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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의원님들은 계획이 다 있구나”…그들의 낯뜨거운 ‘봉테일 무임승차’ 경쟁
기생충 기념비적 쾌거에 ‘총선마케팅’ 너도나도 활용
기생충 패러디에 급조된 공약 남발… 눈살 찌푸려져
봉준호 공원·봉준호 영화박물관 신설 등 잇따라 약속
기생충 평가 인색하던 한국당 쪽에서 더욱 활발해
일각 “봉테일 무임승차·새치기 말라” 공방으로 번져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영화 ‘기생충’의 주연배우 송강호가 지난 1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

참 얄팍하다 싶다. 낯간지러운 정치적 상술에 보기조차, 듣기조차 민망하다. 올해 총선(4월 15일)을 겨냥한 정치권 일부 인사의 마구잡이식 또는 무임승차식 ‘봉준호 마케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상이 다 알다시피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 한국사회를 발칵 뒤짚어놓을 역사적인 큰 일을 해냈다. 영화 ‘기생충’을 앞세워 한국 영화 100년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4관왕(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을 거머쥔 것이다. 봉준호 감독 개인의 인생 최대의 영광임은 두말할 필요 없고 이는 한국 영화의 일대 쾌거이자, 단박에 우리사회 희망의 빛이 됐다. 그렇잖아도 경제가 어려운 판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국민들의 피로도가 점점 심해지던 와중이라 ‘기생충’이 뿜어준 무한긍정 에너지에 국민들은 환호하고 있다. 이러니 기생충 주가는 하늘 높이 점점 치솟을 수 밖에 없다.

눈치 빠른 정치권 인사가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정치인은 이미지를 먹고 산다고 했던가. 그들의 개인 이미지에 ‘봉준호 이미지’ 또는 ‘기생충 이미지’를 얹어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에게 한표라도 더 얻기 위한 마케팅에 너도나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일단 총선 예비 후보들의 ‘봉준호 마케팅’ 열기가 뜨겁다. 패러디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페이스북에 기생충 포스터를 패러디한 사진을 올리고, 이를 홍보 마케팅에 활용 중이다.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모습을 넣어 편집한 포스터를 올리고 “‘권테일’이라는 별명을 얻어야겠다”고 했다. 그는 경기 안양 동안갑에 도전중인데, 봉테일 단어를 패러디한 것이다. 인천 연수갑 재선에 도전하려는 박찬대 의원은 “의원님은 역시 연수발전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글을 올렸다. 기생충 영화의 인기대사를 역시 패러디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애교로 여길만 하다. 정치 속성상 ‘이미지 정치’의 허용 범위는 어느정도 인정돼 왔던 것이 사실이고, 또 지금 시점이 총선(4월15일)을 두달정도 밖에 남지 않은때라 총선 (예비)후보들의 절박한 표심얻기 노력임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봐줄만 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봉테일의 기념비적 쾌거’를 활용해 아예 ‘무임승차’를 하려는 일부 예비후보들의 낯뜨거운 급조된 공약이 시중에 난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요 발원지는 대구다. 봉 감독은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으며 어린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그러다보니 ‘봉 감독=대구’를 연계해 자신의 총선 마케팅에 활용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공약이 너무도 거창하고도 다채롭다. 봉준호 기념관과 봉준호 공원을 만들고 봉준호 생가터를 복원시키겠단다. 봉준호 동상도 설치하고 봉준호 명예의 전당도 만들고 봉준호 영화박물관도 짓겠단다. 온통 ‘봉준호 칭송’이 물들어 있는 공약이다. 현실 가능성은? 모르겠다. 일단 내지르는 분위기다.

지난 9일(현지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등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미국 LA 더 런던 웨스트 할리우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

흥미로운 것은 이런 공약이 자유한국당 예비후보들(강효상, 배영식, 장원용 예비후보) 입에서 더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봉 감독은 박근혜정부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바 있고, 이에 보수쪽인 한국당에선 평소 부담스러운 인물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영화 기생충이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수상 쾌거를 일궜을때, 한국당은 공식 논평을 내지 않았다. 봉 감독과 영화 기생충에 큰 점수를 주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 등 진보진영에서 환호의 물결을 보낸 것과는 비교되는 흐름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이번 ‘오스카 4관왕’ 영광으로 한국 영화계 나아가 대한민국 국격을 높인 봉 감독을 이용해 유권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눈도장을 찍으려는 ‘봉테일 마케팅’이 한국당 쪽에서 더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은 의외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에 정의당은 한국당 예비후보들이 뻔뻔하다고 날을 세웠다. 정의당 대구시당은 긴급논평을 통해 “봉 감독의 작품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을 정치적으로 악용하고자 하는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오버액션이 기가 찬다”고 했다. 그러면서 “봉준호 영화박물관, 봉준호 동상, 봉준호 생가터 복원, 영화 기생충 조형물 건립 따위의 약속은 정치인들이 얼마나 준비 없이 말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의 이런 시각은 평소 봉 감독 평가에 인색했던 한국당 인사들이 기생충의 역사적 쾌거에 갑자기 무임승차하려는 것에 대한 경계 내지 폄하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예비후보들의 공약은 급조됐으며, 봉준호표(票)를 가로채려는 새치기와 다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평소 봉준호의 ‘봉’ 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것을 고려하면 이들의 공약이 실천력을 가질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는 게 정의당 논평의 요지다.

