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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00년전 경주엔 수세식 화장실 있었다…동궁월지 조사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경주의 동궁과 월지는 ‘임해전(臨海殿)’이라고도 불린다. 외국의 정치,종교,경제 분야 거물급 손님들이 지금의 울산이나 감포 등 동해바다로 들어오는데, 먼거리에 현장 마중까지는 못갔지만 바닷가 마중에 임하는 마음까지 담아 극진히 동궁에서 모시겠다는 뜻이다.

기러기 나는 연못이라는 뜻의 ‘안압지’는 일제가 언제든 훼손할 목적으로 비하해서 붙인 이름이고, 실제 이 근처 철도 공사때문에 이곳이 훼손되기도 했다. 현재 보여지는 동궁월지의 영역은 크게 축소된 형태이다.

신라-발해가 양립하던 남북국 시대, 남국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세계 5대 도시로 꼽힐 정도로 국제교류가 많았고, 외국 손님을 응접하는 곳으로도 쓰인 동궁월지에 남겨진 유물로 미뤄 당대 최고의 첨단기술,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풍광을 지닌 곳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이 1일 공개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남쪽 29호 건물지는 물로 오물을 배출하는 복합형 수세식 화장실로 추정되는 유적이 발견돼 관심을 모았다.

그동안 경주지역에서는 불국사에서 변기형 석조물을 발견한 적이 있었으나 고대 화장실 구조와 형태를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2017년에 발굴된 수세식 화장실은 쪼그려 앉을 수 있는 판석형 석조물, 타원형 구멍이 뚫린 좌변기 형태의 변기형 석조물, 오물 배출이 쉽도록 기울어진 암거(暗渠)배수시설 등을 갖췄다.

현대의 수세식 화장실과도 형태가 비슷해 고대 화장실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암거(暗渠)시설이란 지하에 고랑을 파서 물을 빼는 구조물을 말한다.

동궁월지의 수세식 화장실
동궁월지의 수세식 화장실 일대 유구

노래없이 춤 추기, 술잔 한 번에 다 비우고 크게 웃기,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도 참고 가만 있기, 간지러움을 태워도 참기, 시 한수 읊기 등 주령구를 던져 나오는 면에 제시된 규칙에 따라 다양한 놀이를 즐긴 문화 콘텐츠로도 유명한 곳이 바로 동궁월지이다.

여러나라 왕족-귀족-대상단의 우두머리들이 이곳에서 여흥을 즐길 때, 동해안으로 입국해 신라 귀화를 결심한 처용 처럼, 글로벌 여행자들와 서라벌의 선남선녀들은 황룡사 주변 번화가에서 어울렸을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경주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 경북 경주시 인왕동 소재) 북동편 ‘가’ 지구의 발굴조사 성과를 담은 『경주 동궁과 월지 Ⅲ 발굴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74년(문무왕 14년) 2월, 왕궁 안에 연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었다고 하며, 679년(문무왕 19년) 8월에는 동궁을 지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또한, 동궁 소속 관청 가운데 월지(月池)라는 명칭이 들어간 관청이 있어 동궁과 연못(월지)이 밀접하게 관련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경주 동궁과 월지’는 1975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 전신) 경주고적발굴조사단이 발굴을 맡아 조사했으며, 3년 후인 1978년 발굴조사 보고서를 통해 이곳에서 발굴한 인공 연못과 주변 건물지, 그리고 3만여 점의 유물을 소개한 바 있다.

동궁월지에서 발굴된 유물. 연화수막새(왼쪽)은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두루 발견되는데, 국제교류가 왕성했음을 보여준다.

‘가’ 지구는 약 6500㎡ 면적으로, 월지 북동쪽으로 지나가는 동해남부선 철로 북쪽 공간에 해당한다. 남북 담장을 중심으로 2기의 대형 적심 건물지와 깊이 10m가량의 대형 우물, 창고시설로 추정되는 줄기초 건물지 등이 발굴된 곳이다. 줄기초란 좁고 길게 연달아 도랑 모양으로 축조한 벽·기둥 밑의 기초를 말한다.

동궁월지에서 발견된 고인골

‘가’지구에서 나온 고인골(古人骨)의 DNA(디엔에이) 조사도 벌였으며, 사슴, 개, 소, 남생이, 상어 등의 뼈와 밤나무, 복사나무, 잣나무, 참외 씨앗 등의 유체 조사도 했다고 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중 고인골 분석을 통해서 당시 살았던 사람들이 벼, 보리, 콩 등의 작물과 단백질을 얻기 위해 소, 개, 사슴 등을 섭취했던 결과를 확인하면서 유적 인근에 살았던 사람들의 식생활 자료도 확보한 바 있다. 또한, 동·식물유체 분석을 통해 인근에 서식하던 동물들과 소나무 숲으로 이뤄진 주변 식생(植生) 등도 추정할 수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올해부터 동궁과 월지 ‘나’지구 발굴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 보고서는 문화재청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누리집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동궁월지의 석양 [경주시청 제공/박정란 작가]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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