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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여성과 달리 전통 여인들은 근대를 어떻게 경험했나

“읍네에서는 수만금 부자의 재물을 빼앗고 집에다가 불을 놓고 도망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위급한 상황에 다 버리고 부인네들이 총각 모양을 하고 손목을 잡고 도망을 하였다. ”“서양 사람이 여인을 볼 때마다 욕을 보이니, 평민 집은 얼마인지 수를 모르지만 사대부 황이천집 부인과 동네 양반 심선달 부인들이 욕을 보았다고 하니”

1866년 병인양요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병인양란록’의 내용이다. 강화도의 양반가 여인이 전통과 서구의 근대가 처음으로 폭력적으로 부딪힌 전쟁을 직접 겪고 쓴 한글일기다.

동굴과 섬을 전전하며 나룻배에 의지해 풍랑과 해초에 걸려 아슬아슬하게 황해도 평산으로 피난을 떠난 여인은 근대의 서막에서 전쟁의 참상, 혼돈과 함께 신기한 근대문명을 함께 목도하게 된다.

‘신작로에 선 조선 여성’(소명출판)은 근대화 과정의 또 다른 여성들에 주목한 책이다. 근대 모더니티의 상징인 신여성과 달리 여전히 전통의 틀에 있지만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책은 양반가 여성부터, 중인, 하층 여성 등 다양한 여성들이 근대의 변화를 어떻게 경험하고 기록했는지, 신문, 잡지, 유성기 등 근대 매체는 어떻게 여성을 다뤘는지 살폈다.

고려대 정우봉 교수는 예의 한글일기 ‘병인양란록’을 소개하며, 이 일기의 작가가 지금까지 경주김씨로 잘못 알려져 있던 것을 족보와 승정원일기를 검토해 나주임씨임을 처음 밝혀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근대교욱을 받지 못한 ‘구여성’ 강릉 김씨의 서울 여행기 ‘경성유록’도 눈길을 끈다. 처음 본 궁궐과 신문명으로 옷을 갈아입은 종로 거리와 병원, 상점들, 우미관과 명동성당, 남대문, 전자를 타 본 경험 등을 적으며, “시골 안목에 기가 막혀 말 할 수 없을 정도”라고 감탄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특히 여성이 학교에 다니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며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 게 인상적이다.

그런가하면 일제강점기 만주망명가사도 전통과 근대 사이 의식의 전환을 갖게 된 여성이 투영돼 있다. 경술국치로 살던 곳을 떠나 만주로 망명하는 대열에 섰던 독립운동가 여성들이다. 그 중 안동 명문대가 김대략의 문중 며느리 이호성은 김대략이 문중을 이끌고 만주로 떠날 때,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위모사’를 썼다. 호방한 기개가 넘치는 글을 통해 작가는 남녀가 평등한 시대가 되어 깊은 규방에만 있었던 부인들도 장옷을 벗어 던지고 남자와 마찬가지로 자기 분수대로 사업을 할 수 있다며,당차게 남녀평등론을 펼친다.

책은 전근대라는 말로 밀쳐졌던 전통적인 여성들 역시 근대의 또 다른 모습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한국고전여성문학회가 고전여성문학이라는 틀로 근대의 다층성에 다가가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학회지 등에 소개된 만큼 새롭게 발굴된 내용이 많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신작로에 선 조선 여성/한국고전여성문학회 편/소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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