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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본 오세훈

[헤럴드경제=이진용 기자]오세훈. 내가 그를 처음 본것은 그가 초선 서울시장으로 일하고 있었던 2008년 후반기였다. 서울시청 출입기자로 명을 받아 시청을 갔더니 소위 말하는 1진이라서 시장과 티타임을 가졌다. 키 크고 잘 생기고 말도 잘하고 똑똑까지 한 그 앞에 나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처음 공공기관을 출입하는 나로서는 서울시에서 하는 일조차 제대로 몰랐다. 그에게 어떤 질문도 던지지 못했다. 나 자신에 화가 날 정도였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했던 일은 많이 있었다. 그중 무능 공무원 3% 퇴출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찬반의 격렬한 정책 논란 끝에 그 정책은 결국 2010년 12월에 폐지됐다. 그리고 재선 후 무상급식 논란에 최전선에서 싸우다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하고 사퇴한다.

당시 오세훈은 서울시 공무원에게 인기를 얻지 못했었다. 젊은 나이에 시장이 돼 시장보다 나이 많은 국장들에게 고압적으로 해서 인심을 잃었고 창의 시정이라 해서 ‘상상오아시스’라는 것을 만들어 시 본청 뿐 아니라 산하기관까지 아이디어를 쥐어 짜 원성이 자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가까이 그를 지켜본 결과 그는 당장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는 미래비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는 개성상인이 구걸 온 걸인에게 개성상인이 밥을 주는 대신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보내듯 항상 서울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 즉 우리의 아들 딸들이 5년후, 10년후에 어떻게 살게 될까 고민하고 그들이 살기 좋은 서울을 만드는데 정책 초점을 뒀다. 그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비롯 세빛섬(당시 세빛둥둥섬), 한강르네상스, 디자인 거리 등 많은 일을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투자를 지속해 왔으며 그 혜택은 현 박원순 시장이 많이 봤다. 상암랜드마크 타워, 노들섬을 예술섬으로 만들겠다며 지으려고 했던 오페라 하우스등 많은 사업은 토목을 안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이 부임하고 결국 사라지게 됐다.

이런 랜드마크가 서울에 지어졌으면 서울이 지금 얼마나 더 달라졌을까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그가 한 일 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 한국을 세계화 시킨일 아니 한류의 시작을 만든일은 관광서울이다. 그는 2010년 정부의 외래관광객 유치 목표가 800만명이었을 당시 서울시는 1000만명으로 목표를 세우고 중국인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선 것. 당시만해도 중국에서 한국을 들어오려고 하면 비자를 받기가 만만치 않았다. 외교부에서는 불법 체류자가 늘어날수 있다며 중국인 입국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세훈의 생각은 달랐다. 수도권 규제에 따라 서울에 공장을 지을수도 없고 서울이 살수 있는 방법은 서비스 산업으로 보고 관광산업을 활성화 시키기 시작한 것. 당시 최항도 서울시 경쟁력강화본부장을 시켜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정책을 추진했다. 그결과 중국인 무비자 입국이 실현 되게 됐으며 사드사태가 난뒤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줄었지만 서울을 관광의 도시로 만드는 초석을 다졌다.

오세훈의 또다른 장점은 인사다.

안호상 전 국립극장 대표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예술의 전당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어느날 서울시에서 전화가 왔다고 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이번에 선발한다”며 “응시해 보면 어떻겠냐”는 것. 그는 “내정자 정해 놓고 하는 형식적인 공모에 응해서 들러리 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내정자가 없다”며 “한번 응시해보라고 해” 응시 했다. 응시후 다시 서울시에서 연락이 와 이번에는 시장을 만나보라고 했다는 것. 그는 내정된 것도 아닌데 만날 이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이후 그가 선임되고 오세훈 시장한테 임명장을 받는다. 오 시장은 그 자리에서 안호상 대표에게 왜 임명된지 아시죠?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대표님은 그 어떤곳에서도 연락이 온게 없었다”며 “소신껏 일해 달라”했다고 전했다.

시장 비서실장이 말해준 또 다른 일화다. 서울시장은 국무회의에 참석한다. 국무회의에 참석하면 장관들이 쪽지를 주곤 한다. 쪽지를 받는 것을 본 비서실장이 회의후 나오는 시장에게 쪽지를 달라고 하자 버렸다고 시장이 말했다고 전해 줬다. 단편적인 이야기지만 인사에 관한한 그어떤 청탁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서울시에서는 오세훈 전시장에 대해 잘했다 못했다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오세훈의 최대 단점은 스킨쉽 부족이다.

다른 말로 하면 융통성이 없다고나 할까? 서울시청 본청을 공사할때다. 시청 공사현장을 방문하고 임시 청사로 쓰고 있던 별관으로 돌아가던 중 한 여성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 들었다. 헤칠 의도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시장도 당황했지만 주위의 공무원들은 더 당황해 황급히 그 여성을 막아섰다. 그리고 오세훈 시장은 그 여성을 돌보지 않고 시청으로 사라졌다. 아마 박원순 시장 같았으면 공무원을 제지하고 그 여성의 사연을 들었을 것이다.

의전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단점으로 지적되곤 했다. 박원순 시장과 해외 출장을 가면 박시장은 거의 대부분 기자들을 비롯 공무원들과 동선을 같이한다. 충분히 VIP 대접을 받으면서 줄서지 않아도 되지만 박시장은 일행과 함께 여정을 함께 했다. 그러나 오 전시장은 대부분 VIP대우를 받으며 동선을 따로해 “젊은 사람이 너무 의전을 따진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가 서울시장직을 내려 놓게된 무상급식이 지금은 무상복지로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그러자 일부 더불어민주당 출신 단체장들도 무상복지가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며 정부차원에서 국가 능력에 맞게 콘트롤 해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무상복지 확대는 지금도 논란 중이다. 정부가 재정이 넉넉해 무상복지를 실시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난해 국가 부채가 1743조 6000억원에 달한다. 국가 재정이 아슬하다. 빚내서 주는 복지 비용은 결국 우리 아들 딸들이 갚아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괘는 것이다.

오세훈은 이런 것을 예상하고 선별적 무상급식을 추진했다가 주민투표에서 패한뒤 서울시장직을 ‘용감하게’ 던져 버려 한국 정치지형을 바꾼 원죄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본 그는 투명하고 깨끗한데다 미래비전까지 갖췄다는 것이다. 지금 비록 작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선관위에서 고발당한 상태이지만 그가 만든 법이 정치자금법이다.

3년전 대학로에서 오세훈 전시장을 우연히 만났다. 몇년간 해외에서 봉사를 하고 종로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시고 40대 초반 서울시장을 맡아 정책을 추진하면서 경직됐던 인간성이 많이 유연해 졌음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가 이제는 훨씬 성숙해 졌길바라며 ‘우리보다는 우리의 아이들이 잘살수 있는 한국’을 만들 준비가 됐길 바란다.

jycaf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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