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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재방송 들어간 여의도發 ‘살생부의 추억’
민주당 ‘하위 20% 의원’ 평가 놓고 초긴장
4월 총선 앞둔 국회의원 서바이벌게임 돌입
한국당도 앞서 살생부 논란…의원간 기싸움
한명회 살생부부터 현재까지의 살생부 역사
지난 2일 오전 국회 앞에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국회의사당 100m 이내 장소’에 대한 집회·시위 금지 조항이 1월 1일부로 효력을 상실함에 따라 국회 바로 앞에서 집회가 가능해졌다. [연합]

국회의원은 아무나 못한다고 한다. 일단 독해야 한다. 무조건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순간순간 손바닥 뒤집듯이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이 있더라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딱 잡아떼는 비상한 재주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국회의원 자질 중 최상위는 뻔뻔함이 위치해야 한단다. 심하게 말하면, 철면피 같아야 한단다.

내가 얘기하는 게 아니다. 들은 얘기다. 지인 중 하나는 평생 여의도를 기웃거렸다. 학교를 나온후 유학을 갔는데, 돌아와보니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정당에 공채로 들어갔다. 정치에 대한 꿈이 있었을 때였다. 대선캠프에서 활동도 했고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도 했다. 국회의원이 꿈이었으나 그건 그저 희망에 불과했다. 공천 근처에도 가지도 못한채 여의도 주변에만 맴돈게 자신의 삶이라고 언젠가 그는 한탄했다. 그가 실력이 없었는지, 운이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정치권 밑바닥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그의 국회의원에 대한 관점은 이랬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의원직(職)에 대한 시샘이나 질투가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국회의원 아무나 못합니다. 의원요? 대부분 독종입니다.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해요. 욕심도 커야하고, 아예 탐욕 덩어리여야 합니다. 착하면 국회의원 못해요. 한국정치가 그런지, 아니면 한국정치인이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낯짝에 철판을 두르고 사는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을 마다않는 것, 그게 의원이라고 보면 돼요.”

정치판 문을 두드리면서 아마 누군가에게 호되게 당했나보다. ‘독종’의 누군가에 심한 상처를 입었을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래서 그는 어느날 미련없이 정치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작은 사업을 하면서 마음 편히 살고 있단다.

이 얘길 왜 하는 것일까. 국회의원을 일방적으로 욕하려는 것은 아니다. 평생 정치판을 기웃거린 지인만큼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을 존경한다는 사람 하나 못봤다. 검찰개혁을 놓고, 검경수사권 조정을 놓고, 한해 예산안을 놓고 타협과 조율은 없이 고성과 삿대질, 몸싸움만 한다는 게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대한 일반인의 이미지다. 상대방 의견에 대한 경청없이 나만 잘났다고 떠드는 의원, 내로남불하며 남의 잘못만 윽박지르는 의원, 작은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 대의임을 알면서도 온몸으로 저항하는 의원…. 그게 국회의원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사실 맞다. 사회정의나 국가, 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이가 일부 있긴 하지만 그건 극소수며, 대부분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 고집에 빠져 있는 집단이 바로 국회의원이란 게 일반적 시각이다. 의원 배지라는 ‘완장’의 포만감에 빠져있는채 말이다.

물론 이같은 의원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자성론과 성찰론을 내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이들 대부분은 각자 사정이 있겠지만, 진흙탕 현실정치에 대한 높은 벽 앞에서의 무력감과 반성을 곁들인다.

지난 22일 오후 대구시 동구 신암동 동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정책선거 홍보 및 18세 유권자 응원 퍼포먼스’에서 ‘늘푸른 봉사단’ 단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대구시 선거관리위원회는 18세 새내기 유권자의 생애 첫 투표를 응원하고 80여일 남은 국회의원 선거를 알리고자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연합]

그러나 대부분 의원 자리에 한번 앉으면? 세상 부럽지 않은 모양이다. 얼마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일산 불출마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눈물까지 보이며 아쉬움을 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출세를 대표하는 장관 자리도 내놓으면서 의원을 다시 하고 싶은데, 그걸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눈물까지 보인 것을 보면 국회의원직이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 가늠된다.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런 국회의원들이 유일하게 긴장하는 계절이 왔다. 총선이다. 당선된후 4년간을 대부분 고개를 빳빳이 세우다, 어느날 고개를 숙인다 싶으면 바로 코앞에 총선이 위치해 있다고 보면 된다. 지역구에 코빼기도 내밀지 않던 의원이 어느날 모습을 보이면 얼마후 총선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의원이 그런 것은 아니다. 지역구에 성실한 의원도 많이 있다.

