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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친서의 정치학

‘친서·親書·autograph letter.’

친서는 국가 간 정상들이 주고받는 편지로 국서(國書)라고도 한다. 외교적 관례상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는다. 친서는 느리고 손이 많이 가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인다. 그만큼 정성이 담겼다는 이야기다.

친서 중 가장 드라마틱한 성공사례로는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가 꼽힌다. 친서 교환으로 핵전쟁을 막은 역사적 사건으로 알려졌다. 당시 소련이 미국의 코앞인 쿠바에 핵미사일 배치한 것이 드러나면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쿠바 해상 봉쇄 조치를 내리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에 직면했다. 파국을 막은 것은 은밀히 주고받은 ‘친서’라고 한다. 2주 만에 미국이 해상 봉쇄를 푸는 조건으로 소련은 쿠바 미사일 기지를 철수했다. 케네디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친서를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막후 협상을 벌여 전쟁을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이름으로 한밤중에 원색적인 대남 비난을 퍼부은 바로 이튿날인 지난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로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위로와 응원의 친서를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날 감사의 뜻을 담은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남북 정상의 친서는 올해 들어선 처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날로그 친서 외교는 적어도 남북, 북미 관계에서는 ‘첨단 외교 방식’으로 통했다. 친서교환 방식의 소통은 김 위원장이 이미 2018년부터 대미 정상 외교에서도 즐겨 사용한 외교적 행위다. 2018년 남북 및 북미 관계는 김 위원장의 친서로 시작해 친서로 마무리된 해로 기록됐다. 김 위원장은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 김여정 제1부부장을 보내 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이후 경색국면이던 남북관계에 화색이 돌면서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도 친서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것은 문 대통령 취임 후 이번이 일곱 번째이며 네 차례는 남북관계가 절정을 달했던 2018년에 집중됐다. 그때마다 대화의 주요 변곡점을 만든 ‘톱 다운’ 방식의 돌파구가 마련됐다.

발언 주체는 달라도 비난 성명 하루 만에 친서를 보낸 것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또한 김 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의 엇갈린 대응은 의도적인 게 분명해 보인다. 한 언론은 친서를 보낸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한 협력을 제안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친서의 전달 시기를 놓고 평가와 해석은 다르지만, 일단 정상 간 친서 교환 자체가 큰 의미를 지닌다. 현재 상황이 어떻든 간에 정상 간 우호적인 메시지가 오갔다는 사실과,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확인했다는 점은 기대감을 낳게 한다. 물론 지금 단계에서 ‘김정은 친서’를 바로 남북관계 청신호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 간 신뢰가 여전함을 보여준 만큼 언제든 관계를 복원할 기반은 유지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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