모든 게 다 ‘표가 되는 곳은 어디든지 가고, 표가 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한다’는 총선 전 예비후보자들의 ‘공약 남발’ 흐름과 서로에 대한 견제는 이렇듯 정치권 공방의 소재가 돼 왔다. 역대 총선, 크게는 모든 선거는 다 그랬다. 다만 역대 대부분 선거에서의 이미지 마케팅과 바이럴 마케팅은 거물급 인사를 등에 업은 정치인물 마케팅에 치중했는데, 이번엔 봉준호라는 글로벌스타 탄생에 맞춰 그 포인트가 바뀐 것이다.

보수 진영 쪽만 보면 지난 20대 총선(2016년 4월 13일)을 앞두고 보수 정당 후보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펼쳐진 것은 ‘진박(진짜 친박근혜) 마케팅’이었다. 박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내걸며 입에 침이 튀도록 진박임을 외치고 또 외쳤다.

지난 11일 대구시 중구 공평네거리에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봉 감독은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지역에서 자랐다. [연합]

앞서 19대 총선(2012년 4월 11일) 역시 ‘박근혜 마케팅’이 대세였다. 보수 쪽의 강력한 대선주자였던 점이 당연히 반영됐다. 이에 일부 진보정당은 ‘셀러브리티 마케팅(각계 유명인사가 당 지지를 선언하는 것)’으로 맞섰다. 일부 정당은 당시 ‘살인의 추억’, ‘괴물’ 등의 영화를 만든 봉준호 감독의 인지도를 활용, 진보정당 기호번호를 화면에 띄운 태블릿PC를 들고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유권자에 한표를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 후보로 나선 김부겸 후보(현 민주당 의원)는 ‘역(逆)마케팅’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당시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였는데, 당시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정희 마케팅’이 보수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선거 전략이었다. 그는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설립하고,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와 교류하면 영호남 소통의 교두보를 만들 수 있다고 여겼다. 공약은 신선했지만, 모두들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표를 얻으려는 이중작전일 뿐”이라는 일부 진영의 비판이 뒤따랐다.

어찌됐든 지난 선거의 마케팅 흐름을 들여다보면 이렇듯 다양한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

참, 한가지를 덧붙인다. 정치권의 이같은 야단법석의 ‘기생충 마케팅’에 대해 최소한 기자는 비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한국미디어문화학회 소속 회원인데, 학회는 천만영화 평론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한국 영화에 의미가 있는 천만영화들을 분석해 우리 사회의 문화적 고찰과 함께 영화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의도다.

며칠전에는 그 다섯번째 책으로 ‘기생충’ 영화평론을 내놨다. 학회 소속의 교수 몇분과 공동으로 출간한 것이다. 앞서 학회는 ‘내부자들(우민호, 2015)’, ‘밀정(김지운, 2016)’, ‘택시운전사(장훈, 2018)’, ‘신과함께(김용화, 2017)’ 등의 영화 평론서 네권을 책으로 엮은바 있다.

학회는 지난해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의미있는 수상을 하자,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봤다. 그래서 기생충에 대한 영화평론을 미리 집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기생충이 우리 사회, 아니 지구촌 사회에 던져준 그 메시지에 일찌감치 주목한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 대한 연구와 그 가치에 천착해온 우리 학회와 같은 입장이라면 이같은 정치권의 급조된 ‘봉테일에 숟가락 얹기’ 열기에 일종의 착잡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정치권이 뒤늦게라도 기생충 영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우리의 문화자산으로 승화시키려는 작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매도할 일은 아니다. 정치권이 아니라 누구라도 제2,3의 봉테일을 탄생시키는 작업에 동참한다면 환영할 일이다. 다만 단순히 표 하나를 더 얻기 위해, 유권자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영화 기생충을 ‘노이즈 마케팅’에만 이용하는 총선 후보가 있다면, 그것은 심각하게 경계해야 할 일이다. 실행력이 뒤따르지 않는 급조와 졸속 공약은 말그대로 ‘기생충’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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