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문화일반
  • [인터뷰] 나태주 시인 “독자들이 왜 좋아할까…작고 허술한 시에 마음 열어"

  • 기사입력 2020-02-14 15:44
    • 프린트
    • 메일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드러나지 않은 것이 나에게 득이 됐어요. 지방에 있는 게, 소외된 게 축복이 된 거죠.” 나태주 시인은 시력 50년이 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사람들이 작고, 소외된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와 맞물린다. 출판사들이 앞다퉈 책을 내고 문학강의가 쇄도하는 인기작가가 됐지만 그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계속되고 있다. [공주=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영하 날씨에 자전거 타고 등장한 시인

“추운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세요?”

“자전거가 시를 쓰게 해요. 지금도 시를 알려준 걸.”

공주 풀꽃문학관에서 만나기로 한 시인은 영하의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고 왔다. 중절모에 두툼한 패딩을 입은 시인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경사진 길을 올라오더니 난간에 자전거를 세웠다. 거기가 자전거 자리라고 했다. 철제 난간 옆, 표족한 가시를 세운 장미의 여린 가지가 손을 뻗고 올라오고 있다. 초 여름, 분홍 장미와 자전거가 그림처럼 어울릴 모습이 그려진다. 시인은 장미가 가장 아름다울 자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풀꽃을 찾아볼 수 없는 계절이지만 문학관 주변은 봄 여름 가을 색색의 꽃들이 피어난다. 기슭에는 산국 꽃잔디 감국 금낭화 용머리 쑥부쟁이 옥잠화 할미꽃 부채붓꽃 등 다양한 풀꽃들의 자리가 있다. 경계를 넘어가는 꽃들도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뤄낸다.

공주=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가볍고 허술한 시에 상대방 마음 열어

오랫동안 작고 사소한 것들을 노래해온 나태주 시인(74)이 등단 50주년을 맞았다. 그의 시는 지금 대중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시 '풀꽃'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누리꾼들이 여기 저기 블로그에 올린 시를 모아 낸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44만부 팔렸다. 다양한 시선집, 산문집들도 수 만 부에서 십수만 부씩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출판사들은 책을 내자고 줄을 섰다. '나태주 현상'이라 할 만하다.

-독자들이 나태주 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나도 모르죠, 내 탓이 아니에요. 내 시가 졸렬하고 허술하고 작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경계심이 풀어지는 것 아닐까요? 시가 가볍고 허술다고 가치가 없는 게 아니에요. 상대방이 마음을 열어요.”

시인은 오늘 아침 동시를 하나 썼다고 했다. 그리곤 스마트폰에 빠른 한 손 검지타법으로 써내려갔다.

“엄마는 말했어요, 내가 있어 우리집 일이 잘된다고/내가 웃어서 베란다 화분에 꽃이 피고/흐린 하늘도 맑아진다고/그러나 나는 반대에요/엄마가 나한테 잘해주니까 내가 웃는 것이고/엄마가 물을 주어 베란다 화분에도 꽃이 핀다고"('나는 반대에요')

슬몃 웃음이 나온다. 뻔하다. 그런데 허를 찔린 기분이다. 시가 이렇게 쉬워도 되나.

시인은 또 다른 동시를 써내려갔다. 오늘 아침, 자전거가 참 많은 걸 준 것 같다.

“골목길에 떨어져 뒹굴고 있는 낙엽 정다워요/아침에 아빠 출근할 때 밟고 갔고요/나도 학교 갈 때 밟고 갔어요/저녁때 지친 아버지 서류봉투 옆에 끼고 퇴근할 때도 밟고 오셔요/나도 친구들이랑 놀다가 바스락 바스락 밟고 오지요.”(‘골목길’)

아빠, 나, 친구, 일과 놀이, 우리의 하루는 낙엽 덕에 왠지 특별해지는 느낌이다.

시인은 일상이 시라고 말하는데, 그 일상을 좀 다르게 보는 게 분명하다. 말하자면 그의 시대로 '자세히, 오래' 보고, 또 반대로도 보는 것이다.

공주=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서울에서 지하철 탈 때마다 깜짝 놀라요. 발 밑에 '왓치 유어 스텝(Watch your step)'이라고 써있잖아요. 발밑에 중요한 것, 보석, 진실이 있다는 거에요. 왜 먼 데 보려 하냐, 발 밑을 조심해라, 중요하니까 소중하게 재발견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걸 잘 보지 못할까요?

