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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장차관 급여 30% 반납, 왼손 모르게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정부, 장·차관 이상 월급 반납 결정 발표 이후
한수원 등 공기업 ‘자발적인 반납’ 동참 분위기
“코로나19로 위기빠진 지역경제 살리자” 물결
“어려운 국민과 고통분담 취지” 지자체도 가세
다만 어디까지나 강제 아닌 자발성에 무게둬야
일각 “정부 쇼” 비판에도 분명히 의미있는 흐름
정세균 국무총리가 휴일인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해 열린 코로나19 비상국무위원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을 비롯한 본부장급 임원들이 급여 30%를 반납키로 했다고 한다. 이들은 앞으로 4개월간 월급의 30%를 내놓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과 고통을 분담하자는 차원에서다. 이들이 반납한 돈은 피폐화된 지역경제 살리기와 취약계층 지원에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1000여명에 달하는 처실장급 및 부장급 이상도 일정 범위 내에서 4개월간 임금을 반납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의 반납 금액은 10~30%선으로, 개인의 자율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 1직급에 해당하는 처실장급은 100여명 정도, 2직급에 해당하는 부장급은 900명 정도다. 한수원 직원이 총 1만20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작지않은 비율이다.

한수원 간부들이 코로나19 고통 분담 차원에서 일정부분 월급을 내놓기로 했다는 소식에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한수원 최고층이야 그렇다고 해도 900여명에 달하는 부장급 간부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한수원 역시 코로나19 확산세로 경영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고, 게다가 문재인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으로 인해 영업환경이 좋지 않기에 일각에서 급여 반납에 이견이 있지 않을까 했다. 평소 잘 아는 부장급 지인은 “급여 반납 공감대가 형성됐고, 나 역시 자발적으로 참여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울진 등 한수원이 위치한 지역경제의 실상이 정말 참담하다”며 “식당 등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이 특히 힘들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다른 부장급은 “한수원이 위치한 지역에서 가장 큰 기업이 바로 우리 회사”라며 “책임감을 갖고 지역경제 살리기에 보탬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그는 “월급을 내놓기로 한 이들은 현재로선 부장급 이상인데, 차장급이나 이하 직원들도 ‘소액이지만 나도 반납에 참여하면 안되겠나’라고 하는 이도 있더라”고 귀띔했다.

앞서 정부는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들이 앞으로 4개월간 급여 30%를 반납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고통분담에 솔선수범하겠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지난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비상 국무위원 워크숍을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24일 오전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지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이 자리엔 국무위원들 뿐만 아니라 금융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식품의약품안전처·인사혁신처·경찰청 등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참여하는 기관의 기관장들이 함께 했다. 거의 모든 정부 부처 수장이 모여 월급 일부를 내놓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여기에서 “국민과 고통을 함께한다”는 것에 공감대를 이뤘고, 방법론을 찾다가 급여 반납을 결정했다고 한다. 반납은 당장 이달 급여부터 적용된다. 장·차관급 이상 공무원은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포함해 모두 140여명으로, 월 반납액은 4억62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엄청난 돈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위기 극복책으로서의 상징성은 충분해 보인다.

내가 에너지 공기업인 한수원 간부들의 급여 반납에 주목한 것은 이같은 정부 결정에 영향을 받아 ‘등 떠밀려’ 동참할 수 밖에 없다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조성됐고, 그 속에 혹시 불만을 가진 이는 없을까 하는 것을 알고싶어서였다. 900명에 일일이 전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자세한 것은 알수 없는 것이지만, 대체로 지인들 입을 통해 나온 말은 공기업 간부로서의 책임감과 국민 한사람으로서의 자발적인 고통분담이었다. 박수를 보낼 일이다.

