율이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 보수 지지층들이 일찌감치 확정한 본인의 ‘표심’을 사전투표함에 넣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역대최고치를 둘러싼 사전투표율을 놓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사전투표자의 ‘본심’은 정확히 이틀후면 명확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선거 D-2. 이틀 남았다. 이틀 후면 ‘사전투표의 정치학’이 또다시 들어맞을지, 아니면 그 정치학을 새로 써야할지 판명될 것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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