“석전 스님이 한 얘기가 있어요. 신문 기사가 난 해당 신문을 찾으려고 신문사 지국을 찾는데, 분명히 보았던 곳을 몇 바퀴 돌아도 찾을 수 없었다는 거에요. 그만 포기하고 돌아서는데 모퉁이에 지국이 있더라는 겁니다. 여기에 인생의 진리가 있어요. 포기했을 때 보이고, 주저앉은 다음에, 불행 뒤에 행복이 온다는 거죠.”

마음을 비우면 죽어요, 다른 것 채워야

시인은 지금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게 내면과 외면의 균형이 깨진 데 있다고 말했다. 물질, 바깥은 화려하고 꽉 차 있는데, 안은 누추하고 허하다 보니 생기는 균열이다. 따라서 행복은 균형을 맞추는 것, 안을 채우는 데 있다.

“밖은 이제 됐으니까 안을 깨끗하고 깊게 하는 거에요. 여행, 시, 문학, 꽃길 등 다양한 길이 있죠. 이를 통해 한 템포 쉬고 소중한 걸 다시 발견하는 거에요.”

그렇다고 확 바꾸라는 건 아니다. 물질이나 욕심을 내려 놓으라는 얘기도 아니다.

“무소유 불가능해요.허심 불가능해요. 마음을 비우면 죽어요. 달라이라마도 말했어요. 무욕은 없다고. 마음에 다른 것을 채워야죠. 확 쏟아부으면 죽어요, 조금씩 맑은 물을 넣어 흘러넘치게 해야죠. 이걸 개선한다고 하죠. 필요한 건 화해와 용서에요. 우선 자기자신과 화해해야죠. 포기하고 만족하는 것, 충분했다, 내일 또 시작하자, 쉬자, 그런 마음이 필요해요. 만족하는 걸 배워야 합니다.”

1월은 시인에게 좀 힘든 달이다. 오래 전부터 1월이 되면 앓는다. 자신이 3월생이라, 여덟 달 뱃속의 아기가 불안하고 힘들어하는 거라 믿는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다. 그렇게 매년 다시 태어나는 통과의례를 치르는 셈이다. 그런 1월이지만 최근 출판사 요구가 많아 일정을 빼야 할 판에 더 보태졌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1년에만 200여 차례 문학강의를 나간다. 강연료가 적든 많든 와달라고 하면 웬만하면 간다.

“요즘 생각이 바뀐 게 있어요. 젊은 시절에는 뭐든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중장년이 돼선 '날마다 첫날처럼 마지막처럼 살자' 그런 생각이었죠. 요즘 또 바뀌었어요. 요구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는 삶을 살자는 거에요.”

-가까운 이든, 조직에서든 관계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

“서로 될 수 있으면 요구하고 될 수 있으면 거절하니까 상처받는 거에요. 상대방의 불행과 몰락이 나의 불행, 몰락일 수 있어요. 너의 불행은 네 것이니까 네가 가져, 이러면 안돼죠. 동행해 줘야 합니다. 또 서로 간에 요구 수준을 낮춰야 해요. 기대가 높고 너무 빠르고, 인생을 올림픽경기 처럼 사는데, 인생은 1인 경기에요. 지쳤으면 천천히, 다리 아프면 쉬어야 하죠. 우리는 빨리 성장했기 때문에 충실해지는 기간이 필요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좋았다'
공주=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시인은 10여년 전, 췌장염으로 그야말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 의사는 시한부를 선고했고,105일 동안 물 한모금 마시지 못했다. 췌장의 4분의 3이 없어졌는데도 지금 당뇨가 없다. 거짓말 같은 얘기다. 기적적으로 회복된 뒤 그는 바뀌었다. 생명을 받았으니까 세상에 요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니 요구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임사체험도 하셨다고요?

“태풍이 지나간 흔적은 직후 무너진 집, 쓰러진 나무를 보고 알잖아요. 기적은 기적이 지나간 직후에 알아요. 우리가 죽음을 찾아가나요?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나요?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죽음을 찾아가는 거에요.”

그는 죽음의 어느 순간, 경험한 걸 들려줬다. 의식은 분명했다. “죽는 순간 1단계는 많이 아파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니까. 비밀은 등쪽에서 분리되는 거에요. 등뼈가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파요. 신장결석, 대상포진을 앓았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죠. 2단계엔 매우 평화롭고 자유롭고 고요해요. 엄청난 고통 뒤에 엄청난 행복이 오는 거죠. 그 다음에 반원이 보이고 물 위에 떠서 반원을 넘어가는 거에요.”