이런 국회의원에 ‘저승사자’로 다가오는 것이 살생부(殺生簿)일 것이다. 진짜 살생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부 의원들은 선거에 앞서 정당에서의 공천 여부를 결정짓는 가늠자가 바로 살생부라고 믿는 모양새다. 중앙당에서 누구 누구를 공천 배제하는 살생부를 작성했다는 루머 등은 의원의 생존권에 직결된다는 점에서 그래서 한바탕 시끄러운 잡음을 남기기도 한다.

다 알다시피 살생부의 원조는 ‘한명회’라 할 수 있다. 계유정난때 한명회가 만들었다는 살생부대로 살아남는 자와 죽어야 하는 자가 나뉘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정사인지, 야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궁궐에 입궁하는 대문에서 살생부에 적힌 사람이 칼을 맞고 죽는 사극 장면을 많은 사람은 기억할 것이다.

살생부 얘기가 크게 회자된 것은 2000년이었을 것이다. 보수의 책사로 불렸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정무특보로 일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개혁공천의 밑그림을 그렸다. 파격적인 물갈이 공천이 없으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는 게 밑그림의 핵심이었다. 이때 각 계파를 주무르던 거물급의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가 공천에서 배제됐다. 이것을 두고 일부 언론은 윤여준이 살생부를 작성했고, 그대로 ‘금요대학살’을 주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훗날 윤 전 장관을 만났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살생부는 아니고요. 뭔가 물갈이를 하지 않으면 당시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다고 본 것은 사실입니다. 그 파격안을 이 총재가 실행한 것이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살생부란 단어는 정치판에선 논란과 후폭풍 소재다. 2020 총선에서의 ‘살생부 논란’은 그래서 더 커질 조짐이다.

당장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을 앞두고 현역의원 평가 ‘하위 20%’ 대상자 처분안을 검토 중이다. 쉽게 말해 현역의원을 평가할 것인데 하위 20%에 끼면 공천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누구 누구가 하위 20%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그게 누구 누구인지의 미확인 리스트가 거론되는 모양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살생부 형식으로 말이다.

앞서 자유한국당에서도 살생부 잡음이 일었다. 지난해 11월 친박계인 김태흠 의원은 ‘중진 용퇴론’을 화두로 띄우며 “영남권과 서울 강남 3구 등을 지역구로 한 3선 이상 의원들은 용퇴하든지 수도권 험지에서 출마해야 하며 원외와 전현직 당 지도부, 지도자를 자처하는 인사들도 예외는 아니다”고 했다. 이에 한국당 내부는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워졌다. 김 의원이 일종의 ‘살생부’를 던졌다며 격앙의 표정을 지은 의원도 적지 않았다. 김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서울 강남갑의 이종구(3선) 의원을 비롯해 부산 김무성(6선), 김정훈·유기준·조경태(4선) 의원 등 16명이 용퇴 리스트에 오른 셈이다. 그러니 해당 의원들로선 매우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중요한 것은 살생부는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2016년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김무성 의원은 언젠가 “2016년 새누리당의 살생부 40명의 명단을 봤다”고 폭탄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적어도 그때까지 살생부는 존재했다는 것이다.

물론 민초들이야 국회의원 살생부가 돌든, 안돌든 거기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능력 있고, 겸손하고, 국민만을 떠받드는 의원이 나온다면야 살생부가 백개, 천개 나돈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싶다.

그렇지만 의원님들은 다르지 않겠는가. 당장의 목숨이 달린 의원님들은 한동안 ‘살생부’ 걱정에 매달릴 듯 싶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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