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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文정부 ‘탈원전’에 깊은 적자 늪, 한전은 운다
한전, 지난해 영업적자 1조3566억원, 11년만에 최악
여름 덜 덥고 겨울 덜 추운 날씨에 신재생 확대 탓
무엇보다 탈원전정책으로 인한 비용증가가 큰 원인
코로나 장기화땐 공장가동률 줄어 적자폭 더 커질듯
국내대표 공기업 부실땐 글로벌신인도 하락 요인으로
‘영광의 한전’ 위상 추락→‘약골 기업’으로 가나 기로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6월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원전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밝혔다. [연합]

국내 대표 공기업 한국전력(한전)이 ‘부실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일단 최악의 영업적자를 냈다. 적자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이후 11년만에 최대치다. 1961년 설립한 이래 ‘강철체력’을 자랑하던 한전이 갑자기 ‘약골’로 변한 것이다. 장사야 하루이틀 하는 것이 아니니 적자는 날 수 있는 것이고, 얼마든지 만회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전 앞에 도사리고 있는 각종 악재로 인해 한전이 앞으로도 적자에서 탈출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한국 공기업 대표얼굴인 한전의 부침은 국민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글로벌 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각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2일 한전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달 28일 공시를 통해 2019년 연결기준으로 영업적자가 1조3566억원을 기록, 전년보다도 6.5배 이상 늘어났다고 밝혔다. 영업적자가 1조원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이는 2008년(2조7981억원)에 기록한 영업적자를 빼면 사상 최대규모의 적자다.

한전이 이렇게 대규모 적자를 낸 이유는 뭘까. 한전은 공식적으로 날씨와 비용 증가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예년에 비해 덜 덥고 덜 춥다보니 전기사용량이 줄고 그렇다보니 판매량이 1.1% 감소했다는 것이다. 반면 비용은 증가했다. 예를들어 전력산업 운영의 필수비용인 온실가스 배출권 비용은 무상할당량 축소로 인해 530억원에서 7095억원으로 급증했다. 미세먼지도 한전으로선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면서 석탄발전소 가동을 멈추거나 제한하는 조치로 인해 석탄 이용률이 감소(74.7%→70.7%)했다는 것이다. 한전의 전체적인 설명으로 보면 돈은 덜 벌었는데, 이렇듯 비용이 더 들어가다보니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

경제 전문가들은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고수가 한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문재인정부는 대선공약때부터 탈원전을 기치로 내걸었고, 그 기치를 사수하는데 요지부동이다. 한전은 공식적으로 “이번 실적과 탈원전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벙어리 냉가슴 앓듯’하는 한전의 입장일 뿐이고, 그 실상은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부의 탈원전정책을 따르다보니 한전으로선 큰 영업적자를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태양광이나 풍력 등 국가 에너지정책이 친환경 신재생 쪽으로 달려야하는 것은 틀리지 않지만, 현재 뚜렷한 신재생 청사진이 없는 상황에서 신재생만 강조하고 원전을 배척하는 흐름은 바람직 않다는 견해도 뒤따른다.

문재인정부는 출범초기부터 탈원전을 외치면서 신재생에너지 대체를 강조해왔다. 그러다보니 한전으로선 비교적 값싼 원전 보다는 상대적으로 발전 단가가 비싼 태양광이나 풍력 비중을 높일 수 밖에 없었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정책이 이런 흐름을 가속화시킨 것이다. 지난 2016년 태양광 등 신재생공급의무 비율은 3.5%였지만, RPS 강화 기조에 따라 지난해 6%까지 올랐다. 그러다보니 발전 비용이 상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면 원전 이용률은 같은 기간에 대폭 감소(79.7%→70.4%)했다. 전체적으로 전기생산 비용이 대폭 증가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관계자들이 최근 서울 서초구 한국전력 서초지사 건물 외벽에 호주 산불 현장에서 구조되는 코알라의 모습과 항의 메시지 등을 레이저빔으로 투사하는 기후행동을 펼치고 있다. [연합]

원전해체 비용 단가가 오른 것도 적자 폭을 키웠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원전 1호기당 해체비용은 2018년 7515억원에서 지난해 8129억원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의 고민이 더 커질수 밖에 없는 것은 이런 영업적자를 극복하기 위한 마땅한 히든카드가 없다는 점이다. 위기감이 한층 커지고 있는 코로나19사태도 한전으로선 초대형 악재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국산 부품을 조달해 제조업을 영위하는 곳 등은 코로나사태로 인해 공장가동률이 현저히 떨어질 게 명확해 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 한전으로선 또다른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독점’이라는 일각의 비판을 받아오긴 했지만, 전력수급 안정화를 기치로 달려온 한전의 위상은 더욱 추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뒤따르는 것이다.

