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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지난 2년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화려한 쇼를 연출한 김정은과 트럼프의 비핵화협상은 제자리로 돌아온 상태지만 애초에 북한은 비핵화의 의지가 없었던 듯하다.

이런 직설적 표현은 조심스럽지만 지난 20여년간 북한 주민과 접촉해온 문화인류학자 정병호 한양대교수가 펴낸 ‘고난과 웃음의 나라’(창비)를 보면 그런 짐작이 가능하다.

간이라도 빼어줄듯 살갑게 대하다 돌연 뺨을 때리는 듯한 북한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책 몇페이지만 읽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 교수는 90년대 북한의 대기근 때 김대중 정권하에서 민간인 인도적 구호활동의 일환으로 북한대표단과 협상 및 10여 차례 방북, 탈북청소년을 위한 하나둘학교 설립 등 남북문화대통합을 위해 분주히 뛰고 있는 현장연구가다. 2013년 ‘극장국가 북한: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를 통해 북한 권력의 작동방식을 살핀 그는 이번 책에선 북한 주민의 생생한 삶과 의식의 저변을 살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정 교수가 1998년 중국 베이징에서 어린이 구호식품 전달을 위해 북쪽대표단과 만났던 얘기다.

대기근으로 100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국제 구호품으로 겨우 연명하던 북한이 최초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상황 뿐만 아니라 북한 대표단의 거드름을 피우는 듯한 태도는 한마디로 문화적 충격이었다고 털어놨다.

북한 어린이를 돕겠다고 분유 몇 천통을 전달하려고 만난 북측대표단과의 주객이 전도된 듯한 여러차례의 ‘이상한 협상’을 통해 그는 북한식 협상패턴을 파악했다고 말한다.

전형적인 패턴은 이렇다. 아쉬운 쪽은 그들인데, 그들은 ‘효율’과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취한다. 웃으며 악수하고 덕담을 나누다 돌연 원칙적인 문제를 거론, 도덕적 우위에 서서 상대방을 몰아간다. 트집을 잡아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며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판을 접는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그들은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해 얻어낼 건 얻어내고 자존심을 지켜낸다. “실제로 그들은 언제든지 판을 엎어버릴 수 있다. 최소한 그런 결기있는 자세로 협상에 임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북한의 악수-웃음-대화-갈등-폭언-결렬-비난, 다시 악수의 패턴은 북핵협상 뿐 아니라 코흘리개들의 생활까지 북한 주민 모두에 내재돼 있다고 본다.

이를 정 교수는 문화적 ‘아비투스’라고 분석한다. 핵폭탄은 상대를 위협할 만한 무기를 쥔 채 국제무대에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생존전략으로, 북한체제가 “우리를 인정해달라는 말법이자 문법”이라는 얘기다.

정 교수는 북한을 이해하는 또 다른 문화개념으로 ‘고난’과 ‘웃음’을 제시하는데, 이는 북한의 집단 공연에 동원된 아이들이 숨가빠하면서도 활짝 웃는 모습을 이해하는 데도 적용된다.

저자는 가혹한 훈련을 강요하고 지도자에 충성을 세뇌한다고 여겨질 수 있지만 방북 당시 여러 유치원과 탁아소, 학교를 둘러본 경험을 통해 웃음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다. 굶주리면서도 “우리는 행복해요”“세상이 부럼 없어라’고 노래부르며 진정 행복해하는 모습은 연출된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사회적· 문화적으로 내재화가 이뤄진 결과라는 것이다. 행복의 층위가 남과 북이 다르다는 얘기다.

시장경제의 대두와 과학기술 발전, 불평등 심화 등 현재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생생히 담아냈다. 자극적인 여타의 북한 이야기와 달리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차이를 좁힐 수 있을지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여준다.

meelee@heraldcorp.com

고난과 웃음의 나라/정병호 지음/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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