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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정비사업 해임총회의 폐해와 극복 방안 - 나산하(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견제수단 통제장치가 권력 획득 위한 공격수단 변질
서면결의서의 재사용ㆍ위조등 만연 정비사업 걸림돌
해임총회 남용되지 않도록 제도 정비에 힘써야 할 때
나산하 변호사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들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는데, 그 중 정비사업 관계자들이 대표적으로 손꼽는 성공 요소는 바로 ‘신속한 사업의 완료’다. 사업이 장기화 하면 금융비용 등 각종의 부담이 증가하게 되고 규제 일변도의 정책도 지속되고 있어 ‘신속성 = 성공’이라는 공식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전국 대부분의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조합(추진위원회) 집행부의 장악을 위한 각종의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됨에 따라 사업의 신속성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 특히 분쟁의 주된 수단으로써 조합(추진위원회) 임원에 대한 해임총회가 활용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규율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조합 임원의 해임과 관련해서 통상의 경우와 달리 조합원 10분의 1 이상의 요구(발의)만으로도 조합원 총회를 소집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고, 이런 완화된 총회 소집 요건은 조합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추진위원회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해임총회에서 사용되는 ‘발의서’와 ‘서면결의서’ 양식에는 대부분 ‘총회가 연기되는 경우에도 재사용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어 조합의 집행부에 반대는 자들은 이를 악용해 해임총회를 분쟁 국면의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즉 소수의 조합원들이 발의서를 징구해 일단 해임총회의 공고를 하게 되면 그 총회의 전날까지 서면결의서를 충분히 받지 못했더라도 총회를 연기해 버리면 그만이고 그 이후에도 발의서와 서면결서를 재사용해 연기와 소집 공고를 거듭하면서 해임총회의 국면을 지속시킬 수 있다.

실제로 서울의 어느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소수의 반대파들이 임원 전원의 해임을 위한 총회를 소집하려다가 서면결의서의 수가 부족한 것으로 파악되자 곧바로 발의서와 서면결의서의 재사용을 주장하면서 총회를 연기했고 이후 연기된 총회에서도 위법하게 결의를 강행하려다가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받게 되자, 다시금 해임총회를 소집한 후 서면결의서 등의 재사용을 근거로 3회에 걸쳐 소집 공고와 연기를 거듭 반복하는 방식으로 해임총회의 대치 국면을 무려 1년 이상 유지했다. 결국 사업 지연으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해임총회의 소집권한을 남용하는 사례는 최근 하급심 판결에서 ‘임원의 해임과 관련해서는 특별히 해임사유가 요구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과 맞물려 더욱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런 해임총회의 남용은 조합 임원들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곤란하게 해 사업 추진에 심각한 장애가 된다. 또 법적 분쟁 상태의 지속으로 인한 혼란 증대, 조합원들 상호간의 반목으로 인한 사업 동력 상실, 사업지연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등 여러 문제를 야기하게 되고, 최악의 경우 사업 자체를 좌초시킬 정도로 중대한 위협요소가 되기도 한다. 조합원들의 임원 견제수단으로 마련된 예외적 통제장치가 일부 세력의 권력 획득을 위한 상시적 공격수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런 정비사업의 리스크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우선 조합원들 각자가 해임총회의 본질과 절차를 정확히 파악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해 해임총회가 남용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에따라 해임총회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게 서면결의서 등을 재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한다. 실무상 널리 사용되고 있는 표준 정관(운영규정)에는 발의서와 서면결의서의 재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아 조합이나 추진위원회가 정관(운영규정)의 개정 등을 통해서 이에 관한 사항을 분명히 규율해 둘 필요가 있다. 아울러 법원이나 관할 행정청도 해임총회 소집 권한의 남용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최근까지도 대부분의 하급심 판결은 서면결의서나 발의서에 ‘재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서면결의서 등의 재사용을 별다른 제한 없이 인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지나치게 형식 논리에 치우친 것으로서 장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재사용의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의사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법원이 해임총회의 소집권한이 남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폐해들을 외면함에 따라 정비사업 현장에서의 혼란이 법적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더욱 가중됐던 것이므로 해임총회가 본연의 기능과 목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법원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또 수사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수사기관은 해임총회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적인 행위를 엄단해 정비사업이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적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임총회가 공고되고 나면 서면결의서나 그 철회서의 위·변조 행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이에 대해서는 민원발생 등을 이유로 제대로 된 수사나 형사처벌이 이루어지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 보니 사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측에서는 과감한 범죄행위를 감행하고서라도 일단 해임결의의 외관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해임총회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불법행위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인식이 확립돼야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써 남용하는 사례가 줄어들 것이다.

정비사업은 국내 주택사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로서, 주거환경의 향상이라는 공익적 측면과 함께 수많은 이해관계인들의 재산권이 걸려 있는 중요한 사업이다. 정비사업의 성패는 단순히 개인적인 이익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런데 정비사업에서의 해임총회는 집행부의 감시와 견제를 위해 마련된 수단이라는 제도적 정당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해임총회의 남용이 정비사업의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해임총회의 발의 요건을 완화하는 입법이 이루어진 후 클린업시스템, 정보공개 등으로 내부 통제장치가 마련되고 사업의 투명성이 제고되는 등 많은 상황 변화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관련 제도와 의식은 예전 그대로인 것이다. 이제는 해임총회의 전통적인 순기능만을 바라볼 때가 아니라, 그 순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해석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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