자발적인 동참임을 전제로 전제로, 박수를 받아야할 곳은 한수원 만은 아니다. 앞서 한국지역난방공사는 공기업 처음으로 임원급 연봉의 10%를 반납키로 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소상공인이 포함된 업무용 사용자와 유치원, 어린이집의 열 요금을 3개월 분할해 납부하는 방안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연구개발(R&D) 전담기관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도 기관장의 급여 30%를 4개월간 반납키로 했다. 외교부 산하 코이카(KOICA)는 앞서 이사장과 임원 급여 30%를 4개월간 내놓기로 한 바 있다. 이렇듯 정부가 장·차관 급여 반납 계획을 내놓은 이후 각 부처 산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을 중심으로 동참의 물결이 점점 더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지자체 단체장과 지역 공무원들도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대구·경북 지자체장에 이어 교육감들도 줄을 이어 월급 반납에 참여했고, 시장 군수는 물론 과장급 이상의 지역 공무원들도 월급을 일정부분 내놓기로 했다. 가히 전사회적으로 일종의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월급 기부’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장·차관 월급 반납을 결정한 자리에서 정부 관계자는 “일단 오늘은 장·차관급 이상 고위 공무원들이 급여를 반납하기로 했지만, 모든 공직사회가 참여할 가능성이 큰데 관련 방안을 신속히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공직사회 전체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는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서울특별시구청장협의회가 서울 25개 모든 자치구 구청장이 3~6월 4개월간 월급 30%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에 쓰기로 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 17일 정원오 성동구청장 발의로 서울시청에서 ‘코로나19 재난극복을 위한 긴급재정지원 실시 촉구문’을 발표하고 있는 김영종 종로구청장. [연합]

당장 네티즌 일각에선 비판이 흘러나왔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포퓰리즘 성격의 ‘쇼’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맬 때가 아니라 돈을 써야 하는 때인데, 괜히 월급 삭감 효과가 생겨 내수 진작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 “결국 임금 삭감인데, 더 경기침체를 가져오지 않나”라는 시각이 대표적이었다. 월급액이 상당한 고위직들이야 상관없지만, 일반 하위직까지 이런 흐름이 번지면 곤란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저는 말단직인데, 월급 깎이면 정말 생활이 안됩니다. 저 까지 강요하진 마세요”라는 댓글도 나왔다.

최근 지자체에서 일고 있는 재난기본소득 지급 흐름과 역행한다는 점도 거론됐다. “한쪽에선 재난기본소득을 주며 돈을 쓰라고 하고, 다른 쪽에선 월급을 자발적으로 깎자고 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돈 쓰라고 재난소득 준다면서 급여는 반납하라고? 이해불가 정책입니다. 쇼라는 생각 밖에 안든다”는 댓글에서 이런 기류가 감지됐다.

선(善)한 정책이 선(善)한 결과를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사회지도층이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것은 칭찬할 만 하지만, 이를 전국민에 보편화 시키면 국민 일부가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수 있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25년 경력의 공무원 친구 중 하나는 “기관장이 정부 눈치를 보면서 정부에 칭찬을 받고자 ‘우리 모두 월급을 반납하자’고 하면 ‘안된다’고 할 수 있는 공무원이 몇이 되겠는가”라며 “나야 ‘나랏밥’을 오래 먹었으니 당연히 기관장 사심(?)과 상관없이 동참하겠지만, 말단직 공무원의 경우엔 강제로 참여하는 분위기가 되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는 기류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성경의 가르침이다. 여러가지 뜻이 있겠지만, 남에게 ‘알리기 위한 선행’을 경계한 말씀일게다. 정부가 장·차관 급여 반납을 결정하면서 그 내용을 곧바로 발표하지 않고, 한동안 국민에게 모르게 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세상엔 비밀이 없다. 그 사실이 나중에 자연스럽게 국민에 알려지고, 그 당위성이 긍정 이슈로 불붙었다면 그 파급력은 지금보다 훨씬 자발적인 흐름을 타면서 더욱 커졌을 것으로 본다. ‘옥에 티’는 이럴때 하는 말일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장관님, 차관님들이 코로나19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월급을 내놓겠다는 것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위기극복 DNA가 있다. 한수원 등의 ‘월급 내놓기’ 자발적 동참은 이런 DNA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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