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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 우리 영화 산업의 핵심을 찌르는 관점과 태도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영화 ‘기생충’ 제작진이 19일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기자 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봉준호 감독에게 빈부격차, 양극화 문제는 ‘설국열차’에서도 다뤘는데 왜 ‘기생충’에서 폭발력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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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때는 ‘괴물’이 한강변을 뛰고 ‘설국열차’는 미래의 기차가 나왔고 SF적인 게 많았다. ‘기생충’에는 그런 게 없다. 동시대적 얘기이고, 우리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현실에 기반한 톤, 그게 더 폭발력을 가질 수 있게 한 요인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 짐작할 뿐이다.”

CNN 기자도 이와 비숫한 질문을 했다. 기생충이 한국 사회 불균형에 대한 어떤 어두운 묘사를 하고 있는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 왜 한국관객들이 이 영화에 열렬히 지지했을까요?

“제가 항상 무슨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만들려고 하는 스토리의 어떤 본질이랄까 그런 걸 외면하는 건 싫었다. 이 스토리는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적인 면도 있지만 빈부격차의 현대사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씁쓸하고 쓰라린 면도 있다. 그 부분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그런 부분들을 정면돌파해야 되는 영화다. 그 부분을 관객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영화에 당의정이나 달콤한 데코레이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실정에 대해 솔직하게 그리려고 했다. 대중적인 측면에서 위험해 보일 수는 있어도 그게 이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다소 긴 대답을 그대로 옮긴 것은 봉 감독 자신이 ‘기생충’의 관점과 태도에 대해 자세히 처음으로 얘기했기 때문이다.

봉 감독은 “다행히도 한국에서도 1천만 명 이상의 관객분들이 호응을 해 주셨고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나 베트남에서나 지금 일본, 영국에서나 오스카 후광과 상관없이 저희가 오스카 노미네이션 되기 전에 이미 북미에서도 2500만 불 이상 외국어영화로서 역대급 기록을 써나가고 있었다. 그런 호응이 가장 큰 의미이자 기쁨이다“면서 “왜 그렇게들 호응을 여러 나라에서 관객들이 해 줬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시간적 거리를 두고 분석해 봐야 될 것 같다. 그것이 저의 업무는 아닌 것 같다. 평론가와 기자의 영역이다. 저는 이미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또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나가야 된다. 그게 제가 영화산업 위한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라고 특유의 겸손하고 유쾌한 화법을 이어나갔다.

봉준호 감독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두 가지를 합치는 능력이 있다. 이 부분은 영화산업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대한 봉 감독 지론도 들어볼만하다.

“한국영화산업 특유의 활기나 좋은 작품이 나오는 이유와 우려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럴 때는 ‘플란다스 개’ 얘기를 많이 한다. 만약 젊은 신인감독들이 이런 것이나 ‘기생충’을 가지고 왔을때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촬영이 가능할까? 제가 영화를 했던 20여년간 눈부신 발전이 있었지만 동시에 또 젊은 감독들이 뭔가 이상한 작품, 뭔가 좀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에는 뭔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재능 있는 친구들이 산업으로 흡수되기보다는 그냥 독립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독립영화와 메인스트림이 평행선을 달리는 게 안타깝다.”

우리 영화 산업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봉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을 찍었던 시절에는 양자가 서로 어떤 상호 침투 내지는 좋은 의미에서의 다이내믹한 충돌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런 활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봉 감독은 “80, 90년대 붐을 이루다 쇠퇴한 홍콩영화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영화))산업이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한다. 영화가 가진 리스크를 두려워 하지 말고, 이 도전을 산업이 껴안아야 한다. 요즘 훌륭한 독립영화들이 나오고 있는데, 결국은 산업과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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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뼈속까지 영화인, ‘뼈영맨’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그의 인생에는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는 만드는 것밖에 없다고 한다. 봉 감독은 몇몇 정치권에서 봉준호 생가 보존, 박물관을 만들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대해서는 “저도 기사를 봤는데 동상이랑 생가... 그냥 그런 얘기는 제가 죽은 후에 해 주셨으면 좋겠고. 그냥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그런 기사들은 그냥 넘겼다. 그걸 가지고 제가 어떤 뭐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아카데미는 로컬”이라는 유명한 발언에 대해서 봉 감독은 “도발은 아니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는 국제 영화제고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 영화제라는 것을 비교하다가 나온 것”이라면서 “이걸 젊은이들이 트위터에 올렸다. 전략이 아니고 대화 중에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라고 답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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