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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도쿄올림픽 1년 연기, 아베의 ‘속보이는 도박’ 시작됐다
‘도쿄올림픽 내년 7월23일 개최’ 결국 이끌어내
아베 임기 내년 9월…임기內 개최에 강한 의욕
임기내 올림픽 성공시켜 권력 연장 노리는 듯
‘개헌에 대한 집착’도 도쿄올림픽 연기의 배경
하지만 당장은 코로나19와 싸워야 하는 처지
아베만의 ‘뻔한 베팅’ 성공할지 실패할지 주목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2일 자위대 간부 양성학교인 방위대 졸업식에서 훈시하고 있다. 아베 일본 총리는 이날 “대원들이 높은 사기 속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개헌 추진 의욕을 드러냈다. [연합]

지난 20일 일본에 도착한 도쿄올림픽 성화는 개막식 근처에도 가지 못한채 꺼져버렸다. 그 성화는 내년 이맘때쯤 다시 일본 전역을 돌게 될 것이다. 도쿄올림픽이 1년 정도 연기됐기 때문이다. 당초 도쿄올림픽은 오는 7월 24일에 개막해 8월 9일 폐막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전세계에 들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정상 개최가 힘들게 됐다. 이에 일본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전격적으로 1년정도 연기를 결정했고, 결국 내년 7월 23일에 개막해 8월 8일 폐막키로 재조정한 것이다.

31일 외신에 따르면, 모리 요시로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전날 저녁 기자회견을 갖고 “IOC와 1년 정도 연기하기로 했던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내년 7월 23일에 여는 것으로 합의했다”며 날짜를 못박았다. 모리 위원장은 새 일정에 대해 IOC가 임시 이사회를 열어 승인했다고 덧붙였다. 이로써 코로나19 앞에서 도쿄올림픽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따라다녔던 숱한 추측의 말들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일본이 염두에 둔 도쿄올림픽 시나리오는 강행, 무관중 대회 개최, 연기 세가지였다. ‘취소’는 아예 처음부터 생각지 않았다. 코로나19 초기때만해도 일본은 “도쿄올림픽 연기는 없다”고 강행하겠다고 했고, 코로나19가 확산세에 놓였을때는 무관중 대회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뉘앙스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각 나라마다 확진자 수 증가는 물론 사망자 수까지 급증하는 동시에 일본의 상태도 믿을 수 없다며 보이코트를 속속 결정하면서 일본 역시 연기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연기의 시기였고, 그렇다면 언제 어느날로 연기하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깊숙이 개입한 것이다.

올림픽은 페어플레이를 숭상하는 전세계 스포츠 잔치다. 올림픽 정신은 어디까지나 ‘공정한 스포츠 경쟁’에 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 올림픽엔 정치적인 색깔이 물들여져왔다. 도쿄올림픽 역시 순수한 스포츠대회가 아닌 정치적 행사가 다분하다는 시각이 외신을 통해 계속 제기돼왔다. 아베 정권이 도쿄올림픽을 집권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다루고 있다는 분석은 이래서 뒤따랐다.

당초 도쿄올림픽이 연기된다면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르기에 아예 2년뒤 쯤으로 미루는 게 낫다는 의견도 일본이나 IOC 측에서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아베 총리는 ‘내년 7월’ 연기를 이끌어냈다. 도쿄올림픽을 내년 7월 23일로 연기한 것은 아베 총리의 정치적 구상과 관련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내년 9월에 끝나는데, 올림픽 연기 시점이 바로 임기 만료 코 앞이다. 임기 내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이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이끌어낸뒤 임기를 연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즉, 올림픽을 기반으로 장기집권을 시도하려 한다는 것이다.

2020 도쿄올림픽 성화를 실은 특별수송기가 지난 20일 미야기현의 항공자위대 마쓰시마 기지에 착륙하자 지역 주민들이 일장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성화는 개막식 근처도 못가고 꺼지게 됐다. [연합]

개헌에 대한 조바심도 그가 임기내 올림픽 개최에 집착한 이유로 거론된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임기 내에 개헌을 이루고 싶다”는 뜻을 강조해왔다. 아베 총리는 최근에도 개헌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 22일 자위대 간부 양성학교인 방위대 졸업식에서 훈시를 통해 “대원들이 높은 사기 속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자위대를 일본 밖으로 뻗게 하고 싶다는 개헌 추진의 의욕을 다시금 표출한 것이다. 결국 임기내 올림픽 성공 개최로 인기몰이를 함으로써 집권 연장과 동시에 개헌의 마침표를 찍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의중이라는 것이다.

