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제일주의’에도 마스크만은 예외
본래 가격에 시간·노력 더해지며 가치↑
아이돌 등 응원 가수 스트리밍 등에도 활용
“재난기본소득, 차라리 마스크로 달라” 얘기도
[헤럴드경제=윤호 기자, 김빛나·박지영 수습기자] “옆집에 마스크를 선물했더니, 삼겹살을 답례로 받았다. 교도소에서 담배를 현금처럼 통용하듯 ‘마스크 코인’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가 귀해지면서 ‘마스크 화폐 시대’가 도래했다. 주식, 부동산, 금, 암호화 자산 등이 모조리 폭락하면서 ‘현금제일주의’가 번지고 있지만, 마스크만은 예외다. 마스크는 이를 구입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까지 반영돼 기본 가격(공적 마스크·1500원)보다 ‘비싼 대우’를 받고 있다.
17일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최근 ‘마스크를 기축 통화로 한’ 물물 교환 관련 게시 글에는 1~5분 이내 댓글이 달리며 빠르게 거래가 성사되고 있다. 심지어 마스크 50장이면 중고 명품 가방을 살 수 있다. 판매자가 물건값을 적는 공간에 마스크 개수를 써 “현금 대신 마스크만 받는다”는 판매자도 있다.
지난 15일 전남 순천·광양 지역의 한 맘카페에서는 본인이 가진 마스크 5매와 양파·청양고추를 교환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마스크에는 KF 마크가 없었지만,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친정 엄마에게 드리고 싶다’는 댓글이 달렸다. 이외 ‘달걀 4알을 KF94 마스크 1매와 바꾸고 싶다’, ‘노래방 새우깡을 마스크 4장과 바꾸고 싶다’는 등 식품, 장난감, 아동복, 생활용품 등을 마스크와 교환하고 싶다는 게시 글이 줄을 이었다.
이미 마스크를 확보한 소비자들은 1장에 1500원 이상의 가치를 누리기도 한다. 세종 지역의 한 맘카페에서는 요가 매트와 1㎏ 아령을 대형 마스크 1장과 교환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왔고, 올리자마자 ‘거래하고 싶다’, ‘앞 사람이 불발되면 연락을 달라’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KF94 마스크의 경우 가습기 1대를 내놓고 ‘받고 싶다’는 글도 있었다.
마스크는 10~20대의 ‘아이돌 팬질’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가수 앨범에 들어 있는 구하기 힘든 사진을 마스크와 교환하거나, ‘합법적 음원 사재기’로 평가받는 ‘응원 가수 스트리밍’에 동참하면 추첨해 마스크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미성년자용 소형 마스크와 대형 마스크를 교환하는 경우도 많다. 마스크 사이즈에 따른 가격 차이를 고려해 교환 비율이 결정되는데, 대개 ‘대형 마스크 20장=소형 마스크 25장’ 수준이다.
본 상품을 구매하면 마스크를 증정하는 ‘마스크 마케팅’도 활발하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은 본 상품보다 마스크 지급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노골적인 ‘마스크 끼워팔기’에 제동을 걸면서 면 마스크를 지급하거나 공동 구매 사은품으로 활용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공정위는 시장 지배력이 있는 대형 유통업체와 오픈마켓의 경우 수천~수만개의 매장이 입점해 있어 마스크 수량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단속하는 만큼, 개별 매장이나 개인 간 거래 시 증정까지 일일이 단속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날 경기 평택의 한 대형 장난감 가게에서는 구매 시 마스크를 증정하는 ‘오픈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패션 면 마스크 1300장을 확보해 소진 시까지 제공하는 방식이다. 대전의 한 커피 프랜차이즈업체 매장에서는 7000원 이상 구매시 덴탈 마스크를, 1만5000원 이상 구매시 KF94 마스크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이 업체는 전국 각지에서 커피 구매시 마스크를 증정하거나 절반 가격(800원)에 판매하는 마케팅을 벌였으나, 재고를 소진한 데다 최근 마스크 수급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대부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매해 나오던 이모(35) 씨는 “최근 김경수 경남사,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 제안해 정부가 돈을 지원할 수 있다는데, 차라리 그만큼 마스크로 주면 좋겠다”며 “마스크는 돈은 물론 시간과 노력까지 들여야 해 가치가 더 높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이 올라가는 것처럼 수요 공급 원리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라며 “마스크 가치가 올라가니 예전과 달리 비싼 물건만큼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마스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희소성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 공급이 원활하게 이어지면 이 같은 현상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