그의 말에 따르면, 생의 마지막, 지극한 행복감을 안고 반원을 넘어가는 게 죽음이다. 그런데 그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 잘 늙는 게 중요해요. 억울한 생각 없이 죽어야 해요. 7월에 태풍에 쓸려 떨어진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태운 적이 있어요. 무겁고 역겹고 화가 난 냄새가 나요. 10월에 똑같이 플라타너스 이파리를 태우는데, 가볍고 편안하고 향기롭고 고소해요. 젊은 나이에 죽으면 안돼요. 호습게 죽어야 해요. 내려놓고 반환할 거 다 반환하고, 자유로운 새처럼 대긍정을 해야 합니다. 다 좋았다고."

시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란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실연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해야 한다. 세상이 끝난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죠.”

그는 요즘 힘든 젊은이들에게도 한마디 했다. 10년 후에 바뀔 자신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 살라고 한다. 그러면 10년 후 자신이 오늘 내 안으로 들어온다는 얘기다. ‘큰 바위 얼굴’의 마법과 같다.

올해 시인이 계획한 일이 있는지 물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아들이 ‘아버지, 계획이 있어요?’’라고 물으니까, 송강호가 ‘계획 없다’고 하잖아요. 하하하. 계획 없습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선생님, 풀꽃을 어떻게 잘 그려요?” “자세히 보면 예쁘단다, 너처럼…”〉

공주 ‘풀꽃문학관’서 만나는 나태주 시인

풀꽃문학관 강의실에 있는 풍금

‘풀꽃문학관’은 일제강점기 공주헌병대장의 관사였다. 산 기슭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집은 아래 마을이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있다. 비교적 잘 보존된 집은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 구조로 회랑과 다다미방, 작은 접견실로 이뤄져 있다. 다다미방을 트고 방바닥을 콘크리트로 메워 강의실로 쓰고 있는 구석 한 켠에 풍금이 놓여있다. 초등학교 교사로 40여년 근무한 시인의 손때가 묻은 풍금이다.

풀꽃 그림이 가득한 면보가 풍금을 덮고, 그 위에 악보집이 놓여있다. 보험회사 파일로 만든 악보집엔 한때 즐겨부른 ‘오빠생각’ ‘섬집아기’’ ‘과꽃’같은 정겨운 노래들이 들어있다. 이런 노래는 왠지 풍금으로 연주해야 제 맛이 나는 듯하다. 애잔하고 아련한 것들이 금세 맴돈다. 강의실은 곳곳이 시다. 시와 꽃그림으로 이뤄진 8폭 병풍, 조각과 그림, 오래된 시집들이 눈길을 끈다.

뜰에는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풀꽃’ 시비가 있다. 언 땅엔 발도장이 여럿 찍혀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아이의 것도 있다. 풀꽃은 지금 없지만 사람들은 시를 찾아 문학관을 찾아온다. 양지녁엔 검불 사이로 연한 것들이 돋아나고 있다.

국민시가 된 ‘풀꽃’은 2002년 시인이 상서초등학교장 때 아이들과 수업하던 중 태어났다. 목요일 오후 특기적성 교육시간,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을 맡아 풀꽃그림을 그리게 했다. 아이들은 대체로 그렇듯 후딱 해치웠다. 꽃 자체 보다 아이들이 평소 생각해온 이미지가 많았다.

시인은 그런 아이들을 그대로 두고 자기대로 풀꽃을 그렸다.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 어떻게 하면 풀꽃을 잘 그릴 수 있어요?” “그건 말이다. 우선 여러 개의 풀꽃 가운데 자기 맘에 드는 풀꽃 한 개를 찾아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단다. 그러고는 그 풀꽃을 자세히 보아야 한단다. 그러면 풀꽃이 예쁘게 보이고 사랑스럽게 보이지.” 시인은 눈을 반짝이며 듣는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한마디 덧붙인다. “그건 너희들도 그렇단다.”

풀꽃 그림그리기는 시인이 외롭거나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시가 안 써질 때 자주 시도하는 수련방법이다. 이를 통해 사물의 본성,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에 닿는다. 시 쓰기의 본질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윤미 선임기자

포토슬라이드
  • '지지 하디드의 섹시 패션'
    '지지 하디드의 섹시 패션'
  • ‘2019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코리아 챔피언십’
    ‘2019 맥스큐 머슬마니아 피트니스 코리아 챔피언십’
  • 'sexy back'
    'sexy back'
  • '이걸 테이프로 만들었다고?'
    '이걸 테이프로 만들었다고?'
핫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