이런 아베 총리의 의도는 모리 위원장과의 지난 24일 만남에서 확인됐다. 모리 위원장은 총리를 지냈으니 ‘선배 총리’인 셈이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이 만남에서 아베 총리는 ‘IOC에 도쿄올림픽 1년 정도 연기를 제안하겠다’는 뜻을 모리 위원장에게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모리 위원장은 “만약 1년 뒤에도 올림픽이 개최되지 못하면 정치적으로 많이 몰리게 된다”며 “2년 연기하자는 의견도 있다”고 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내년까지도 계속되면 도쿄올림픽 자체가 완전 취소될수도 있기에 신중을 기하자는 뜻이었다. 1년 연기한 도쿄올림픽이 그때도 치러지지 못하면 아베 총리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면서 정권이 흔들릴수 있다는 게 모리 위원장의 우려였다고 마이니치는 분석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백신 개발이 진전되고 있다고 설명했고, ‘1년 연기’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임기 전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에 집착했다는 의미다. 모리 위원장은 ‘1년 연기’로 결론이 난 이후 주변에 “총리가 도박에 나선 것이다. 잘 되면 좋지만…”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려를 표한 것이다.

사실 내년 봄께로 도쿄올림픽을 연기하는 안도 앞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봄에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진다면 아베 총리로선 더이상 좋은 시나리오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하면 내년 봄 유치는 자신이 없기에 내년 7월로의 연기를 아베가 밀어부쳤다는 게 일본 현지의 분석이다.

‘도코올림픽 1년 연기’를 관철시킨 아베 총리의 전략적인 행보도 새삼 화제다.

2020 도쿄올림픽 개최 1년 연기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진천선수촌이 휴촌에 들어간 지난 27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 웰컴센터 앞에서 카라테 종목 선수들이 퇴촌하고 있다. [연합]

올림픽 강행을 외쳤던 아베 총리는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자, 자연스럽게 연기를 유도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지난 17일 주요 7개국(G7) 화상 정상회의를 끝낸후 기자들과 만나 “인류가 코로나19를 이겨낸 증거로 도쿄올림픽을 완전한 형태로 실현하겠다고 표명했고 G7 정상들의 지지를 얻었다”고 했다. ‘완전한 형태’라는 멘트가 시선을 끌었다. “올림픽을 예정대로 개최하겠다”고 했던 그가 여기서 ‘완전한 형태’라는 멘트를 내놓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연기론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언론 분석도 “아베 총리가 도쿄올림픽 취소라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면서 연기로 가기 위한 군불때기용으로 ‘완전한 형태’ 발언을 내놨다”는 것이었다.

아베 총리로선 일본 국민여론을 수용하는 결단을 내렸다는 모습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과 민영방송 TV도쿄가 지난 27∼29일 일본의 만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쿄올림픽을 1년 정도 연기하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IOC와 합의한 것을 놓고 응답자의 87%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다.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반응은 8%였다. 연기론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 것이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1년 연기’에 자신을 얻었고, ‘내년 7월 23일 개최’라는 날짜까지 얻어냈다는 것이다.

암튼 아베 총리는 도쿄올림픽 1년 연기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도박을 감행했다. 본인만이 아는 베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동안 올림픽에 관한한 그의 언행을 감안하면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코로나19 사태의 향후 흐름일 것이다.

한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지난 30일 하루동안 최소 72명의 코로나19 신규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로써 일본에서 감염이 확인된 사람은 1965명(공항 검역 단계 확인자 등 포함)으로 늘어났다. 크루즈 유람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승선 중 감염된 712명을 더한다면 일본 내 총 감염자는 2677명이다. 현재까지 사망자는 국내 감염자 59명과 유람선 승선자 11명 등 총 70명으로 집계됐다.

아베는 1년간의 위험한 도박에 머리를 싸매야 하지만, 당장은 코로나19와 사생결투를 벌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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