한전의 전신은 1898년 설립한 한성전기회사로 볼 수 있다. 한전은 지난 1961년 3개 전력회사(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를 통합해 출발했다. 요즘같은 굴지의 대기업이 없던 시절, 한전은 대한민국 두메산골까지 전깃불을 밝혀주며 튼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70년대 수출한국을 표방한 정책에 따라 무역상사, 엔지니어업종이 인기를 끌기 전까지만해도 한전인은 최고의 직장맨으로 통했다. 웬만한 도시나 시골 동네 어른들이 ‘한전 총각이면 보지도 않고 딸을 준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탄탄한 직장이었다. 80년대 금융과 증권회사맨, 90년대 정보기술(IT)맨이 주가를 올렸고, 2000년대 이후 인기 직장 리스트는 수시로 바뀌었지만, 지금까지도 한전은 안정적인 회사로 꼽히며 취업생들이 들어가고 싶은 곳 중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이런 한전의 영광이 희석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전은 전력 생산과 공급망을 갖추며 출발했지만, 현재는 전기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공기업 매각 계획을 세웠고, 1999년 한전에서 발전부문을 분리했다. 당시 정부는 한전 노조의 파업 등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치는데 성공했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 및 남동발전 중부발전 등 6개 발전 자회사가 탄생한 것이다. 한전은 이들 발전 자회사를 100% 소유하고 있다. 한전의 영업실적이 이들 발전 자회사들과의 연결재무제표 상으로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전은 전력 구입과 송배전 업무만 담당한다. 발전 자회사가 생산한 전기를 사들여 공급하는 곳이 바로 한전이다. 한전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구도는 발전 자회사가 만든 전기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이다. 그런데 한수원 등의 발전단가가 상승하면서 전기를 예전보다 비싸게 구입할 수 밖에 없기에 경쟁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가 계속되면 원자력 등 발전단가가 계속 올라갈 수 밖에 없어 한전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사상 초유의 경영위기 앞에서 한전으로선 마지막으로 펼칠 수 밖에 없는 경영 특단책이 바로 ‘전기료 인상’이라는 말이 흘러 나온다. 한전은 이를 굳이 숨기지 않고 있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 중 전기요금 개편방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은 당연히 공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살펴봐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전기료 인상 요인은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라고 했다.

주목되는 것은 이번 한전의 대규모 적자와 관련해 현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탈원전정책이 여전히 고수되는가, 아니면 융통성있게 적용될 것인가에 시선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여의도 한국전력 남서울본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산업부 소관 공공기관 긴급대책 영상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현정부의 탈원전정책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탈원전 정책을 표방했다. 탈원전은 그러니 문재인정부의 공약이었다. 그러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6월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서 “신규 원전 건설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탈원전 정책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이후 야당과 경제계 일각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현정부는 계속해서 탈원전을 고집해왔다.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야당만 반대한 것은 아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같은 여당 인사 중 “오히려 원자력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친원전을 강조한 이도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본인의 ‘탈원전 신념’과 반대 개념의 말도 내놔 야당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탈원전 전도사’를 표방했던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한국이 처음으로 수출한 원전인 바라카 1호기 건설 완료 행사에 참석해 “우리 원전 기술의 우수성과 대한민국의 역량을 직접 눈으로 보니 자랑스럽다”고 했다. 국내에선 탈원전을 강조하면서 밖에 나가선 우리 원전기술을 칭찬하는 모습이 어색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문 대통령은 또 지난 2019년 2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인도 정상회담에서 모디 인도 총리가 “인도 7기 원전에 한국이 참여해달라”고 요청하자, “한국은 지난 40년 동안 독자적인 기술로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해왔는데, 인도가 원전을 건설한다면 한국의 업체들이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에 많은 기회를 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안에서는 원전 중단, 밖으로는 원전 수출을 표방한 것으로 이 역시 어색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에 당시 박맹우 자유한국당 의원(산자위)은 “우리 국민에게는 원전이 불안하다며 탈원전을 강행하고 인도에는 원전이야말로 경제성과 안정성이 완벽하다는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정부는 탈원전을 빨리 철회하라”고 요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처럼 한전의 옛 영광과 탈원전과 관련한 위상 추락의 전조, 현재의 적자의 늪을 살펴보면 여러가지 단상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한전 직원 하나는 “한전의 적자 확대와 그에 따른 위기탈출을 생각해본다면, 현정부 탈원전 기조의 변화없이는 전기요금 인상 같은 특별수단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한전의 향후 영업전략은 전기 소비자 중 하나인 나로서도 갑자기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사안이 돼버렸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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